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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보조금과 과잉생산 통해 타국 산업 경쟁력 약화시켜
미국·유럽연합, 中 태양광 패널·전기차 등에 초고율 관세
“국민 아닌 기업 위한 정책” 지적도
[동아시아포럼] 섹션은 EAST ASIA FORUM에서 전하는 동아시아 정책 동향을 담았습니다. EAST ASIA FORUM은 오스트레일리아 국립대학교(Australia National University) 크로퍼드 공공정책대학(Crawford School of Public Policy) 산하의 공공정책과 관련된 정치, 경제, 비즈니스, 법률, 안보, 국제관계에 대한 연구·분석 플랫폼입니다. 저희 폴리시 이코노미(Policy Economy)와 영어 원문 공개 조건으로 콘텐츠 제휴가 진행 중입니다.
최근 철강과 전기차 등 여러 산업 분야에서 중국의 과잉 생산으로 인한 무역 분쟁이 이어지고 있다. 중국이 쏟아내는 물량에 수출가가 낮아지고, 타국 산업이 휘청거리게 되는 탓이다. 이에 미국과 유럽연합(EU)은 자국 산업 구제책으로 중국산 제품에 각종 관세를 부과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중국의 과잉 생산으로 인한 불공정 무역 논란은 불식되지 않고 있다.
물량·가격으로 승부하는 중국에 각종 산업 ‘휘청’
중국의 수출품 과잉 생산은 미국 등 여러 나라에서 무역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보조금과 덤핑 문제는 세계무역기구(WTO)도 규제하는 사안이지만, 과잉 생산은 아직 논의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스위스의 금융 서비스, 프랑스의 샴페인, 미국의 민간 항공기 등도 과잉 생산 대상으로 분류할 수 있다. 그러나 과잉 생산으로 인한 무역 분쟁은 유독 중국에만 화살이 몰리는 분위기다. 중국이 과잉생산으로 점유율을 끌어올린 대표적인 분야는 전기차와 배터리, 태양광 패널 등 친환경 산업으로, 중국 정부 차원에서 공장 투자를 장려해 자국 내 수요를 뛰어넘는 수준의 과잉 생산을 유도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 같은 중국의 정책들은 수출품 값을 크게 떨어뜨려 타국 산업을 위축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미국은 1890년 관세법(Tariff Act), 1916년 반덤핑법(Antidumping Act) 등을 통해 타국 수출품이 보조금 등의 혜택을 받았을 경우 그에 상응하는 관세를 추가로 부과하는 상계관세(Countervailing duties, CVD)와 물품이 수출국 내 시장가격보다 낮아 자국 산업에 영향을 주는 것을 막기 위해 부과하는 반덤핑관세(Antidumping duties, ADD) 등을 도입했다. 이런 관세들은 이미 여러 나라에서 활용되며 중국의 무역 폭격을 막아내는 용도로 쓰이고 있다. 그러나 효율성이 좋은 대책은 아니다. 기존 규정대로라면 꼼꼼한 분석을 거쳐 정확한 보조금 또는 덤핑 범위가 인정돼야만 관세를 부과할 수 있는데, 중국은 보조금 정보가 불투명해 이를 잡아내기가 쉽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과잉 생산을 문제 삼게 되면 복잡한 절차 없이 관세를 매길 수 있다. 게다가 미국의 기존 사례들이 보여주듯 1974년 무역법(Trade Act) 301조에 따라 미국 정부는 일단 불공정 무역 행위로 판명 나면 어떤 수준의 과징금도 부과할 수 있다. 또한 과잉 생산 때문에 미국의 관세 부과 대상이 된 기업은 WTO 분쟁 조정 시스템에 기대기도 어려워진다. 무역법 301조는 중국의 과잉 생산이 국제적 문제로 부상하기 전 효력을 얻은 조항으로, 중국의 불투명한 보조금 정책과 기술 도용 등 여러 문제에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법적으로 잘 설계된 덕에 현재 중국의 과잉 생산 문제를 국가 안보 문제로 격상시킬 수도 있는 상황이다. 실제로 미국이 중국의 태양광 패널과 전기차에 부과한 관세 조치들은 무역 구제 정책의 새로운 장을 연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미국, 관세 내세워 무역전쟁 우위 확보 시도
지난 2012년 12월 미국 상무부(DOC)는 중국의 태양광 업체들이 얻는 보조금 혜택을 수출가의 15% 정도로 파악하고 이에 맞춰 반덤핑관세를 매겼다. 같은 달 상무부는 일부 중국 태양광 기업의 덤핑 마진이 18~29%에 이른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반덤핑관세를 재차 부과했다. 이 같은 조치들로 중국의 태양광 수출은 타격을 입었다. 하지만 재생에너지에 대한 수요가 여전히 강해 중국은 계속해서 태양광 패널의 주요 공급원 역할을 하고 있다. 게다가 지난해 중국은 전 세계 태양광 장비의 80%를 수출했는데, 올해 새롭게 건립된 공장들을 감안하면 2032년경엔 전 세계 모든 수요를 감당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할 전망이다.
지난 2018년 6월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당시 미국 대통령은 무역법 301조를 발동해 태양광 패널을 포함한 중국의 여러 수출품에 25% 추가 관세를 매겼다. 이어 지난 5월 조 바이든(Joe Biden) 대통령이 재차 같은 조항을 내세워 태양광 패널에 대한 관세를 50%로 끌어 올렸다. 그러나 중국은 캄보디아와 말레이시아, 태국, 베트남 같은 나라들을 통해 수출 과정을 ‘세탁’하는 방식으로 과잉 생산을 이어 나갔고, 결과적으로 이들 국가의 수출품 역시 미국의 고율 관세 대상이 됐다.
태양광 패널에 이어선 중국의 전기차 역시 과잉 생산이 시작됐다. 지난 2009년 중국은 전기차 생산량에서 미국을 추월했고, 세계 최대의 전기차 생산국으로 발돋움했다. 모두 몇 해 만에 이뤄진 일이었다. 이런 가운데 중국은 수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비야디(BYD), 상하이자동차(SAIC) 등 자국 전기차 생산 업체들에 17~38% 보조금을 준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미국은 지난 2018년 6월 중국산 자동차에 대해 25% 관세를 부과했다. 이는 당시 트럼프 정권이 선언한 ‘대중 무역전쟁’ 대책의 일환이었다. 지난 5월에는 바이든 대통령도 무역법 301조를 통해 중국산 자동차 관세를 100%로 올렸고, 이달부터는 전기차용 배터리에 대해서도 25% 관세를 매긴다. 여기에 더해 대선 레이스 중인 트럼프 전 대통령은 중국산이든 멕시코산이든 전기차에 대해 200%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공약으로 대중국 견제를 강화하고 있으며, 그간 수입 자동차에 10% 관세를 부과해 온 EU도 품질 좋은 중국산 제품이 유럽 시장을 장악할 것을 염려해 지난 7월부터 추가 관세를 부과하고 있다.
무역 정책의 목적이 소비자들에게 이득을 주는 것이라면 미국과 EU는 중국이 저렴한 전기차를 생산하고 태양광 제품을 만들어 탄소 배출량 감소에 기여하는 데 대해 고마움을 표할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무역 정책은 늘 기업의 이익을 향해 있다. 어떤 면에선 1930년대 대공황 이후 가장 포퓰리즘적인 시대라 할 수 있다. 국제 무역 규칙에 대한 기준 확립이 시급하지만 빠른 시일 내 이뤄지긴 어려워 보인다.
원문의 저자는 게리 클라이드 허프바우어(Gary Clyde Hufbauer) 피터슨 국제경제연구소(Peterson Institute of International Economics) 비상근 선임연구원입니다. 영어 원문은 If Chinese industrial capacity is a problem the US has better measures to deal with it | East Asia Forum에 게재돼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