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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행정부 LPO 폐지 방침 가시화, 바이든 정부도 FEOC에 따라 IRA 보조금 삭감
EU도 '유럽판 IRA' CRMA 본격 발표, 핵심광물 자원 중국 의존도 낮춘다
규제 리스크에 대중국 의존도 낮추는 기업들, 폐배터리 재활용 등 방안 마련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지지율이 높아지면서 미국 내 광산업체와 배터리 재활용업체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선되면 탈중국 기조가 강화돼 중국산 핵심광물을 사용한 제품이 보조금 대상에서 제외될 수 있어서다. 특히 최근엔 유럽연합(EU)이 탈중국 기조에 합세하면서 압박이 더욱 심해졌다. 배터리 광물 기업들 입장에선 규제 리스크를 피하기 위해서라도 대중국 의존도를 낮춰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트럼프 당선 유력에 배터리 광물 기업들 '비상'
30일(현지 시각) 로이터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최근 미국 내 광산 기업들은 대선 전 대출을 받아내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전직 관리들이 참여한 '프로젝트 2025' 문서에 미 에너지부의 대출 프로그램(LPO)을 폐지한다는 방침이 포함돼서다. 조 바이든 대통령 집권 후 미 에너지부는 배터리 재활용 스타트업 라이사이클(Li-CYCLE)과 아이오니어, 리튬아메리카스, 레드우드머티리얼 등 21개 기업에 250억 달러(약 33조3,700억원)의 대출 지원책을 내놓은 바 있다. 이들은 대출금을 활용해 전기차 등 배터리의 리튬을 재활용하는 시설을 짓기로 했지만, 대부분 기업의 대출이 아직 최종 행정절차를 완료하지 못한 상태다. 정권이 교체되면 대출 지원책 자체가 무산될 가능성이 충분히 있단 얘기다.
업계에선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한다고 해도 정책 대출을 일방적으로 취소하는 건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취임 직후 기업들의 반발에 직면하는 건 트럼프 행정부로서도 부담스러운 상황 아니겠냐는 이유에서다. 다만 기업이 포기할 정도로 대출 인수 절차를 늦출 가능성은 있다. 정부 대출은 자금이 집행되기 전 실무자와 엔지니어, 재정 전문가, 에너지부 장관을 포함한 정부 부처의 검토를 거쳐야 한다. 정부 차원의 압박이 용이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트럼프 정부 시절 이뤄진 에너지부의 정책 대출이 조지아 핵 프로젝트(보글 원전 프로젝트) 단 한 건에 불과했단 점도 업계의 우려를 키우는 요인이다. 게다가 이 1건마저 버락 오바마 전 정부 시절 승인이 이뤄진 대출이었다. 트럼프 1기 행정부 시기 에너지부의 정책 대출은 줄곧 논외로 취급됐고, 임기 말이 돼서야 핵심 광물 프로젝트들에 대출이 가능하도록 법안이 개정됐다.
중국 의존도 높은 기업들, 한국 대중국 수입 비중도 커
문제는 상황이 반전돼 트럼프 전 대통령이 실각하고 민주당이 다시 정권을 잡는다고 해도 악재는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지난해 바이든 행정부에서도 보조금 대상을 제한한 바 있어서다. 지난해 12월 1일 미 재무부와 에너지부는 '외국 우려기업(FEOC)'에 대한 세부 규정을 발표하면서 "FEOC에 해당하면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의 전기차 세액공제 혜택을 받을 수 없다"고 전했다. IRA는 북미에서 최종 조립된 전기차를 대상으로 차량 1대당 최대 7,500달러의 보조금을 지급하는 정책이다.
당시 에너지부는 FEOC를 '중국, 이란, 러시아, 북한의 소유·통제·관할하에 있거나 지시받는 기업'으로 규정했다. 또 중국 기업이 합작회사 지분 또는 이사회 의석이나 의결권을 25% 이상 직·간접적으로 보유할 경우 중국이 해당 기업을 소유·통제·지시하는 것으로 정의하기도 했다. 미국의 탈중국 기조가 배터리 광물 기업들을 옥죄는 양상이 펼쳐진 셈이다.
현재 배터리 광물 기업의 중국 의존도는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핵심광물의 대부분이 중국으로부터 나오고 있어서다. 특히 한국의 경우 핵심광물의 대중 수입 비중이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2022년 말 대한상공회의소가 발표한 '이차전지 핵심광물 8대 품목의 공급망 분석' 보고서를 보면 한국의 이차전지 8대 핵심광물 수입액 중 대중 수입 비중은 2010년 35.6%에서 2020년 58.7%로 10년 사이 23%p나 급증했다. 일본 41%, 독일 14.6% 대비 압도적으로 높은 수치다.
특히 2022년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이 발표한 교역 통계에 따르면 광물자원 중 희토류(중국, 90%), 마그네슘(중국, 85%), 텅스텐(중국, 66%), 리튬(중국, 58%), 바나듐(중국, 54%) 등은 중국으로부터의 수입 비중이 50%를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미중갈등에 따른 대중국 압박이 심화할수록 한국도 덩달아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단 것이다.
해외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중국이 세계 최대 흑연 생산국으로서 흑연 공급망 인프라를 대부분 장악하고 있는 상황이라서다. 실제 중국의 흑연 글로벌 생산 비중은 지난해 80%에 달했다. 미국의 탈중국 기조를 따르기 위해선 글로벌 기업들 차원에서도 적극적인 탈중국이 이뤄져야만 한단 의미다.
EU도 탈중국 합세, '유럽판 IRA' 발표하기도
이에 기업들은 대중국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방책을 강구하는 모양새다. 우선 SK온은 글로벌 화학기업 바스프(BASF)와 손잡고 폐배터리 재활용 등에서 협력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폐배터리를 통해 핵심 자원을 충당해 중국산 광물 비율을 낮추겠단 취지다. 조달처 다변화에도 힘쓰고 있다. 국내 배터리 3사가 호주 등에서 리튬·흑연 조달을 강화하고 나선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 같은 탈중국 러시는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EU 측이 핵심원자재법(CRMA)을 발효하면서 규제 리스크가 커졌기 때문이다. CRMA는 전략적 원자재의 제3국 의존도를 낮추겠단 취지로 마련된 법안이다. 구체적으론 2030년까지 코발트·리튬·흑연 등 EU 전략적 원자재 연간 소비량의 최소 10%를 역내에서 채굴하고 최소 40%를 역내에서 가공하는 것을 목표로 잡았다. 특정 국가에 대한 전략적 원자재 수입 의존도가 연간 소비량의 65%를 넘지 않아야 한다는 규정도 담겼다. 사실상 '유럽판 IRA'인 셈이다.
CRMA엔 공급선 다변화를 위해 채굴 기술과 관련한 역내외 신규 사업에 대해선 허가 기간을 27개월 이내, 가공·재활용 관련 사업은 15개월 이내로 단축한다는 내용도 담겼다. 특히 탄소중립 관련 산업에 필수적인 관리 대상 핵심 원자재는 총 34가지를 지정했으며, 이중 리튬이나 마그네슘, 희토류를 포함한 17가지는 '전략적 원자재'로 분류해 공급망 위험 평가를 일정 주기마다 실시하도록 했다.
지난달 25일(현지 시각)엔 EU 차원에서 '공급망 실사 지침(CSDDD)'을 발표하기도 했다. 2027년부터 EU에서 영업하는 기업은 자사뿐 아니라 협력사 활동까지 인권·환경에 끼치는 부정적 영향을 조사하고 시정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중국산 광물 등에 대한 광범위한 규제를 잇달아 내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