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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가스 업체들, M&A 시장 줄줄이 출몰
FI-SI 인수자 간 확연한 온도차, "SI 입장에선 매력 적어"
대기업 대출 상승 폭 12년 만에 최대치, 자금난 현실화했나
효성화학 특수가스사업부, SK스페셜티 등 대형 가스 업체들이 M&A(인수합병) 시장에 연달아 나왔다. 고금리 장기화로 유동성 위기가 커지자 흥행력이 높은 가스 업체를 매물로 내놓은 것으로 분석된다.
고금리에도 매물 쏟아지는 가스 업체
25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최근 가스 업체들이 M&A 시장에 쏟아지고 있다. 대표적으로 효성화학은 특수가스사업부를 매각하기로 했고, SK그룹도 SK스페셜티 지분 매각 등 다양한 방안을 고민 중이라고 밝혔다.
이들 그룹사가 연달아 M&A 매물을 내놓은 건 고금리가 장기화하면서 기업들의 자금 유동성에 빨간불이 켜졌기 때문이다. 효성화학은 1년 내 갚아야 할 유동부채만 2조9,118억원, 유동비율은 29%에 달해 빚이 자산보다 3배 이상 큰 상태다. 부채비율 역시 올해 2분기 기준 17만6,703%로 전 분기(3,485%) 대비 17만3,217%p 급증했다.
SK그룹의 경우 SK하이닉스가 대규모 손실을 본 데다 전기차 캐즘(chasm)으로 SK이노베이션, SK아이이테크놀로지 등 관련 부문 자회사가 타격을 입으면서 위기가 가시화했다. 업계에 따르면 지난 1분기 말 SK그룹의 순차입금은 85조9,000억원으로 전년 동기(82조원)에 견줘 4조원 남짓 불어났다.
이처럼 자금 확보 문제가 시급한 상황에서 가스 업체는 기업의 '히든카드'로 꼽힌다. 고금리 환경에서도 흥행에 성공할 가능성이 높아서다. 통상 가스 업체는 안정적인 현금 창출력을 유지하기 좋은 매물로 평가된다. 특히 고금리 기조에서 장기간에 걸쳐 위험을 분산할 수 있다는 것이 강점이다. 이렇다 보니 투자시장에선 "3~5년 이상 보유한 뒤에 다시 되파는 전략을 짤 때 가스 업체만큼 매력적인 매물이 없다"는 언급도 종종 나온다.
SI는 가스 업체 M&A 백안시, 왜?
눈에 띄는 점은 가스 업체 예비입찰에 SI(전략적투자자)보단 FI(재무적투자자)가 참여한 비율이 높았단 점이다. 실제 효성화학 특수가스사업부예비입찰엔 IMM·글랜우드크레딧·스틱인베스트먼트·어펄마캐피탈, 한국투자프라이빗에쿼티(PE)·KB자산운용, 스톤브릿지·BNW인베스트먼트 등이 참여해 지난 7월 IMM·스틱 컨소시엄이 1조3,000억원을 내걸고 우선협상대상자에 선정됐다. SK스페셜티는 한앤컴퍼니와 MBK파트너스, 브룩필드자산운용이, 에어프로덕츠코리아 예비입찰엔 MBK파트너스와 KKR·칼라일·스톤피크·아이스퀘어드캐피탈 등이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SI와 FI 간 온도 차가 크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는 SI 입장에선 가스 업체가 크게 매력적이지 않은 탓이다. 대기업으로선 M&A 매물이 자사와 '시너지'를 낼 수 있는지 여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나 특정 제조 업체에 가스를 공급하는 게 주된 비즈니스 모델인 가스 업체는 본업 경쟁력과 시너지를 내기 어렵다. 이에 대해 한 IB 업계 관계자는 "에어프로덕츠가 삼성전자 평택공장에 가스를 공급하는 상황에서 삼성그룹 외 타 그룹사가 에어프로덕츠를 인수해도 주 수입 창출원이 삼성인 건 바뀌지 않는다"며 "오히려 인수한 가스 업체가 다른 그룹사에 종속되는 그림이 그려질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결국 시간을 두고 차익을 꾀하는 FI와는 입장이 다른 셈이다.
자금줄 마른 대기업, 재무 건전성도 악화 수순
한편으론 최근 들어 대기업의 자금줄이 마르고 있단 점이 SI의 소극적인 태도를 강화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 한국은행이 발표한 금융시장동향에 따르면 지난 2월 은행 기업대출은 8조원 증가한 1,262조4,000억원을 기록했다. 2009년 통계 작성 이래 역대 두 번째로 큰 상승 폭이다.
기업 규모별로 보면 대기업 대출이 3조3,000억원 늘어난 것으로 확인되는데, 이는 동월 기준 12년 만의 최대 상승 폭이다. 기업을 운영하는 데 필요한 운전자금을 중심으로 대출 증가세가 견조하게 이어졌다는 게 한은 관계자의 설명이다. 이 같은 대출 급증세는 자금난 심화로 은행과 시장으로부터 대규모의 자금을 조달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재무 건전성도 악화 수순을 밟고 있다. 기업분석연구소 리더스인덱스가 자산 상위 30대 그룹 계열사 중 상반기 보고서를 제출한 301개 기업의 재무 건전성을 분석한 결과 이들 기업의 올 상반기 부채총액은 3,,704조9,673억원에 달했다. 전년 동기 3,293조1,889억원보다 411조7,783억원 급증한 것이다. 부채비율도 1년 전 171.7%에서 179.3%로 7.6%p 상승했고, 1년 이내 갚아야 하는 유동부채는 955조6,979억원에서 158조879억원으로 102조3,900억원 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