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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자 반독점법 위반 혐의 제기, 애플과 '비밀 계약' 체결하기도
법무부 "비자의 사업 원동력은 불법 독점 행위"
2005년 반독점 소송 패소한 비자, 시장 내 신뢰도 하락
미국 법무부가 세계 최대 전자결제 기업 비자에 반독점법 위반 소송을 제기했다. 비자가 불법적인 방식으로 소비자 결제 시장을 독점해 왔다는 정황이 드러나서다. 비자는 현재 인센티브를 통해 자사 시스템 이용을 종용하거나 핀테크 기업의 결제 기술 개발을 포기하도록 유도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인센티브 통해 경쟁 억제한 비자, 불법적인 독점체계 마련
25일(이하 현지시간) 외신에 따르면 비자는 그간 직불카드 시장에서 자사의 독점적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경쟁을 억압해 왔다. 타사의 결제 시스템을 이용하지 못하도록 일방적인 수수료 구조를 강제하거나 자사 시스템을 많이 활용한 가맹점에 선별적으로 대규모 할인을 제공하는 식이다. 비자를 단독으로 이용하는 게 가맹점에 더 이득인 구조를 만들어 타사의 경쟁력을 억제한 셈이다.
애플 등 핀테크 기업이 직불카드 시장에 진입할 수 없도록 비밀리에 계약을 체결했다는 혐의도 제기됐다. 비자가 자사의 막대한 '독점 수익'을 인센티브로 제공해 애플이 결제 기술 개발을 포기하도록 유도했다는 게 골자다.
이에 미국 일리노이주 주류 판매업체 미라지 와인 스피릿(Mirage Wine & Spirits)은 앱페이 결제를 허용한 가맹점들을 대표해 비자, 애플 등을 상대로 집단소송을 제기했다. 미라지 측은 "애플과 비자의 커넥션이 타사의 월렛 앱 시장 진출 가능성을 사실상 차단했다"며 "그 결과 아이폰에선 애플 앱페이 사용이 강제됐고, 이로 인해 가맹점 수수료 인상 등 횡포에 대한 소비자의 대응력이 현저히 낮아졌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미 법무부, 비자에 '반독점법 위반 소송' 제기
미 법무부도 비자를 질타하고 나섰다. 법무부는 지난 24일 성명을 내고 "비자의 독점으로 소비자들이 가격 인상 피해를 입었다"며 "비자는 경쟁시장에서 부과할 수 있는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수수료를 불법적으로 징수할 수 있는 권한을 축적했다"고 역설했다. 그러면서 "비자의 불법적 행위는 거의 모든 제품의 가격에 영향을 미쳤다"고 일갈했다. 비자가 독점적 지위를 활용해 과도한 '수수료 장사'를 벌인 탓에 간접적인 소비자 피해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법무부는 이 같은 혐의 사실에 따라 비자에 반독점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법무부가 뉴욕남부연방법원에 제출한 소장엔 비자가 현재까지 높은 수준의 점유율을 유지한 원동력이 '시장 독점 행위'에 있음이 적시됐다. 사실상 비자의 성과 전반을 반독점법 위반에 따른 결과물로 본 것이다. 현재 비자의 직불카드 시장 점유율은 약 61%로 전체의 과반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비자의 위법 행위가 장기간에 걸쳐 이뤄진 계획적 범행임을 강조하기도 했다. 법무부에 따르면 비자의 반독점법 위반 행위는 도드-프랭크법이 제정된 이후 2012년부터 10년 넘게 이어졌다. 도드-프랭크법은 글로벌 금융위기에 따르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10년 7월 제정된 금융개혁법으로, 카드 발급사가 최소 2개의 독자적인 직불 결제망을 제공하도록 하는 게 골자다. 결국 비자가 도드-프랭크법 시행 이후 직불결제 시장 내 자사의 입지 하락을 우려해 범행을 계획했다는 게 법무부의 시선이다.
비자 측 "무가치한 소송" 반발하지만
법무부의 압박 수위가 높아지자 비자 측은 "(법무부의 반독점 소송은) 무가치한 소송"이라며 강력히 반발하고 나섰다. 줄리 로텐버그 비자 법률고문은 "비자는 성장하는 직불 결제 시장에서 많은 경쟁자 중 하나일 뿐"이라며 "번창하는 업체가 여럿 있다는 현실을 (법무부가) 애써 무시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기업과 소비자가 비자를 선택하는 이유는 안전하고 신뢰할 수 있는 네트워크, 세계적 수준의 사기 방지 기능, 그리고 우리가 제공하는 가치 때문"이라고 반독점법 위반 및 소비자 피해 사실을 부인했다.
그러나 시장에선 비자의 해명에 큰 신뢰를 보내지 않는 분위기다. 비자의 반독점법 위반 행위가 문제시된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라서다. 앞서 지난 2005년 미국 상인들은 비자와 마스터카드를 상대로 반독점법 위반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카드 정산 수수료를 지불하는 과정에서 양 사가 자체 규정한 정산 방식을 강제한 탓에 과도한 수수료를 지불하게 됐단 게 이유였다.
해당 소송은 약 20년간 지속됐으나, 결국 지난 2019년 비자와 마스터카드가 법원의 조정 신청을 수락·합의하면서 사측 패소로 마무리됐다. 이에 따라 양사는 카드 취급 업소 측에 55억4,000만 달러(약 7조3,000억원) 규모의 합의금을 지불했다. 비자 입장에선 잇단 반독점법 위반 소송으로 사법 리스크만 가중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