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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팬데믹과 지정학적 갈등으로 중국 직접 투자 급감
경제 성장 위해서는 안보 문제 불구 ‘중국 투자 필수’
전자제품 제조 등 일부 분야, 중국 투자 조건부 승인으로 ‘분위기 전환’
[동아시아포럼] 섹션은 EAST ASIA FORUM에서 전하는 동아시아 정책 동향을 담았습니다. EAST ASIA FORUM은 오스트레일리아 국립대학교(Australia National University) 크로퍼드 공공정책대학(Crawford School of Public Policy) 산하의 공공정책과 관련된 정치, 경제, 비즈니스, 법률, 안보, 국제관계에 대한 연구·분석 플랫폼입니다. 저희 폴리시 이코노미(Policy Economy)와 영어 원문 공개 조건으로 콘텐츠 제휴가 진행 중입니다.
인도가 코로나19 팬데믹에서 벗어나 글로벌 경제 대국을 지향하는 시점에서 대중국 관계에는 두 가지 상반된 관점이 존재한다. 먼저 인도-중국 간 치열한 국경 분쟁과 날이 갈수록 증가하는 중국 자본의 영향력 때문에 안보 이슈는 인도에 빼놓을 수 없는 고민거리 중 하나다. 반면 인도가 열망하는 선진국의 꿈을 이루려면 제조업을 중심으로 자국 산업에 중국의 투자를 선별적으로나마 허용하지 않으면 곤란한 상황이다. 지정학적 갈등과 경제 성장 목표를 함께 저울질하며 나아가야 하는 인도 정부의 고민이 복잡미묘하다.
인도의 중국 투자 유치, 코로나19와 지정학적 갈등으로 ‘1보 후퇴’
2014년 집권 이후 나렌드라 모디(Narendra Modi) 인도 총리의 경제적 목표는 제조업 부문의 국내총생산(GDP) 비중을 높여 수입 의존도를 줄이고 국내 생산 역량을 제고하는 일이었다. ‘메이크 인 인디아’(Make-in-India) 캠페인으로 기치를 높이 든 인도 정부는 다양한 국내 산업 분야에 대한 해외직접투자(foreign direct investment, FDI) 유치 노력을 기울였는데 국방과 철도 등 민감할 수 있는 분야에도 예외를 두지 않을 정도였다.
이에 화답하듯 인도 시장에서 성장의 추가 기회를 포착하고자 한 오포(Oppo)와 ZTE 등 중국 기술 대기업들의 호응이 잇따랐고, 2019년 가을 모디 총리와 중국 시진핑 주석의 정상회담은 양국의 경제 협력을 진전시켜 교역과 공동 생산 분야에서 획기적인 성과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팬데믹으로 인한 경제 위기와 이어진 국경 분쟁이 상황을 뒤집었다. 경제 위기 상황에서 해외 자본이 국내 핵심 산업들을 장악할 것을 우려한 인도 정부가 당초의 적극적인 해외투자 유치에서 한 걸음 물러선 것이다. 당시 인도 정부는 인도와 국경을 맞댄 국가들의 직접 투자를 엄격히 심사하기 시작했는데 무섭게 성장하는 중국의 영향력을 의식했기 때문으로 해석되고 있다.
여기에 2020년 6월 갈완(Galwan)에서 벌어진 양국 간 무력 분쟁은 전 국경에 걸쳐 긴장감을 고조시키며 경제 협력 기대에 찬물을 끼얹었다. 양국 모두에서 사상자를 낸 국경 분쟁은 양국 관계의 취약성을 드러내며 많은 병력이 국경을 사이에 두고 대치하는 결과를 낳았는데, 이는 아직까지도 완전히 해결되지 않은 상태다. 작년 3월 S. 자이샨카르(S Jaishankar) 인도 외무부 장관이 양국 관계를 ‘비정상적’(abnormal)이라고 표현하는가 하면, 라즈나스 싱(Rajnath Singh) 국방부 장관은 중국의 행위가 ‘양국 관계의 근간을 흔들었다’고 비난했다.
경제 대국 목표 위해서는 안보 이슈에도 중국 투자 ‘반드시 필요’
다만 그럼에도 인도는 ‘실제 통제선’(Line of Actual Control, LAC, 인도와 중국 영토를 구분하는 실제 경계) 사이에서의 평화는 대중국 관계 재정립과 진전에 중요하다는 입장을 유지했다. 그도 그럴 것이 팬데믹 기간 규제와 국경 갈등으로 2000년 4월~2021년 12월 중국의 직접 투자 규모는 24억5,000만 달러(약 3조4,000억원)로 전체 해외 직접 투자액의 0.43% 수준에 머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국과의 평화를 유지하면서 당면한 경제 목표 달성에 주력해야 하는 모디 총리에게 안보 문제는 고민스러운 현안일 수밖에 없었다. 무력 분쟁에 분노한 국민들이 중국 제품과 투자에 대한 보이콧을 외치는 상황까지 전개되면서 상황이 더 복잡해졌기 때문이다.
이러한 지정학적 문제에도 불구하고 2029년까지 세계 제3위 경제 대국, 2047년까지 선진국 대열 진입이라는 인도 정부의 야심 찬 목표는 위축되지 않고 있다.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인도는 단순한 생산량의 증대가 아니라 제품의 질과 부가가치를 개선하는 일에 주력해야 한다. 첨단 기술 제품의 대량 생산을 통해 글로벌 공급망의 당당한 주역으로 자리 잡는 것이 경제 성장의 핵심이라는 의미다.
이러한 전략의 중심에는 ‘생산 연계 인센티브’(Production Linked Incentive, PLI, 국내 생산 기업에 제공하는 성과 연계 인센티브) 제도가 자리하고 있다. 수출 증대, 무역 적자 해소, 고용 증가를 목표로 시행된 이 제도는 올해 5월까지 152억4,000만 달러(약 21조2,000억원)의 투자 유치와 85만 개의 고용 창출이라는 혁혁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하지만 인도 정부가 최근 깨닫고 있는 사실은 원대한 목표를 달성하려면 안보 이슈에도 불구하고 중국 투자를 수용해야 할 정도로 더 많은 해외 투자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중국 투자 유치와 보안 문제 대응, ‘양날의 칼’
사실 인도 재무부가 수출 경쟁력 향상과 글로벌 공급망 참여를 위한 방편으로 중국 투자 유치를 제안했을 당시 인도 정부의 반응은 부정적이었다. 그러나 최근 모디 행정부가 전자제품 제조 등 일부 분야에 중국 투자를 조건부로 승인하며 분위기 전환이 감지되고 있다. 인도 정부가 중국 투자 회사에 내건 조건은 해당 기업들이 첨단 기술 제품 생산과 인도의 제조 역량 강화에 주력해야 하고, 핵심 직위에 중국인 채용을 불허하는 내용을 포함하는 것으로 짐작된다.
이러한 중국 투자에 대한 인도 정부의 접근은 미국과 유사하면서도 다른 점이 있는데, 먼저 미국 바이든 행정부(Biden administration)가 도입한 ‘작은 마당, 높은 울타리’(small yard, high fence) 전략은 중국 자본 진입이 국가 안보 및 정보 누출 위협을 초래할 수 있는 5G 기술 및 전기차, 인터넷 연결 차량 등의 분야에 규제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해당 분야의 중국 투자를 보안 문제 및 스파이 행위 위험 등을 내세워 전면적으로 금지하거나 철저한 조사를 거치게 하는 것이다. 이에 비해 인도가 중국 투자를 막는 것은 특정 분야에 국한된 보안 문제라기보다는 2020년 국경 분쟁에서 비롯된 민족주의적 감정의 측면이 크다. 단 이유야 어찌 됐든 중국 기술 의존도를 줄이겠다는 의도는 공통적이다.
그러면서도 인도가 중국 투자를 전면적으로 거절하지 못하는 원인은 경제적 측면에 있다. 모디 총리의 2023년 미국 방문 당시만 해도 미국이 대인도 투자를 늘릴 것이라는 희망이 컸지만, 실제 투자 규모는 2022~23년 60억 달러(약 8조2,000억원)에서 2023~24년 49억9,000만 달러(약 6조8,000억원)로 감소한 데다, 전체 해외 직접 투자 규모도 같은 시기 420억 달러(약 57조5,000억원)에서 265억 달러(약 36조3,000억원)로 급감해 추가 투자가 절실해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같은 시기 인도 사회의 안정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는 실업 문제까지 심각해지면서 고용 창출을 위한 별다른 대안을 갖지 못한 인도 정부는 특정 분야에 한해 엄격한 조건을 달아 중국 투자 유치를 허용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인도 정부는 자국 산업 발전을 위해 중국 자본의 도움을 끌어들이는 동시에 중국으로 인한 안보 문제에 대응해야 하는 어색한 국면을 어떻게든 헤쳐 나가야 하는 상황이다.
원문의 저자는 하쉬 V. 팬트(Harsh V Pant) 옵저버 연구 재단(Observer Research Foundation) 연구 및 국제 정책 부사장 외 1명입니다. 영어 원문은 India begins a rebalance of security concerns over China and economic aspirations | EAST ASIA FORUM에 게재돼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