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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BM 가격 8~13% 인상, 범용 D램은 0~5% 상승에 그쳐
中 메모리의 빠른 추격, 3위 마이크론 뛰어넘을 수도
모건스탠리 "메모리 반도체 생산 줄여야"
‘반도체 겨울론’에 불을 당겼던 외국계 투자은행 모건스탠리가 다시 한번 반도체 업황이 하락기에 접어들었다고 평가했다. 모건스탠리는 인공지능(AI) 핵심 반도체인 고대역폭메모리(HBM) 수요만으로 업황이 나아지기 어렵다고 봤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메모리 반도체 기업이 선제적으로 감산에 나서야 한다는 게 모건스탠리의 주장이다.
모건스탠리 “HBM만으로 전체 D램 가격 못 올라”
10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숀 킴(Shawn Kim) 모건스탠리 연구원은 최근 ‘메모리 반도체 투자의견 하향 관련 질의응답(FAQ on Memory Downgrade)’이란 제목의 보고서를 냈다. 이는 킴 연구원이 지난달 15일 제시한 ‘메모리-겨울은 항상 마지막에 웃는다(Memory-Winter Always Laughs Last)’ 보고서와 ‘겨울이 곧 닥친다(Winter looms)’ 보고서의 후속편 성격이다. 킴 연구원은 당시 보고서를 통해 메모리 반도체 업황이 하강 국면에 진입했다고 진단했다. 이들 보고서에서 삼성전자 목표주가를 기존 10만5,000원에서 7만6,000원으로 하향 조정했고, SK하이닉스 목표주가도 26만원에서 12만원으로 낮췄다. 그 영향으로 두 기업의 주가가 급락했었다.
킴 연구원은 최신 보고서에서 AI 산업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과거와 달리 반도체 업황이 하강 국면에 들어설 때가 아니라는 의견을 다시 반박했다. 그는 “메모리 반도체 산업에 투자하는 방법은 간단하다”며 “공포(업황 바닥)에 사서 과대광고(업황 정점)일 때 파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아이러니하게도 업황이 정점에 가까워졌을 때 많은 사람들이 ‘이번엔 다르다’고 생각하지만, HBM만으로 전체 D램 가격이 전년 동기보다 상승하도록 하지는 못한다”며 “주가가 더 상승할 여력(Upside)이 없다”고 했다.
킴 연구원의 논리를 정리하면, 현재 메모리 반도체 호황기는 7개 분기째 이어지고 있는데 보통 호황기는 6~8개 분기면 끝나곤 했다. 또 메모리 반도체 기업이 HBM 공급에 초점을 맞추면서 범용 D램 수급이 빡빡해질 것으로 예상했지만, PC나 스마트폰용 수요가 부진해 더는 같은 서사 구조(Narrative)를 기대하기 어려워졌다. 이에 킴 연구원은 “선제적으로 메모리 반도체 생산을 줄여야 업황에 대한 시각이 달라질 것”이라며 “감산이 반도체 과잉 공급 기간을 줄이고 고객사의 행동도 바꿀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수요 측면에선 2025년 (HBM을 활용하는) 그래픽처리장치(GPU) 수요가 점점 더 커지면 (반도체 업황에 관한) 관점이 달라질 수 있지만, 지금보다 훨씬 더 높은 HBM 용량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HBM 가격만 상승세, 나머지 D램은 '주춤'
실제로 AI 반도체용 HBM를 제외한 D램 메모리 가격은 오름세가 둔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4분기 PC, 모바일 등 범용 메모리 수요가 감소하면서 범용 D램 가격이 전분기보다 0~5% 상승하는 데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AI 서버 시장에서 높은 수요를 보이고 있는 HBM 가격은 4분기에 8~13% 인상될 것으로 전망되며, 전체 D램 시장에서 HBM이 차지하는 비중도 3분기 6%에서 4분기에 7%로 증가할 것으로 점쳐진다.
시장별 D램 가격을 살펴보면 PC용 D램 가격은 전분기와 유사한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3분기 PC 시장은 인텔의 루나레이크 시리즈가 출시 지연과 소비 시장 위축으로 인해 전통적인 성수기에도 불구하고 침체기를 겪었다. 이로 인해 PC용 D램 재고가 많아지면서 4분기에도 구수요가 감소할 것으로 관측된다.
서버용 D램은 전분기 대비 0~5% 상승할 전망이다. 재고가 많아지면서 미국 클라우드서비스업체(CSP)들이 서버용 D램 구매를 줄였고, 중국 시장은 회복세를 보이고 있지만 여전히 전반적인 수요를 견인하기에 부족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다만 최근 DDR5 모멘텀이 개선됨에 따라 전체 서버 D램 비트 출하량이 4분기에 개선될 여지가 있다.
모바일용 D램 가격은 4분기 5~10% 하락이 예상된다.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스마트폰 브랜드가 3분기에 기존 모바일 D램 재고를 줄이면서 지연된 조달 전략을 통해 공급업체 가격 조정에 저항했다. 이로 인해 모바일 D램 수요도 순차적으로 30% 이상 감소했다. 트렌드포스는 이런 방식이 4분기에도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그래픽 D램 가격은 평년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4분기 그래픽 수요는 여전히 부진한 가운데 메모리 공급업체는 그래픽 D램을 생산하던 캐파를 점점 HBM으로 할당하면서 GDDR 생산에 보수적인 전략을 유지하고 있어서다. 이에 소비자용 D램 중 DDR5는 4분기 0~5% 하락하고, DDR4 가격은 유지될 전망이다. DDR3의 경우 수요가 급격하게 감소하면서 시장에 과잉 공급이 발생한 만큼 일부 공급업체는 출하 목표를 충족하기 위해 4분기에 가격을 인하할 가능성이 있다.
중국 메모리의 시장 진입에 따른 충격
중국의 가파른 추격도 반도체 겨울론에 힘을 싣는 요소다. 실제 미중 갈등 속에 몸을 낮추며 기술 축적에 주력했던 중국 메모리 반도체 회사들은 올해를 기점으로 ‘쓸 만한 구형 칩’을 쏟아내면서 그동안 삼성이 압도했던 시장을 잠식하기 시작했다. 월가는 중국 최대 메모리 기업인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가 올해 처음으로 글로벌 D램 생산량의 10% 이상을 차지할 것으로 봤다. 일각에서는 현재 추세대로라면 CXMT가 2026년 미국 마이크론의 생산량마저 추월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CXMT의 주력 칩은 주로 스마트폰이나 노트북에 쓰이는 저전력 D램인 LPDDR4X와 PC용 DDR4 등 국내 반도체 업계에서 레거시(구형)로 분류하는 제품들이지만 최근 신형 DDR5까지 출시하는 등 기술 수준을 끌어올리고 있다. 한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CXMT 내부에만 삼성전자·SK하이닉스 출신의 엔지니어가 세 자릿수 넘게 있다는 것은 업계의 공공연한 비밀”이라고 말했다.
시장 기대치를 밑도는 3분기 잠정실적을 낸 삼성전자의 실적 쇼크 배경에도 CXMT와 중국 낸드플래시 업체 양쯔메모리테크놀로지(YMTC)가 있다. 또한 조 단위의 적자를 내면서 위기의 근원으로 지목됐던 삼성의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사업부 실적과는 별개로 메모리 사업부의 D램·낸드플래시 관련 실적마저 당초 예상보다 저조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회사가 본격적으로 감산 없이 메모리 칩을 찍어내면서 D램 가격이 상승세가 멈췄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그동안 삼성전자·SK하이닉스의 메모리 반도체를 사실상 전량 수입하던 중국 전자업계가 자국 회사의 반도체를 쓰기 시작함에 따라 관련 시장점유율도 빠르게 줄고 있다. HBM·DDR5 등 최신 기술력이 집약된 메모리 칩이 최근 주목받고 있지만, 여전히 전체 메모리 시장에서 구형 칩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반 이상이다. CXMT·YMTC 등은 중국 정부의 보조금 등에 힘입어 구형 칩 생산에 충분한 경쟁력을 갖고 있다는 평가다.
첨단 메모리 기술 경쟁에서 휘청이는 삼성이 상반기 비교적 호실적을 기록하며 버틸 수 있던 이유는 업황 반등 속 압도적 생산 능력에 힘입어 기존 메모리 시장에서 시장 지배력을 지켜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SK하이닉스에 주도권을 빼앗겼던 HBM 시장에서도 중국 시장에서 구형 HBM 제품을 직간접적으로 판매해 숨통을 틔웠다. 이 같은 상황에서 중국의 본격적인 메모리 시장 진입은 치명적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가 쏟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