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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전력난에 SMR 등 원자력 에너지 대안으로 부상
구글 "청정에너지로의 전환을 위한 획기적인 사건"
넷제로 달성 위해 MS·아마존·오픈AI도 원전 투자
탄소 중립을 선언했던 빅테크 기업들이 최근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가동에 필요한 막대한 전력을 확보하기 위해 원자력 에너지에 주목하고 있다.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 가능하면서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원자력 에너지가 부상하면서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MS) 등에 이어 구글도 AI 데이터센터 가동에 필요한 전기를 확보하기 위해 소형모듈원전(SMR) 기업과 전력 구매 계약을 맺었다. 앞서 구글은 자사의 환경보고서를 통해 당초 제시했던 '2030년 넷제로' 목표의 달성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SMR 등 대체 전력의 구매를 시사한 바 있다.
구글, 카이로스 파워 SMR 통해 500MW 전력 확보 계획
14일(현지 시각) 구글은 미국의 SMR 스타트업 카이로스 파워와 전력 구매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카이로스 파워는 오는 2035년까지 6∼7개의 원자로를 가동해 총 500메가와트(㎿)의 전력을 구글에 공급할 예정이다. 500㎿는 수십만 가구가 쓸 수 있는 양으로 AI 데이터센터 단지 한 곳에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규모다. 카이로스 파워는 이미 테네시주(州)에 2027년부터 가동할 수 있는 시범용 원자로를 건설할 수 있는 승인을 받은 상태로 구글의 전력 공급과 관련해서는 2030년 첫 번째 SMR을 가동하고 2035년까지 추가로 원자로를 설치할 계획이다.
마이크 테렐(Michael Terrell) 구글 에너지·기후 담당 수석 이사는 이번 계약에 대해 "15년 간의 청정에너지 여정에서 획기적인 사건"이라며 "향후 10년간 데이터센터 운영에 필요한 무탄소 전력을 공급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구글의 최종 목표는 '24시간 가동되는 탄소 없는 에너지'로 목표를 달성하려면 풍력, 태양광, 리튬 이온 저장 장치를 보완하는 원자력 기술이 필요하다"며 "특히 SMR은 대형 원전에 비해 단순하고 안전하며 빠른 건설과 유연한 설치가 가능해 청정에너지와 AI의 발전을 돕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구글은 2030년까지 넷제로를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세웠지만 AI 발전과 함께 데이터센터의 급격한 증가로 탄소 배출량이 늘어나며 목표 달성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올해 7월 구글은 '2024년 환경보고서'를 통해 "AI 시스템을 뒷받침하는 데이터센터의 확장으로 지난 5년간 온실가스 배출량이 48% 급증했다"며 "2030년 넷제로 목표를 달성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청정에너지에 대한 계약 체결을 포함해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모든 노력을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아마존·MS·오픈AI 등도 원자력 발전소 전력 다량 구매
구글뿐 아니라 넷제로를 선언한 미국의 빅테크들도 원자력 발전소의 전기를 무더기로 사들이고 있다. AI 데이터센터를 24시간 가동하기 위해서는 저렴하면서도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 필요한데 원자력은 이를 가능하게 하면서도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유일한 에너지원이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행동에 나선 기업은 아마존이다. 아마존 산하의 클라우드 기업 아마존웹서비스(AWS)는 올해 3월 미국의 송전·발전기업 탈렌 에너지로부터 100% 원자력으로 가동되는 큐물러스 데이터센터 단지를 6억5,000만 달러(약 8,800억원)에 매입했다.
아마존은 또 데이터센터 단지 인수와 함께 서스쿼해나 원전으로부터 10년간 전력을 직접 공급받는 전력 구매 계약(PPA)도 체결했다. 해당 계약에 대해 아마존은 "2025년 100% 재생에너지와 2040년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고 설명했다. 재생에너지 확장에 따른 간헐성을 보완하기 위한 기저 발전으로 탈탄소 에너지인 원자력 발전에 투자했다는 것이다. 이어 아마존은 향후 10년간 12개 이상의 신규 데이터센터를 설립하겠다는 계획도 공개했다.
오픈AI 역시 전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원자력에 주목하고 있다. 지난 7월 오픈AI는 "SMR을 통해 2027년부터 AI 데이터센터에 전력을 공급받을 계획"이라며 "이를 위해 핵에너지 업체 오클로에 투자했으며, 2027년 가동을 목표로 개발을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오클로는 "현재 개발 중인 SMR은 기존 원자로보다 훨씬 작은 규모로, 지속 가능하고 신뢰성 있는 전력 공급을 목표로 하고 있다"며 "핵연료에 포함된 에너지 함량의 약 5%만 사용하고 있으며, 자사의 SMR은 나머지 95%의 에너지를 활용할 수 있도록 효율을 끌어올리는 것이 목표라고 설명했다.
MS는 지난달 미국 최대 원자력발전 기업 콘스텔레이션 에너지와 데이터센터에 20년간 전력을 공급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콘스텔레이션 에너지는 구글에 전기를 대기 위해 1979년 미국 역사상 최악의 원전 사고가 발생한 펜실베이니아주 스리마일섬 원전의 가동을 재개할 예정이다. 해당 원전은 지난 2022년 폐쇄됐으나 현재 재가동 절차가 진행되고 있으며, 2028년 상업 가동을 시작해 2054년까지 운영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MS는 이 밖에도 버지니아·오하이오주 등에서 데이터센터 확장에 원전을 활용할 계획이다.
소형화·모듈화·경제성 강점인 SMR, 핵확산 우려 제기
빅테크 기업들은 전력 공급 계약을 넘어 핵융합 발전에 대한 투자도 확대하고 있다. 지난 2021년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는 핵융합 발전 스타트업 헬리온 에너지에 3억7,500만 달러(약 5,140억원)를 투자했다. 최근에는 오클로의 상장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MS의 창업자인 빌 게이츠는 2008년 SMR 업체 테라파워를 설립하고 현재 원자로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이 외에도 아마존 창업자인 제프 베이조스는 캐나다의 핵융합 발전 스타트업 제너럴 퓨전에 투자했고, 페이팔 공동 창업자인 피터 틸도 헬리온에 투자했다.
빅테크들이 원자력 발전 중에서도 SMR에 주목하는 이유로는 소형화, 모듈화, 경제성 등이 꼽힌다. SMR은 전통적인 원자력 발전소보다 건설 비용과 시간이 절감되며, 부지 면적이 작고 환경적 위험이 적다는 장점이 있어 데이터센터와 같은 고전력 소비 시설과 쉽게 연계될 수 있다.
다만 일각에서는 원자력 발전이 부상하는 상황에 대해 우려하는 의견도 적지 않다. 올해 7월 미국 핵과학자회(Bulletin of the Atomic Scientists, BAS)는 오클로와 같은 신생 기업이 추진하는 SMR 등 새로운 원자력 기술이 핵물질 확산의 위험을 높일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했다. BAS는 "오클로의 원자로가 높은 농도의 우라늄-235를 사용하며, 이는 전통적인 원자력 발전소에서 사용하는 연료보다 무기급 우라늄에 더 가까운 농도를 가진다"며 "이는 악의적인 행위자가 비교적 적은 양의 물질로도 핵무기를 제작할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오클로의 원자로는 플루토늄-239 생성에 매우 적합한 나트륨 냉각 고속 중성자 방식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플루토늄이 재처리돼 핵무기 제작에 사용될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즉 AI와 같은 첨단 산업의 발전이 핵확산 문제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