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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판 앞둔 ‘친트럼프’ 경제 투톱에 美 통상압박 가시화, 한미 FTA 무용지물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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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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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무장관 베센트·상무장관 러트닉 지명
트럼프 옹호 행보→IRA 폐지론 힘 실어
美 통상정책 궁극 목표, 무역수지 개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취임이 목전으로 다가오며 대미 무역 흑자국인 한국도 미국의 통상압박 사정권에 들었다. 시장에선 대미 자동차 수출이 그 시작점이 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한 가운데, 각국 정부는 미국의 보편관세 도입에 앞서 경제적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분주한 모습이다. 자국의 경제적 피해를 우려한 미국 내에서도 다양한 목소리가 나온다.

자동차, 대미 무역수지 흑자 비중 60% 차지

25일 외교계에 따르면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경제 투톱을 맡게 될 스콧 베센트 재무장관 지명자와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 지명자는 한국과의 통상 과정에서 대규모 압박 공세에 나설 전망이다. 헤지펀드 키스퀘어그룹의 창업자인 베센트는 반도체 생산보조금을 가리켜 “파멸의 기계”라고 정의할 만큼 대표적인 인플레이션감축법(IRA) 폐지론자로 꼽히며, 투자은행 캔터피츠제럴드 최고경영자(CEO)인 러트닉 역시 그간 트럼프 당선인의 관세 계획에 대해 “무역협상의 협상 칩(a bargaining chip)”이라고 옹호한 바 있다.

한국은 미국의 8대 무역적자국으로 부상하며 통상압박의 영향권에 들어섰다. 지난해 한국의 대미 무역흑자 규모는 444억 달러로 중국·멕시코·베트남·일본 등에 이어 8위를 기록했다. 정부와 업계 안팎에서는 대미 자동차 수출이 통상압박의 시작점이 될 가능성에 주목하는 모양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한국이 미국으로 수출한 자동차 및 자동차부품 수출액은 403억 달러로 트럼프 1기 행정부가 출범했던 2017년 204억 달러에서 6년 만에 97.5% 증가했다. 전체 대미 수출 중 차지하는 비중도 29.7%에서 34.8%로 확대됐다.

한국의 대미 무역수지 흑자에서 자동차 부문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60% 이상이다. 무역수지 개선이 통상정책의 궁극 목표인 미국이 한국과의 교역 내역 중 자동차 관련 적자부터 문제 삼지 않겠느냐는 관측은 이와 같은 맥락에서 나왔다. 업계에서는 트럼프 1기 행정부가 무역확장법을 근거로 철강·알루미늄에 관세를 부과하고 수입 물량을 조절했던 것처럼 2기 행정부에서는 자동차에 대해서 유사한 조치를 시행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무역확장법 적용은 러트닉이 지명된 직책인 상무장관의 권한이다.

해외 기업이 미국에 직접 투자하도록 유도했던 IRA와 반도체과학법(CHIPS Act)을 수정하는 것도 한국 기업에 타격이다. 미국 내 생산시설에 대한 보조금 지급과 그에 따른 가드레일(안전장치) 조항이 수정될 경우 많은 기업이 투자 계획을 전면 수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나아가 미국이 첨단 반도체 및 반도체 제조장비에 관한 대중 수출통제 조치를 통해 중국 기업과 거래해 온 한국 기업의 공급망이나 판로를 바꾸는 방법을 취할 가능성도 있다.

멕시코 등 미국 인근 국가에 공장을 설립한 우리 기업들도 우려가 커지는 건 마찬가지다. 이들 기업은 멕시코에서 생산된 제품은 미국에 수출될 때 관세를 부과하지 않는다는 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USMCA)을 감안해 멕시코에 생산시설을 구축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트럼프 당선인은 선거 기간 중 이 같은 ‘우회 수출’에 대해 경고하며 USMCA를 개정하겠다고 엄포를 높기도 했다.

한국과 미국은 2007년 타결된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2012년 3월 이후 양국이 상품 및 서비스 무역을 할 때 관세를 적용하지 않아 왔다. 하지만 협정문에는 “자국의 필수적 안보 이익 보호와 관련해 필요하다고 판단될 경우 관세 철폐 등을 적용하지 않을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미국이 ‘안보적 위기’를 느낄 경우 한미 FTA 역시 무력화할 수 있다는 의미다.

친미 노선 멕시코·캐나다, 반미 노선 영국

전 세계 각국은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에 앞서 경제적 피해를 최소화할 대비책 마련에 분주한 모습이다. 먼저 멕시코는 USMCA 규칙을 기반으로 자국 기업들이 중국산 전기차 배터리나 부품 등 수입을 축소할 수 있도록 현지 생산을 촉진하는 방안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멕시코 대통령은 22일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멕시코 기업 또는 멕시코에 진출한 미국·캐나다 기업과 함께 (차량 부품 등) 현지에서의 생산을 증진하기 위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며 “멕시코는 중국의 우회 진출로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반면 캐나다는 아예 멕시코를 배제하고 미국과 새로운 양자 무역협정을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는 최근 기자회견에서 “셰인바움 대통령에게 중국의 대(對)멕시코 투자에 대한 우려를 밝혔으며, 이는 세 나라(미국·캐나다·멕시코)가 힘을 합쳐 해결해야 하는 문제”라고 짚으면서도 “이상적으로는 북미 단일 시장 차원에서 해결해야 하지만, 멕시코가 내린 결정을 고려해 다른 선택지를 살펴봐야 할 수도 있다”고 여지를 뒀다. 캐나다 역시 중국의 우회 수출을 문제 삼아 멕시코가 포함된 USMCA를 폐기할 수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미국을 배제한 움직임도 눈에 띈다. 역으로 유럽연합(EU)과의 새 무역 협정 체결에 속도를 내는 영국이 대표적 사례다. BBC방송에 따르면 영국 내각부는 최근 EU와의 무역 및 국경 문제 등을 협상할 대표직을 뽑는 채용 공고를 게시했다. 협상을 통해 EU와 더욱 긴밀한 무역·안보 관계를 형성하려는 목표를 갖고 있다는 게 내각부 관계자의 설명이다.

문제는 영국이 EU와 새 무역협정을 맺을 경우 미국과의 무역 관계 악화를 되돌릴 수 없다는 점이다. 지난 16일 트럼프 당선인의 수석 경제고문 스티븐 무어는 한 라디오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EU는 사회주의에 가까운 경제 모델을 갖고 있다”고 지적하며 “영국 정부가 EU와의 경제적 관계를 우선한다면, 자유주의 경제 모델을 가진 미국은 영국과의 자유무역협정에 덜 관심을 두게 될 것”이라고 견제하기도 했다.

미국은 IRA 폐지 두고 갑론을박

미국의 셈법도 복잡하긴 마찬가지다. 각종 경제적 피해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달 초 발표된 미국 존스홉킨스대학의 보고서에 따르면 IRA의 시행으로 미국 내 새로운 일자리 30만 개가 창출됐으며, 이를 폐지할 경우 경제적 손실 규모는 1,300억 달러(약 183조원)에 달할 전망이다. 이 가운데 500억 달러는 수출 감소로 인해 발생하며, 800억 달러는 투자 위축으로 인한 경제적 손실이 될 것이란 분석이다. 벤틀리 알렌 존스홉킨스대 환경 및 정책 전문 교수는 “미국은 풍력과 태양광 설치를 지속하긴 하겠지만, 정책 자체가 폐지되면 미국의 신에너지 시대 주도권이 손상될 수도 있다”며 “에너지 전환은 피할 수 없는 일이고 각국의 미래 번영은 친환경 에너지 공급망의 일부가 되는 것에 달려 있다”고 IRA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이 때문에 공화당 내부에서도 IRA 폐지와 관련해 의견이 갈리는 모습이다. 지난 8월 앤드루 갈바리노 하원의원(뉴욕)을 포함한 18명의 공화당 의원은 같은 당 소속 마이크 존슨 하원의장에게 서한을 보내 IRA 철회 계획을 재고해 줄 것을 촉구했다. 이들은 IRA에 대한 비판적 시각은 유지하면서도, 세액 공제 혜택을 없앨 경우 에너지 부문의 성장이 저해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미 많은 기업이 세액 공제를 예상해 대규모 프로젝트에 돌입한 상태로, 갑자기 세액 공제 혜택을 없애버리면 중단되는 프로젝트가 늘고 민간 투자 또한 위축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갈바리노 의원은 “IRA를 철회한다면 수십억 달러의 혈세를 쓰고도 아무런 결과를 얻지 못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로 이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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