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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日, 관세 협상 결과 두고 이견 발생 "무역 불균형 바로잡힐 것" 트럼프 주장의 빈틈 F-47 접근권 등도 日에 마냥 호재 아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일본의 대미 투자 결정에 대해 공언한 가운데, 이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미국이 일본에 기대하는 바와 일본의 실제 의도 사이에 '간극'이 존재할 가능성이 크다는 평가다.
美-日, 협상 종료 후 의견 충돌
29일 정계에 따르면, 지난 22일(이하 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이 내 지시에 따라 미국에 5,500억 달러(약 756조원)를 투자하기로 했다”고 주장했다. 이는 마치 일본이 미국의 요청을 그대로 따른 것처럼 해석되는 발언이다. 하지만 일본 정부와 현지 언론의 입장은 전혀 다르다. PBS 등의 보도에 따르면 일본은 대미 투자 총액을 공식 확인한 적이 없으며, 투자 방향에 대해서도 미국이 일방적으로 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일본은 자국 이익이 명확하지 않은 대규모 해외 투자를 하지 않는다. 일본 완성차 업체인 도요타, 혼다, 닛산 등이 미국 공장을 확장한 것은 어디까지나 사업 성장을 위한 전략일 뿐, 정치적 양보가 아니다. 설령 향후 일본의 대규모 대미 투자 계획이 현실화한다고 하더라도 자국 자동차, 반도체, 기술 기업 등을 통한 간접 투자 성격을 띨 가능성이 크다. 만약 미국이 해당 자금을 자국 우선 산업이나 일본이 비효율적이라 판단하는 분야에 투입하려 할 경우 양국 간 충돌이 발생할 수 있는 셈이다.
대만 역시 변수로 꼽힌다. 미국 입장에서는 TSMC 등 대만 반도체 기업에 자금이 흘러 들어가도록 유도하는 것도 공급망 전략상 이득일 수 있지만, 일본은 이런 흐름에 사전 협의 없이 동의하지 않을 확률이 높다. 다만 아카자와 료세이 일본 경제재생상은 지난 26일 일본 공영방송 NHK에 출연해 대만의 반도체 제조 업체가 미국에 공장을 건설하고 일본 수요에 맞춘 제품을 생산할 시 무역 협정 패키지를 통한 자금 지원을 실시할 수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日이 美 차 살 것” 트럼프식 균형론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의 5,500억 달러 투자가 양국 간 무역 불균형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고도 주장했다. 대표적인 근거로는 “일본 소비자들이 앞으로 미국산 자동차를 더 사게 될 것”이라는 점을 들었다. 하지만 이는 현실과 크게 동떨어진 전망이다. 영국 언론 매체 가디언에 따르면, 미국 자동차 브랜드의 일본 시장 내 점유율은 극히 낮다. 도요타·혼다·닛산 등 자국 브랜드에 대한 소비자 충성도, 좁은 도심 도로 사정, 서비스 인프라 부족 등 복합적인 이유로 미국 완성차 업체들이 현지에서 입지를 다지지 못한 것이다. 관세를 낮춘다고 해도 일본 소비자들이 쉐보레나 포드 차량을 대거 선택할 가능성은 낮다.
결국 무역 균형 개선은 자동차가 아닌 다른 경로를 통해 이뤄질 수밖에 없다. 일본 기업이 미국 내 생산을 늘리거나, 양국이 공동으로 인프라 프로젝트에 투자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이 역시 시간이 오래 걸리고 정부 간 조율이 필요하다는 한계가 있다.
게다가 일본은 현재 자국 방위 역량 강화에 대규모 예산을 투입하고 있다. 최근에는 국방 예산을 대폭 늘렸고, 정책 방향 역시 해상 전력·미사일 체계·북중 견제용 기술 확보 등 안보 강화를 중심으로 전환되는 추세다. 해외 상업 투자보다 방산 중심의 전략적 지출을 우선하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상황에 트럼프 대통령이 일본의 투자를 민간 상업 부문에 집중시키려 하면 일본 정부와의 시각차가 커지며 양국 사이에서 잡음이 발생할 수 있다.

日 '국방 자율화' 전략도 위협받아
미국 측은 5,500억 달러 투자 논의와 함께 일본에 차세대 전투기 ‘F-47’에 대한 접근권을 제공하겠다는 뜻을 드러낸 것으로 알려졌다. 겉으론 매력적인 제안처럼 보이지만, 내부 조건은 복잡하다. 일본이 F-47을 도입하거나 공동 개발하기 위해서는 미국의 국방 정책과 군사 작전 노선에 긴밀히 연결돼야 한다. 이는 일본이 최근 추진 중인 ‘국방 자율화’ 전략과 충돌할 수 있다. 현재 일본은 영국·이탈리아와 함께 차세대 전투기 개발 프로젝트인 GCAP(Global Combat Air Programme)를 진행 중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F-47 접근권을 경제 협력에 대한 보상 성격으로 활용한다면 문제는 한층 커진다. 일본 정부는 투자와 무기 도입을 별도로 취급하며, 두 사안을 ‘패키지 거래’로 묶는 방식을 선호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금 배분 역시 문제다. 일본이 실제로 군수 분야에 대미 투자 자금 일부를 투입할 경우, 자동차·AI·반도체 등 민간 산업의 투자 이익은 상대적으로 감소하게 된다. 내부 자금 배분 경쟁이 생기면 “일본이 미국 경제를 위해 자금을 퍼붓는다”는 트럼프식 주장은 설득력을 잃는다.
일본뿐만 아니라 유럽(7,000억 달러), 한국(4,000억 달러)도 대미 투자금 배분으로 인해 골머리를 앓고 있다. 현재로써는 한국은 그린에너지, 유럽은 디지털 인프라 투자에 각각 중점을 둘 가능성이 큰 상황이다. 결국 투자금의 향방은 트럼프 대통령의 의사가 아닌 도쿄·브뤼셀·서울의 내부 사정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의미다. 곳곳에서 미국이 고압적인 태도를 버리고 '협의'에 나설 필요가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