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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O 해양환경보호위, 탄소 배출 규제 강화 나서 우왕좌왕하는 韓 해운업계, EU는 '의연' 美, 국제사회 탄소중립 요구에 역행

국내 해운업계에 일제히 비상이 걸렸다. 국제해사기구(IMO) 해양환경보호위원회가 도입한 온실가스 배출 규제로 인해 대규모 탄소부과금 부담을 짊어지게 된 탓이다. 국제 사회의 친환경 요구에 선제적으로 대응 체계를 구축한 유럽연합(EU) 등과는 달리, 한국 해운업계는 별다른 대책을 마련하지 못한 채 규제 영향권에 들게 될 것으로 보인다.
韓 해운업계 덮친 악재
30일 해운업계에 따르면 최근 IMO 해양환경보호위는 2050년 국제해운 탄소중립(Net Zero) 목표 달성을 위한 규제 강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총톤수(GT) 5,000톤 이상 선박을 대상으로 연료표준제를 도입하고, 현재 적용 중인 선박운항탄소집약도지수(CII)의 감축률을 상향해 친환경 전환을 가속화하겠다는 구상이다.
오는 2028년부터 본격 시행될 연료표준제는 선박 사용 연료의 탄소 함량에 대한 제한 기준을 정하고, 초과 사용 선박에 대해 탄소부과금을 부과하는 제도다. 탄소 함량 기준치는 2028년부터 매년 강화되며, 탄소부과금은 온실가스 초과 배출량 기준치에 따라 톤당 100달러(약 14만원)와 380달러(약 53만원) 등 2단계로 구분돼 부과된다.
이에 국내 해운업계는 우려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한국 조선사 대부분이 친환경 선박 도입률이 낮고, 탄소 중립 대책을 제대로 마련하지 못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국내 해운사별 선대 규모(2023년 기준) 비중에 따라 계산하면 국내 해운업계가 2028년 납부해야 할 탄소부과금은 5억2,000만 달러(약 7,130억원) 수준으로 추산된다. 이후 탄소부과금 부담은 2029년 7억6,400만 달러(약 1조530억원), 2030년에는 10억1,200만 달러(약 1조3,930억원) 등으로 점차 확대될 전망이다.
EU, 작년부터 선박 탄소 규제 시행
글로벌 해운업계의 '친환경 흐름'이 본격화하는 가운데, 여타 주요국들은 관련 대응에 힘을 쏟고 있다. 일례로 EU의 경우 지난해부터 영내 항구에 입항하는 5,000GT 이상 선박에 대해 배출한 CO2 1톤당 약 100달러의 부담금을 부과하고 있다. EU 배출권거래제(EU-ETS)에 따라 배출권을 구입해 제출하는 방식이다. 부과 비율은 지난해 선박 배출량의 40%에서 올해 70%까지 상승했으며, 내년에는 100%까지 상향 조정될 예정이다.
구체적으로 EU는 선박이 영내 항구를 오가는 경우 항해 거리 전체에서 배출한 양에 부담금을 부과한다. EU 항구에 정박 중일 때 배출한 오염 물질은 전량이 배출권 구입 대상이다. 다만 EU 영외에서 EU 항구로 들어오거나 EU 항구에서 외부로 나갈 시에는 전체 항로 거리 중 절반에만 부담금을 매긴다. 부과금 납부를 회피한 선박은 톤당 100유로 이상의 벌금을 내야 하며, 반복해서 위반하면 EU는 해당 선박에 입항 금지 조치를 취할 수 있다.
이처럼 EU가 강력한 선박 규제를 시행하는 배경에는 자체적인 탄소 감축 목표가 있다. EU는 2050년까지 탄소중립 사회로 전환하겠다는 목표를 법으로 명시하고, 탄소 배출량 감축을 위한 정책 수립 의무를 법제화했다. 이렇게 제정된 유럽기후법(European Climate Law)에 따라 EU의 행정부 격인 EU집행위원회(European Commission)는 지난해 ‘2050년 탄소중립 사회로의 전환을 위한 2040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 권고안(Recommendation for 2040 emissions reduction target to set the path to climate neutrality in 2050)’을 발표했다. 해당 권고안에는 2040년까지 EU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1990년 수준 대비 90%가량 감축하겠다는 포부가 담겼다.

美는 환경 규제 완화 나서
다만 모든 국가가 탄소중립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일례로 미국의 경우, 최근 줄줄이 환경 규제를 완화하며 국제사회의 흐름에 역행하는 중이다. 뉴욕타임스(NYT) 등 외신에 따르면 리 젤딘 미국 환경보호청(EPA) 청장은 29일(현지시간) 인디애나주 한 자동차 판매점에서 열린 행사에서 크리스 라이트 에너지부 장관과 함께 '위해성 판단'을 폐기한다고 밝혔다. 위해성 판단은 이산화탄소와 메탄 등 온실가스가 인류의 삶을 위협한다는 과학적 선언으로, 온실가스 규제와 관련한 각종 환경 정책의 근거가 돼 왔다.
아울러 EPA는 자동차업계가 친환경 전기차 생산 촉진을 위해 마련됐던 배기가스 배출 제한 규정도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자동차업계에 기후 변화와 관련한 규제를 부과하면 자동차 가격이 상승하고, 소비자의 선택지가 제한돼 인간의 건강에 진정한 위험이 발생할 수 있다는 논리다. NYT는 해당 규정 역시 위해성 판단에 기초해 마련된 것이며, 전임 조 바이든 행정부가 추진했던 친환경 정책의 핵심이었다고 설명했다.
EPA의 이번 조치는 재생 에너지와 전기 자동차의 확산을 제한하고, 석유, 천연가스, 석탄 생산을 확대하려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기조와 일치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2기 행정부 출범 첫날부터 기후 변화에 대한 미국의 약속을 폐기하고 파리 협정 탈퇴를 명령한 바 있다. 사실상 지금까지의 탄소 중립 노력을 무위로 돌리고 '화석 연료 시대'로 뒷걸음질 치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