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수정
현대차 최초의 외국인 CEO '호세 무뇨스' 외국인 앞세워 성장했던 닛산자동차 전철 밟을까 "막대한 변화 닥쳐올 것" 차후 성장 관건은
현대자동차가 회사 창립 이후 최초로 외국인 인사를 신임 최고경영자(CEO)에 선임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미국 전기차 시장의 장벽이 높아질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미국에 정통한 외국인 CEO를 앞세워 난관을 헤쳐 나가겠다는 구상으로 풀이된다.
현대차의 '파격 인사'
25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그룹은 지난 15일 장재훈 현대차 대표이사 사장을 현대차 부회장으로 승진시키고, 호세 무뇨스(Jose Munoz) 현대차 글로벌 최고운영책임자(COO)를 현대차 CEO로 선임하는 대표이사·사장단 인사를 발표했다. 외국인이 현대차 대표이사에 선임된 것은 1967년 창사 이래 처음이다. 무뇨스 신임 CEO는 2019년 현대차에 미주 담당 사장으로 합류했으며 현재까지 현대차 북미권역본부장 겸 COO를 맡아왔다.
시장에서는 이번 인사가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에 대비하기 위한 현대차의 '전략적 선택'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현대차가 미국에 정통한 외국인을 CEO로 내세워 트럼프 시대의 불확실성에 대비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트럼프 당선인은 선거 과정 대선 기간 동맹국의 모든 수입품에 대해 10~20%의 보편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공언하고, 한국 자동차 산업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인플레이션감축법(IRA) 폐지를 시사해 온 바 있다.
日 닛산자동차의 전례
현대차가 순혈주의 타파를 넘어 '국적 타파' 인사를 단행한 가운데, 시장의 이목은 과거 외국인 CEO를 앞세워 성장 가도를 달렸던 일본 닛산자동차의 전례에 쏠리고 있다. 지난 1999년 프랑스 르노자동차는 경영 위기에 빠져 있던 닛산과 자본 제휴를 하며 당시 르노의 수석 부사장이던 카를로스 곤(Carlos Ghosn)을 닛산에 파견했다.
곤은 △닛산 직원 14%(약 2만1,000명)의 희망퇴직 △일부 공장 폐쇄 △르노와 닛산의 자동차 플랫폼 공유 등을 통한 대규모 비용 절감에 나섰다. 2조1,000억 엔(약 19조600억원) 규모 부채에 허덕이던 닛산은 곤의 강력한 구조조정 덕에 흑자 전환에 성공하게 됐다. 공로를 인정받은 그는 2000년 닛산 사장이 됐고, 2005년에는 르노 CEO에도 올랐다.
이후 곤은 2016년 연비 과장이 발각돼 경영난에 빠진 미쓰비시(三菱)자동차를 인수하면서 마쓰비시자동차 회장 자리도 거머쥐었다. 곤의 지휘하에 닛산·르노·미쓰비시 얼라이언스(연합)가 출범한 것이다. 이들 3사 연합은 2016년 996만 대에 달하는 차량을 판매하며 폭스바겐, 도요타, GM에 이어 세계 4위의 자동차 기업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외국인 CEO가 떠난 자리
곤 체제가 막을 내린 것은 지난 2018년이었다. 2018년 11월 곤은 자신의 보수를 축소 신고해 금융상품거래법을 위반한 혐의 등으로 도쿄지검 특수부에 체포됐다가 2019년 3월 보석금 10억 엔(약 91억원)을 내고 석방됐다. 이후 일본 검찰은 한 달 뒤 특별배임죄를 적용해 그를 재체포했고, 곤 전 회장은 보석금 5억 엔(약 46억원)을 내고 다시 풀려났다. 이 과정에서 닛산은 "중대한 부정행위가 드러났다"며 그를 해임했다.
주목할 만한 부분은 곤이 회사를 떠난 이후 닛산이 주력 시장인 미국과 중국에서 사업 부진을 겪으며 휘청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닛산의 올해 4~9월 순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94% 감소한 192억 엔(약 1,740억원)에 그쳤다. 이는 코로나19 사태의 영향으로 적자를 기록했던 2020년 이래 최저 수준이다. 경영 위기에 봉착한 닛산은 최근 △글로벌 생산 능력 20% 감축 △전 세계 직원 9,000명 감원 △미쓰비시자동차 지분 34% 중 10% 매각 등을 골자로 하는 대규모 구조조정안을 발표했다.
업계에서는 닛산이 외국인 인사인 곤이 구축해 둔 경영 시스템을 '일본식'으로 복구하는 데 난항을 겪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와 관련해 한 시장 관계자는 "곤 전 회장이 닛산에 엄청난 변화를 불러왔듯, 현대차도 무뇨스 CEO 체제하에서 다양한 변화를 겪게 될 것"이라며 "앞으로의 관건은 외국인 CEO 선임을 통해 실질적인 글로벌 경쟁력이 강화될 수 있을지, 그리고 현대차가 외국인 CEO가 떠난 뒤에도 선진화된 '글로벌 경영 시스템'을 지킬 수 있을지다"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