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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화학 불황 장기화, 주요 기업 줄줄이 적자 전환 LG화학, 롯데케미칼, 한화솔루션 등 직원 수 줄어 롯데케미칼, 실적 악화로 인해 EOD 위기 빠지기도
국내 석유화학 업계의 불황이 장기화하고 있다. 중국의 저가 물량 과잉 공급, 글로벌 경기 침체 등 악재로 인해 수익성이 악화한 결과다. 과거 조 단위 영업이익을 기록하며 우수한 실적을 자랑하던 4대 석유화학 기업(LG화학 화학 부문, 롯데케미칼, 한화솔루션 케미칼부문, 금호석유화학)의 실적도 줄줄이 미끄러진 것으로 확인됐다.
석유화학 업계의 침체
24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최근 국내 석유화학 시장은 불황으로 인해 몸살을 앓고 있다. 중국 등의 저가 물량 공급 과잉, 글로벌 경기 침체 등의 영향으로 전반적인 업황이 악화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와 관련해 한 업계 관계자는 “과거에는 국내 기업이 수출한 석유화학 제품을 중국이 재가공하는 구조였지만, 중국이 자급력을 갖추게 되면서 국내 기업의 수출 물량이 현저히 감소했다"며 “여기에 중국의 저가 물량이 글로벌 시장에 쏟아지며 석유화학 제품 가격이 전체적으로 하락했다"고 설명했다.
악재가 누적되며 석유화학 기업들의 대표적인 수익성 지표인 에틸렌 스프레드(에틸렌 가격에서 원료인 나프타 가격을 뺀 금액)는 2022년 이후 줄곧 손익분기점인 톤(t)당 300달러(약 43만5,800원)를 밑돌고 있다. 올해 3분기 에틸렌 스프레드는 톤당 186.47달러에 불과했다. 팔면 팔수록 손해가 나는 셈이다.
이에 국내 4대 석유화학 기업의 실적 역시 눈에 띄게 악화했다. 이들 기업의 지난 3분기 기존 올해 누적 영업손실 총합은 5,012억원에 달한다. 2021년까지만 해도 줄줄이 영업이익을 기록하던 기업들이 줄줄이 적자 전환한 것이다. 이들 기업 중 3분기 기준 영업이익을 낸 기업은 금호석유화학뿐이다.
고용 불안 가시화
불황이 장기화하자 업계 곳곳에서는 인력 감축 움직임이 관측되고 있다. 올해 반기 보고서에 따르면 LG화학 석유화학 부문의 직원 수는 6,431명으로 1년 전(6,724명) 대비 293명 줄었다. 같은 기간 롯데케미칼의 직원 수 역시 4,965명에서 4,904명으로 61명 감소했다. 한화솔루션의 올해 상반기 직원 수는 5,768명으로 1년 전(5,975명)과 비교했을 때 207명 줄었다.
석유화학 업계의 고용 불안이 가시화하는 가운데, 근로자들의 우려도 날이 갈수록 커지는 추세다. 이에 LG화학은 지난 13일 청주시 노동조합과 임금 및 단체협상(임단협)의 일환으로 고용안정 협약서를 교환, 고용 보장을 약속하기도 했다. 청주에는 이차전지 소재인 양극재 등을 생산하는 첨단소재사업본부 직원들이 근무한다. 해당 사업본부 직원들은 지난 4월 희망퇴직 시행 이후 불안감을 호소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고용안정 협약에는 회사가 공장 가동을 중단하거나 사업 재편에 따라 일부 사업부를 매각하더라도 직원들을 임의로 정리해고하지 않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와 관련해 LG화학 측은 “심각한 고용안정 이슈가 현실화하고 있음에 직원들과 인식을 같이한다”며 “직원 고용안정을 도모하기 위해 협약을 체결한 것”이라고 밝혔다.
롯데케미칼 'EOD 사태'
한편 롯데케미칼은 수익성이 악화하며 2조500억원 규모의 14개 공모 회사채를 즉각 상환해야 하는 기한이익상실(EOD)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앞서 롯데케미칼은 회사채를 발행하면서 EBITDA(이자·세금·감가상각 차감 전 이익, 기업이 영업 활동으로 벌어들이는 현금 창출 능력을 보여주는 수익성 지표)를 이자 비용으로 나눈 수치를 5배 이상으로 유지해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해당 수치는 롯데케미칼의 영업손실 확대로 인해 지난 9월 기준 4.3배까지 내려앉았다.
시장에서는 롯데케미칼의 회사채 상환 리스크가 롯데그룹 전체의 유동성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롯데케미칼 회사채에 교차 부도 조항이 존재하는 만큼, 하나의 회사채에서 디폴트(채무불이행)가 발생할 경우 나머지 회사채까지 연쇄적으로 EOD 상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롯데케미칼은 그룹의 핵심 자산인 롯데월드타워를 은행권에 담보로 제공하는 '초강수'를 뒀다. 국내 4대 은행은 시가 6조원 규모의 롯데월드타워를 담보로 잡고 2조5,000억원 규모의 롯데케미칼 회사채 신용보강 계약을 맺었다.
이후 롯데케미칼은 지난 19일 잠실 롯데월드타워에서 각 회사채에 대한 사채권자 집회를 열었으며, 이 자리에서 14개 공모 회사채의 사채관리계약 조항 내 실적 관련 재무특약 조정을 가결했다고 밝혔다. 신용보강 계약 사실을 무기로 채권자들을 설득, EBITDA 관련 특약 삭제에 합의한 것이다. 롯데그룹은 이번 EOD 사태를 계기로 안정적 유동성 확보에 주력하고 재무구조 개선과 수익성 강화에 박차를 가하겠다는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