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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제철의 US스틸 인수, 바이든 제동으로 '암초' 바이든의 독단적 결정 및 美 경쟁사 개입 여부 논란 "동맹국으로서 이해하기 어렵다" 불만 드러낸 日
일본제철의 US스틸 인수와 관련한 잡음이 커지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참모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독단적으로 인수 요청을 불허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다. 일각에서는 이전부터 US스틸 인수 의지를 타진해 왔던 미국의 철강 기업 클리블랜드클리프스가 바이든 대통령의 인수 불허 결정에 개입했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바이든의 '인수 불허'
6일 철강업계에 따르면 최근 바이든 대통령은 일본제철의 US스틸 인수를 불허한다고 밝혔다. 앞서 로이터통신과 CNN 등 외신은 3일(이하 현지시간) 조 바이든 대통령이 “일본제철의 149억 달러(약 21조원) 규모 US스틸 인수를 막고 있으며, 이는 행정부 말기에 행정 권한을 크게 사용했다는 의미”라 발언했다고 전했다. 그는 “여러 차례 말했듯이 철강 생산과 이를 생산하는 철강 노동자들은 우리나라의 중추”라며 “국내적으로 강력하게 소유하고 운영하는 철강 산업은 필수적인 국가 우선순위며, 탄력적인 공급망에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바이든 대통령은 고위 참모들의 반대가 이어지는 상황에 독단적으로 인수 불허를 결정한 것으로 전해진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제프 자이언츠 백악관 비서실장이 지난 2일 소집한 회의에서 제이크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을 포함한 일부 참모들은 바이든 대통령에게 US스틸 인수와 관련한 최종 결정을 차기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로 넘기는 방안을 제시했다. 일본제철이 미국의 국가 안보에 가할 수 있는 위협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유예 기간을 둬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WP는 논의 과정에서 존 파이너 국가안보 부보좌관,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 커트 캠벨 국무부 부장관, 람 이매뉴얼 주일미대사, 재닛 옐런 재무장관, 재러드 번스타인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CEA) 위원장 등 고위 관리들이 인수 불허에 반대하거나 의구심을 표명했다고 보도했다. 옐런 재무장관은 국가 안보 위협에 대한 명확한 증거 없이 인수 제안을 거부하면 외국인 투자 심사를 담당하는 외국인투자심의위원회(CFIUS)의 정치적 중립성이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했으며, 일부 참모들은 이번 결정이 미·일 동맹에 부담을 줄 수 있다고 경고한 것으로 전해졌다.
클리블랜드클리프스 개입 가능성
바이든 대통령이 참모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매각 불허 결정을 내리자, 시장은 미국 철강 회사 클리블랜드클리프스의 개입 가능성을 주시하고 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로렌소 곤살베스 클리블랜드클리프스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투자자 회의에서 9차례 이상 일본제철과 US스틸의 합병이 바이든 대통령에 의해 무산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해당 내용은 지난달 17일 일본제철과 US스틸이 CFIUS에 제출한 서한에도 포함됐다. 서한에 따르면 곤살베스 CEO는 지난해 3월 JP모건이 주최한 투자자 회의에서 "US스틸을 나에게 팔도록 강요할 수는 없지만, 내가 동의하지 않는 거래가 성사되지 않도록 만들 수는 있다"며 "이 거래는 성사되지 않을 것"이라고 발언했다. 이어 "바이든 대통령이 아직 (해당 거래에 대해) 발언하지 않았을 뿐"이라며 "곧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다음 날 바이든 대통령은 해당 합병에 반대 입장을 공식 발표했다. US스틸 측은 곤살베스 CEO가 실적 발표에서도 비슷한 발언을 반복했으며, 그의 발언 이후 US스틸의 주가가 하락하는 사례가 여러 차례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아울러 서한에는 곤살베스 CEO가 "CFIUS는 거래를 차단하기 위한 핑계일 뿐"이라며 "결국 대통령이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다"고 말한 내용도 담겼다. 앞서 일본제철의 US스틸 인수 심사를 맡은 CFIUS는 양 사 합병이 위원회 내에서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고 백악관에 통보한 바 있다.
日 "미국 판단 유감"
US스틸 인수 거래와 관련한 잡음이 거세지는 가운데, 미국과 일본 사이에 감도는 긴장감도 눈에 띄게 고조되고 있다. 일본제철의 US스틸 인수 불허는 일본 기업의 미국 기업 인수합병(M&A) 시도가 미국 대통령 명령으로 저지된 첫 사례기 때문이다. 미국 대통령이 CFIUS 심사를 근거로 인수 중지를 명령한 사례는 8건으로, 이 중 7건은 인수 주체가 중국 관련 기업이었으며 동맹국 기업의 인수 시도가 중지된 전례는 없었다.
NHK·니혼게이자이(닛케이)·요미우리 등 현지 언론을 종합하면 무토 요지 일본 경제산업상은 바이든 대통령이 일본제철의 US스틸 인수 중지 명령을 내린 것에 대해 "동맹국으로서 미국의 판단을 이해하기 어렵고 유감스럽다"며 "일본 산업계에서 향후 미·일간 투자에 강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어 일본 정부로서도 무겁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바이든 정권에 이번 판단에 대한 추가 설명을 비롯해 우려를 불식하기 위한 대응을 요구할 것"이라고 부연했다.
현지 언론들도 비판적 의견을 쏟아내고 있다. 닛케이는 사설을 통해 “(바이든 대통령이 일본제철의 US스틸 인수를 불허한 이유로 지목한) 미국의 국가 안보 약화 우려는 근거 없고 부당한 정치적 간섭”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일본제철의 US스틸 인수 불허로 불이익을 받는 쪽은 오히려 미국 국민”이라며 “동맹국인 일본의 합법적인 거래를 불허하는 것은 대미 투자를 냉각시킬 것”이라고 경고했다. 요미우리신문도 사설에서 “미국 대통령이 동맹국인 일본 기업의 인수 계획을 막기 위해 자신의 권한을 사용한 매우 이례적인 일로, 미·일 관계에 화근을 남길 용납할 수 없는 결정”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