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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준 고위 인사들, 인플레이션 통제 강조 인플레 부를 트럼프 정책에 매파적 분위기 버냉키 "트럼프 정책, 인플레에 큰 영향 없어"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고위 인사들이 도널드 대통령 당선인 정부 출범을 앞두고 일제히 매파(통화 긴축 선호) 목소리를 내고 있다. 연준의 통화 정책 결정 기구인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 멤버 중 비둘기파 분류되는 인사들조차 매파 기조에 가세하는 모양새다.
쿠글러 연준 이사·데일리 연은총재 "금리 인하 필요 없어"
5일(이하 현지시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아드리아나 쿠글러 연준 이사와 메리 데일리 샌프란시스코 연방준비은행(연은) 총재는 4일 인플레이션이 아직 통제되지 않았다며 금리 동결에 무게를 실었다. 이들은 금리 인하를 서두르면 미국 노동 시장을 자극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쿠글러 이사는 이날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미국경제학회(AEA) 콘퍼런스에서 “우리가 아직 목표에 이르지 않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면서 “누구도 먼저 어느 곳에서든 샴페인을 터트리지는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가 실업률이 지난해 11월 당시의 4.2% 수준이 계속 유지되고, 급격하게 올라가지 않기를 바란다”고 했다. 앞서 쿠글러 이사는 최근 CNBC 인터뷰에서 현 인플레이션에 대해 "지난해 1분기처럼 '울퉁불퉁'(bump)한 모습"이라며 "이러한 현상이 일시적인지 확인하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연준 내 비둘기파로 분류되는 데일리 총재도 “현시점에서 노동 시장의 추가 약화를 바라지 않으나 아마도 점진적으로 어느 달에 그렇게 움직일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인플레이션 둔화 현상이 멈췄고, 경제가 강한 상황을 고려하면 금리 인하는 속도 조절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역설한 것이다. 데일리 총재는 “개인적 관점에서 말하면 인플레이션이 확실히 하락하고 있다는 자신감이 생기면서 기준금리를 100bp 인하했지만, 현재의 정책은 경제 상황에 적합하다”며 “우리는 더 신중하고 점진적으로 접근할 기회를 얻게 됐고, 추가적인 결정을 내리기 전에 경제가 어떻게 진행하는지 더 많은 정보를 수집할 시간이 있다”고 말했다.
바킨 연은 총재도 "금리 충분히 제약적"
연준 내 매파로 통하는 토머스 바킨 리치먼드 연은 총재도 인플레이션이 2% 목표로 복귀했다는 더 큰 확신을 얻기까지 통화정책을 제약적 수준으로 유지해야 한다고 봤다. 바킨 총재는 "인플레이션에 하방 위험보다는 상방 위험이 크다고 생각한다"며 미국 경제가 강한 모습을 지속하고 임금 및 물가에 상승 압력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바킨 총재의 발언에 대해 트럼프 당선인 재집권 이후 인플레이션 가능성에 대해 경고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미국 연준은 지난해 3차례에 걸쳐 기준금리를 총 1%포인트 인하, 4.25∼4.5%로 만든 바 있다. 특히 지난달에는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내리면서도 올해 금리 인하 폭 전망치를 기존 1%포인트에서 0.5%포인트로 줄이는 매파적 인하를 단행했다.
미국 연준이 주시하는 개인소비지출(PCE) 가격지수 상승률(전년 동월 대비)은 지난해 9월 2.1%에서 10월 2.3%, 11월 2.4%로 올라온 상태다. 이달 20일 트럼프 당선인 취임 후 관세 공약 등이 현실화할 경우 인플레이션을 자극할 가능성이 있으며, 이에 따라 당초 기대만큼 금리를 내리기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도 내놓는 상황이다.
'트럼프 리스크'에 美 금리 예측 제각각
다만 글로벌 투자은행(IB)들의 기준금리 전망치는 제각각인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주요 10개 IB 중 도이체방크는 내년 연준이 기준금리를 인하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노무라는 0.25%포인트 금리를 인하할 것으로 봤고, 바클레이스·뱅크오브아메리카·모건스탠리 등 3곳은 연준과 동일한 0.5%포인트 인하를 전망하고 있다. 골드만삭스·JP모건·웰스파고 3곳은 0.75%포인트 인하, 캐나다 투자은행 TD는 1%포인트 인하, 시티는 1.25%포인트 인하를 내다보고 있다.
지난 11월 미국 대선 이전만 해도 IB들의 시각이 이렇게 제각각이지는 않았다. 조사 대상 IB 10곳이 모두 연준과 같은 수준의 인하를 내다보거나, 기껏해야 연준이 전망보다 1~2차례 더 인하할 것이란 일종의 컨센서스가 존재했다. 하지만 트럼프 당선이 확정된 후 그의 공약 이행을 책임질 행정부가 모습을 드러내면서 금리 전망이 복잡해졌고, IB들 전망도 엇갈리기 시작했다.
트럼프는 대선 기간 내내 중국에 대해 60%의 관세, 나머지 국가의 수입품에 대해서는 10~20%의 보편관세를 부과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웠다. 연준 부의장 출신인 앨런 블라인더 프린스턴대 교수는 “관세를 높이고 이민자를 추방하는 등 트럼프의 모든 정책 효과를 더하면 1년에 물가상승률이 1%포인트씩 증가할 것”이라고 했다. 현재 2.7%인 물가상승률이 3년 뒤에는 5% 후반대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대부분의 IB들도 트럼프 정책이 단기적으로 미국 경제 성장률을 높이지만, 인플레이션 상승 압력을 높일 것으로 보고 있다. 단, 트럼프의 공약이 실제 실행될 수 있을지, 트럼프 정책의 부작용이 어느 정도일지에 따라 기준금리 인하 전망을 달리하고 있다.
도이체방크와 노무라 등 내년에 연준이 기준금리를 예상보다 적게 내릴 것으로 보는 IB는 트럼프의 관세 부과와 이민 정책이 미국 소비자물가를 단기간에 끌어올릴 것으로 본다. 고물가 상황이 예상보다 빨리 고착화했기 때문에 연준이 12월 전망 때보다 금리 인하에 보다 신중할 수밖에 없을 것이란 판단이다. 반면 연준 예상보다 더 큰 폭의 정책 금리 인하를 전망한 IB들은 트럼프 관세와 이민 제한 정책이 소비 등 경제 활동을 압박해 예상보다 미국 경제가 빠르게 둔화할 것으로 본다. 이렇게 되면 연준이 성장 회복에 무게를 두고 금리를 더 낮출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벤 버냉키 전 연준 의장은 트럼프 차기 행정부의 경제 정책이 인플레이션에 큰 변화를 가져오지 못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4일 전미경제학회(AEA) 회의에서 패널 토론에 나선 버냉키 전 의장은 "트럼프의 정책이 재정 측면에서 어떤 효과를 가질지는 별개로 하더라도, 인플레이션율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이 연장하고자 하는 2017년 감세 정책은 이미 거의 시행되고 있어 해당 감세 정책을 연장한다고 해도 추가적인 인플레이션에 미치는 효과는 제한적일 것으로 봤다.
다만 트럼프 차기 행정부가 연준의 독립성에 영향을 줄 경우에는 경제에 중요한 변수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버냉키 전 의장은 "연준의 커뮤니케이션은 더 이상 채권 시장에 정책 계획을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정책에 대한 의회와 대중의 지지를 얻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며 "(연준은) 정책의 이유를 설명해야 하며, 인플레이션과 시장에 미칠 영향 때문에 독립성을 잃는 것은 매우 나쁜 일이 될 것이라고 설명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