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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로존 12월 CPI 예비치, 전년 대비 2.4% 핵심 인플레이션도 4개월 연속 2.7% 獨·佛 예산안 마련 실패, 유럽경제 '시한폭탄'
유로존(유로화 사용 20개국)의 12월 인플레이션이 전월 대비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9월 1.7%로 저점을 찍은 이후 3개월 연속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지만 유럽중앙은행(ECB)의 금리 인하에 대한 시장 기대감은 여전한 분위기다.
유로존 인플레이션 2.4%, 전월比 0.2↑
8일(현지시각) 유럽연합(EU) 통계청인 유로스탯에 따르면 유로존의 12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동기 대비 2.4% 상승해 11월의 2.2% 대비 상승 폭이 커진 것으로 집계됐다. 유로존 인플레이션은 지난해 9월 1.7%를 기록하며 3년 3개월 만에 처음으로 2% 밑으로 내려갔지만 10월 2.0%, 11월 2.2%, 12월 2.4%를 찍어 3개월 연속 수치가 상승했다.
주요국 중에서는 독일이 2.8%를 기록했고 프랑스는 1.8%, 이탈리아는 1.4%, 스페인은 2.8%를 기록했다. 네덜란드는 3.9%, 벨기에는 4.4%, 아일랜드는 1.0%였다. 부문별로는 서비스가 4.0% 올랐고 음식·알코올·담배는 2.7% 올랐다. 비에너지 산업재는 0.5%, 에너지는 0.1% 상승했다.
높은 서비스 물가와 에너지 가격 상승으로 물가가 큰 폭으로 오른 가운데 식료품과 에너지를 제외한 근원 물가도 2.7% 상승했다. 또한 서비스 부문의 물가 상승률이 4%에 이르는 등 물가 상승률을 목표치인 2%로 끌어내리는 여정이 녹록지 않음을 보여줬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ECB의 금리 인하가 침체된 유로존 경제를 되살리려 하면서 인플레이션이 상승했다"고 분석했다.
유로존 실업률은 11월 6.3%를 기록해 4개월 연속 변동없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를 두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낮은 실업률은 일자리 시장이 여전히 빡빡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노동자들에게는 더 높은 임금 인상을 요구할 수 있는 여지를 주고, 이는 결국 물가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짚었다.
ECB, 경기침체 우려에 3연속 금리 인하
블룸버그통신은 유로존의 1월 물가 상승률도 2.4%를 유지할 것으로 예상하면서 올해 연말에나 물가 상승률이 목표치인 2%를 달성할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지표 발표 이후에도 유럽 주요국 채권 시장은 이렇다 할 반응을 보이지는 않았다. 통화정책에 가장 민감한 독일 국채 2년물 수익률은 2.18%로 전일 거래된 2개월 만에 최고치 대비 1bp(1bp=0.01%포인트) 하락했다. 아울러 ECB의 금리 인하에 대한 기대감도 꾸준히 유지되면서 스와프 시장에서는 연말까지 정책 금리가 100bp 넘게 낮아질 것으로 반영했다.
블룸버그의 제이미 러시 수석 유럽 이코노미스트는 "물가 상승의 상당 부분은 연료 가격의 기저 효과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역내 물가 압력이 실질적으로 상승하고 있다는 증거는 없다"며 "큰 그림은 여전히 디플레이션이 일반화돼 있어 올해도 ECB가 금리를 계속 인하할 것으로 예상하며 100bp의 금리 인하를 예상한다"고 말했다.
ECB는 지난달 네 번째 금리 인하를 단행했고 이후에도 지속적인 금리 인하를 시사한 바 있다. 시장에서는 현재 유로존 경제가 강한 회복세를 보이지 못하는 상황에서 3%의 예금 금리는 여전히 경제 활동을 제약하는 수준이라고 보고 있다. 이에 유로존 경제의 침체된 양상을 반전시키기 위해 ECB가 금리 인하에 적극 나설 것이라는 전망도 큰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
다만 인하폭은 당초 예상과 달리 작은 것이라는 관측이다. 컨설팅기업 캐피털이코노믹스 분석가인 잭 앨런 레이놀즈는 "유로존의 경제 전망이 여전히 좋지 않다"면서 "ECB가 금리를 천천히 인하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FT도 "이번 인플레이션 지표는 ECB 금리 결정권자들이 50bp 대폭 인하를 단행할 가능성이 더욱 낮아졌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이달 말 통화정책회의에서 기준 금리를 현재 3%에서 0.25%포인트 정도 인하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했다. 시장 역시 ECB가 현재 연 3.00%인 금리를 올해 상반기 네 차례 통화정책회의에서 0.25%포인트씩 인하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유로존 성장 정체·경쟁력 약화 우려
유럽 경제의 두 기둥인 독일과 프랑스가 정치적 혼란과 경제적 불확실성 속에서 올해 예산안 마련에 실패한 것도 금리 인하 전망에 무게를 더한다. 먼저 독일은 지출 부족으로 경기 침체와 투자 부족의 늪에 빠져 있다. 캐피털이코노믹스의 닐 시어링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독일 경제의 가장 큰 문제는 지나치게 긴축적인 재정 정책"이라며 "독일의 '부채 브레이크'는 재정 적자 규모를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어 경기 부양을 위한 재정 지출에 제약이 크다"고 짚었다. 독일의 공공 부채 부담은 낮은 수준이지만, 현재의 경기 침체 상황에서는 보다 유연한 재정 정책 운용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그러면서 "독일의 긴축 정책 완화가 유럽 경제 회복에 중요한 열쇠가 될 수 있다"고 강조하며, 독일의 재정 지출 확대가 독일 경제는 물론 다른 유럽 국가들의 경제 성장에도 긍정적인 파급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프랑스의 경우 독일과 달리 과도한 재정 지출로 심각한 재정 위기에 직면해 있다. 프랑스 재정경제부에 따르면 올해 재정 적자는 GDP(국내총생산)의 6.1%, 국가 부채는 GDP의 112%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새로 임명된 프랑수아 바이루 총리가 예산안 통과를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여야 간의 극심한 정치 갈등이 발목을 잡고 있는 형국이다. 이는 전임 미셸 바르니에 총리가 겪었던 난관과 유사한 상황이다.
이 같은 경제 성장에 대한 불확실성은 ECB의 기준 금리 인하에도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다. ECB는 2025년 유로존 경제 성장률을 1.1%로 전망하고 있다. 다만 크리스틴 라가르드 ECB 총재는 "글로벌 무역 마찰 심화와 경제 주체들의 낮은 신뢰도가 예상보다 빠른 소비 및 투자 회복을 저해할 수 있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대다수 전문가도 금리 인하만으로는 유럽 경제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시어링은 "유럽이 지속적인 쇠퇴의 길에서 벗어나려면 과감한 개혁이 필수적"이라며 "근본적인 변화 없이는 유럽 경제의 미래는 어둡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