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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은행 손 들어준 2심 파기환송
재심리 및 최종 결정 약 6개월 소요 전망
기존 판례 뒤집은 최근 전원합의체
IBK기업은행 전현직 직원 약 1만2,000명이 “재직 중인 직원에게만 지급하는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해달라”며 제기한 소송에서 대법원이 회사의 손을 들어준 2심을 파기하고 해당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지난달 19일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을 재확인한 것으로, 법조계에선 노조의 최종 승소 가능성에 무게를 싣고 있다.
노조 “법정수당 산정 기준에 정기상여금 포함해야”
14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3부(주심 대법관 이흥구)는 지난 9일 기업은행 전현직 직원들이 회사를 상대로 낸 임금 소송에서 “해당 사건의 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2심 판결을 부분 파기하고 서울고등법원에 환송했다. 대법원은 “기본 봉급의 600%를 일정 주기로 분할해 정기적으로 지급하는 상여금은 재직 조건과 무관하게 통상임금으로 봐야 한다”고 부분 파기 이유를 밝혔다.
임금을 둘러싼 기업은행의 노사 갈등은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4년 6월 기업은행 전현직 직원 1만2,000여 명은 회사가 기본급의 600%인 정기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하지 않는 것은 부당하다며 소를 제기했다. 시간외수당과 연차수당 등 법정수당을 산정할 때 정기 상여금까지 포함한 통상임금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는 게 노조 측 주장이다.
2016년 진행된 1심에서는 노조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이듬해 2심에서는 노조가 패소했다. 2심 재판부는 “근로자가 특정 일자에 근로를 제공하더라도 지급일 이전에 퇴직하거나 휴직할 경우 상여금을 받을 수 없다면, 고정적인 임금으로 볼 수 없으므로 통상임금으로 볼 수 없다”고 판결 이유를 밝혔다.
대법원이 해당 사건을 파기 환송함에 따라 서울고법에서 사건을 다시 심리해야 하지만, 결국 노조가 승소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게 법조계의 중론이다. 청구취지 변경, 신청 금액 확정 등을 고려하면 서울고법 파기환송심의에서 최종 결정까지는 최대 6개월이 소요될 전망이다.
사실상 패소 판결을 받은 기업은행으로선 비용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기업은행은 소송가액 775억원에 장기간 소송 기간으로 인한 이자까지 더해 최소 2,272억원을 지급해야 할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이에 대해서는 충당금을 충분히 적립했기 때문에 실적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다는 게 기업은행의 설명이다. 기업은행 관계자는 “1차 소송가액 지급은 충당금을 충분히 적립해 놨기 때문에 지급에 문제가 전혀 없다”며 “다만 지급 방식과 인원 확정 등 세부적인 부분의 조정이 필요해서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대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기상여금의 통상임금 포함 여부 규정 정비도 필요해서 늦지 않게 시스템을 통해 개인이 확인할 수 있게 정비할 방침”이라고 부연했다.
후불임금 전제한 기업은행 임금체계
그간 기업은행은 정기상여금의 경우 지급일 기준 재직 중인 근로자에게만 지급되기 때문에 통상임금의 주요 인정 요건인 ‘고정성’에 어긋난다고 주장해 왔다. 근로자가 근로를 제공하는 데 대한 대가를 의미하는 통상임금은 재직 여부 등 추가 추가적인 조건이나 자격 없이 지급이 확정된 임금을 의미한다. 대법원은 2013년 전웝합의체 판결에서 △정기성 △일률성 △고정성을 가진 상여금만 통상임금으로 인정한 바 있다. 2017년 2심 재판부가 기업은행의 손을 들어준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당시 2심 재판부는 기업은행의 임금체계가 모두 후불임금을 전제로 편성됐고, 고정성을 다투는 상여금이 선불임금이라는 명시적인 규정 또한 없으므로 고정성이 담보되지 않는다고 봤다.
하지만 노조의 상고로 소송이 길어지는 사이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례가 변경됐다. 지난달 19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어떤 임금을 지급받기 위해 특정 시점에 재직 중이어야 한다는 조건이 붙었다는 사정만으로는 해당 임금의 통상임금성이 부정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이번 판결에서 대법원이 “2심은 고정성을 통상임금의 개념적 징표로 전제해 이 사건 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 통상임금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밝힌 배경이다.
시발점은 금아리무진 판결
통상임금과 관련된 노조의 소 제기는 2012년 3월 대법원이 금아리무진 판결에서 “정기상여금이더라도 통상임금으로 볼 여지가 있다”고 판시한 이후 급증했다. 이후 통상임금에 관한 논란이 커지자,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같은 해 12월 갑을오토텍 판결을 통해 기존의 통상임금에 관한 법리를 종합, 통상임금에 대해 명확히 했다. 정기적·일률적·고정적으로 지급되면 통상임금에 해당하며, 상여금 소급분은 신의칙을 적용해 추가임금 청구를 제한할 수 있다고 판시한 것이다.
이후 노동계에서는 그간 법 규정 미비를 이유로 미뤄왔던 소송을 줄줄이 제기하고 나섰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조사에 의하면 금아리무진 판결부터 전원합의체 판결까지 불과 9개월 사이 제기된 임금 관련 소송은 34건으로 집계됐으며, 전원합의체 판결 이후 2015년 말까지 2년간 제기된 소도 44건에 달했다. 금아리무진 판결 전 진행 중이던 통상임금 관련 소송이 5건에 불과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매우 가파른 증가세다.
이와 관련해 송원근 당시 전경련 경제본부장은 “통상임금에 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이후 많은 시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산업 현장에서는 이와 관련한 갈등이 끊이지 않고 있다”고 진단하며 “(노사 갈등이) 기본적으로 입법 미비에서 발생한 만큼 조속히 근로기준법을 개정해 통상임금 범위를 명확히 해야 한다”고 비판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