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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집중투표제 안건 상정말라" MBK·영풍 측 추천 이사후보 14명 선임될 듯 MBK·영풍, 경영권 분쟁 최종 승기 잡나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이 경영권 방어를 위해 추진한 '집중투표제를 통한 이사 선임안'에 제동이 걸렸다. MBK파트너스·영풍 연합이 고려아연을 상대로 낸 가처분 신청을 법원이 받아들이면서다. 이로써 오는 23일 열리는 고려아연 임시주주총회에서 MBK·영풍 연합이 승리할 가능성이 커졌다. 이사 1명당 과반이 찬성하면 선임되는 '단순투표' 방식으로 이사 선임 여부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최 회장 측이 추천한 이들이 이사회에 입성하려면 국민연금과 국내외 기관 및 개인 주주들 전원이 임시주총에 출석해 모두 최 회장 쪽 후보들에게만 찬성표를 던져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게 전문가 중론이다.
법원, 집중투표제 금지 가처분 인용
21일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50부(수석부장판사 김상훈)는 영풍이 고려아연을 상대로 제기한 의안상정 금지 등 가처분 신청을 인용했다. 재판부는 “유미개발이 집중투표제 도입을 제안하던 당시 고려아연의 정관은 명시적으로 집중투표제는 적용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었다”며 “결국 이 사건 집중투표 청구는 상법의 규정을 위반한 것으로 적법한 청구로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상법 제382조의2 1항은 ‘정관에서 달리 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소수주주는 회사에 집중투표 방식으로 이사를 선임할 것을 청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MBK·영풍 측은 소수주주가 집중투표를 청구하는 ‘시점’에 이미 정관으로 집중투표가 허용된 상태에서만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유미개발이 정관 변경과 함께 집중투표로 이사를 선임할 것을 청구했기 때문에 적법한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반면 고려아연 측은 상장사가 정관에서 집중투표를 배제하고 있는 경우라도, 집중투표제 도입을 위한 정관 변경이 가결될 것을 전제로 한 ‘조건부 이사 선임’을 안건으로 상정할 수 있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법원은 고려아연 측 주장이 상법에 반하는 해석이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집중투표에 관해 규정하는 상법 규정 어디에도 해당 회사의 정관에 집중투표를 배제하는 규정이 있음에도 해당 규정이 개정될 것을 조건으로 집중투표 청구가 허용된다는 취지의 규정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현재 우리나라 상장사는 대부분 집중투표를 배제하는 정관 규정을 두고 있는데 만약 조건부 집중투표 청구가 상법상 허용되고 회사는 이와 같은 청구를 항상 받아들여야 한다고 해석하는 경우 회사는 항상 집중투표를 위한 준비를 해야 한다”며 “이는 회사에 지나치게 무거운 의무를 부담시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가처분 신청은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의 사실상 가족회사인 유미개발이 지난달 집중투표제 도입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집중투표제는 주식 1주당 이사 선임 안건마다 1주씩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제도로, 최 회장 측은 그간 집중투표제를 도입하기 위해 상당한 공을 들였다. 현재 MBK·영풍 측의 지분율은 40.97%(의결권 46.7%)로 과반에 육박하는 데 반해, 최 회장 측은 우호 지분을 합쳐도 34.24%(의결권 기준 39.16%)에 불과해 이사회 장악이 어려운 상황이다. 그런데 집중투표제가 도입되면 얘기가 달라진다. 주주들이 특정 이사 후보에게 의결권을 몰아 줄 수 있어 최 회장 측 소액주주들이 보유표를 집중한 뒤 MBK·영풍 측이 원하는 이사들의 진입을 막을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MBK·영풍 연합, 이사회 장악 가시권
하지만 이날 법원의 결정으로 고려아연은 경영권을 방어할 최후의 히든카드가 사라졌다. 고려아연 측 캐스팅보트인 국민연금이 지난 17일 집중투표제 안건에 대해 찬성을 결정하면서 최 회장 측에 힘이 실리는 듯했으나, 이번 법원 판결로 집중투표 도입 대신 일반 표결 방식으로 이사 선임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임시주총에서 MBK·영풍 측 이사 후보 전원의 이사회 입성 가능성도 높아졌다. 집중투표제 도입을 위한 정관 변경 의안이 가결될 것을 전제로 집중투표 방식으로 이사를 선임하는 제2호와 3호 의안은 상정할 수 없게 돼서다. 대신 4호인 '이사 수 상한이 19인임을 전제로 한 이사 선임의 건'과 5호인 '이사 수 상한이 없음을 전제로 한 이사 선임의 건'이 상정될 수 있다. 다만 이사 수 상한을 두는 정관 변경(1-2호 의안)은 주총 특별결의 사항이라 출석 주주의 3분의 2가 동의해야 한다. MBK·영풍 측 의결권 지분이 46.7%기 때문에 부결될 수밖에 없는 구조인 셈이다. 이에 따라 4호 '이사 수 상한이 19인임을 전제로 한 이사 선임의 건'은 폐기가 되고,' 5호 '이사 수 상한이 없음을 전제로 한 이사 선임의 건'만이 상정될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되면 최 회장 측이 추천한 이사들의 경우 선임이 쉽지 않다. 앞서 고려아연 측이 추천한 이사 후보는 7인, MBK·영풍이 제안한 후보는 14명이었다. 임시주총에서는 과반수 득표제 방식에 따라 이들의 이사 선임 여부를 결정하게 되는데, MBK·영풍 측 의결권 지분은 과반에 못 미치지만, 의결권 행사를 마친 노르웨이연기금 등 해외 기관 투자가들의 지분과 주총 출석률 등을 고려하면 50% 달성은 무난하다는 평가다.
뜻밖의 캐스팅보터 미래에셋 ETF, 고려아연 의결권 지분 1.5% 보유
MBK·영풍 측 이사 후보 14명 전원이 이사회 입성에 성공하면 현재 고려아연 이사회 이사 12명 중 1명(장형진 영풍 고문)에 불과한 MBK·영풍 측 인사는 15명으로 늘어난다. 이 경우 MBK·영풍 측은 이사회 과반을 확보하게 된다. 자신들이 추천한 14명은 선임하고, 최 회장 측 추천 인사의 이사회 진입을 막을 수 있다는 얘기다.
MBK·영풍이 상정한 안건들도 대거 통과될 것으로 관측된다. 특히 집행임원제도는 무리 없이 도입될 것으로 보인다. 의결권 자문사들은 물론 기관투자자들도 이사회 개선 필요성에 대해 공감하며 집행·감시에 대한 역할을 분리하는 것에 찬성하고 있어서다. MBK파트너스에 따르면 국내외 연기금 가운데 고려아연 임시주총 의안에 대한 표결 결과를 공개한 4곳(캘리포니아교직원연금(CALSTRS), 캘리포니아공무원연금(CalPERS), 노르웨이정부연기금(NBIM), 국민연금) 가운데 3곳(CALSTRS, CalPERS, NBIM)은 MBK-영풍 측에 찬성표를 던졌다. 아울러 중립을 표명한 투자자들도 해당 안건에 대해서는 찬성표를 던질 가능성이 높다.
다만 막판 변수의 가능성은 남아 있다. 특히 미래에셋그룹의 해외 ETF(상장지수펀드) 운용사 글로벌X(Global X)가 고려아연 지분 약 1%를 가지고 있어 표결 방향에 관심을 모은다. 글로벌X가 보유한 고려아연 의결권 약 1%는 결코 적지 않은 수치다. 최 회장 측과 MBK·영풍 연합은 물론 국민연금, NBIM 등이 속속 의결권 방향을 공개한 가운데 피아식별이 정확히 드러나지 않은 의결권은 거의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집중투표제를 다루는 안건에서 글로벌X 의결권 비중은 1.5%(17만 주)~1.8%(20만 주) 수준으로 파악됐다. 주식 수 기준으로는 고려아연에 투자하는 해외기관 중 인덱스펀드 운용사 뱅가드에 이어 블랙록, NBIM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2~3위 규모다. 더욱이 글로벌X는 지난해 정기주총 당시 최 회장을 지지하는 의결권을 행사해 이번에도 비슷한 표결 방향이 점쳐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