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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환율제가 변동환율제보다 경제 위기 취약’, 지배적 견해 노동시장 유연하다면 고정환율제가 “나을 수도” 고정환율제 원한다면 노동시장부터 살펴봐야
더 이코노미(The Economy) 및 산하 전문지들의 [Deep] 섹션은 해외 유수의 금융/기술/정책 전문지들에서 전하는 업계 전문가들의 의견을 담았습니다. 본사인 글로벌AI협회(GIAI)에서 번역본에 대해 콘텐츠 제휴가 진행 중입니다.
변동환율제와 비교한 고정환율제의 효과성은 경제 위기 상황을 포함해 오랫동안 토론 거리였다. 일반적인 통념은 통화 가치 절하를 통해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는 변동환율제가 외부 충격에 대한 보다 높은 유연성을 갖고 있다고 본다. 하지만 고정환율제가 유연한 노동시장 제도와 맞물리면 글로벌 경제 위기 회복에 있어 변동환율제에 준하거나 더 나은 역할을 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고정환율제가 성공하려면 반드시 노동시장 개혁이 전제돼야 한다는 얘기다.
‘고정환율제, 변동환율제보다 경제 회복에 불리’가 통념
고정환율제는 환율을 특정국 통화나 특정 ‘통화 바스켓’(basket of currencies, 기준 환율을 정하기 위해 가중치에 따라 선정한 복수 통화 모음)에 고정하는 제도로 장단점이 명확하다. 국제 무역과 투자에서 안정성과 예측 가능성을 더해주지만, 통화 가치 절하 및 통화정책 조정을 통해 경제 충격에 대응하는 능력은 떨어뜨린다. 고정환율제가 경제 성장에 기여하는지에 대한 의견도 분분하다. 기여한다는 의견도 있지만 의미 있는 상관관계가 없거나 오히려 저해한다는 학설도 있다.
고정환율제에 대한 비판은 경제 위기 시에 더해진다. 자국 통화 절하를 할 수 없는 고정환율제 국가들은 변동환율제 국가에 비해 경제 회복이 더디다. 고정환율을 유지하는 것이 우선순위인 상황에서 자국 상황에 맞는 자율적인 통화정책을 운용할 수 없는 데다 자본 이동이 완벽히 자유롭다면 경제 안정은 더 늦어진다.
고정환율제, 유연한 노동시장과 맞물리면 변동환율제 “추월”
하지만 ‘노동시장 유연성’이 경제 회복기 고정환율제의 성공 여부를 판가름하는 핵심 변수라는 새로운 연구 결과가 나왔다. 임금 조정 및 인력 배치의 자율성으로 대표되는 노동시장 유연성을 갖춘 국가는 고정환율제의 제약을 상쇄하고 빠른 경제 회복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유연한 노동시장은 기업들이 비교적 자유롭게 임금을 조정하고 노동력을 더 생산적인 분야에 재배치해 새로운 경제 환경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경제 위기에 이렇게 자원을 재편성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는 크다. 유연한 노동시장과 고정환율제 채택과의 강력한 상관관계를 입증한 이론적 연구도 이미 존재한다.
환율 제도와 노동시장 유연성, 경제 성장과의 관련성에 대한 이번 연구는 1970~2016년 자료를 통해 보다 실증적으로 이뤄졌다. 그 결과 대부분의 경우 고정환율제 체제가 경제 위기 후 더딘 회복 속도를 보였지만 예외가 있었다. 유연성이 높은 노동시장을 가진 나라들에서는 고정환율제가 변동환율제보다 경제회복에 더 큰 도움을 주는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앞선 이론적 연구를 뒷받침하는 결과다.
고정환율제 채택 전에 ‘노동시장 개혁’부터
또한 통합 노동시장 유연성 지수(consolidated labour market flexibility index)를 사용해 분석한 결과 가장 높은 수준의 노동시장 유연성을 가진 국가들은 실질 1인당 GDP 성장에 있어 단기적으로 4.4%P, 장기적으로 3.2%P 더 유리한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결과는 고정환율제가 경제위기 극복에 태생적으로 불리하다는 지배적 견해를 뒤집는다. 대신 고정환율제를 운용하려면 노동시장 개혁이 전제돼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경직된 노동시장을 갖고 있으면서 고정환율제를 운용하는 국가들은 어려움을 겪지만 유연한 노동시장 보유국들은 오히려 고정환율제의 장점인 안정성을 활용하면서 견고한 경제 회복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정책 결정자들은 경제 정책 입안 시 이 상관관계에 주목해야 한다. 고정환율제 국가는 임금 조정 및 인력 배치에 보다 높은 자율성을 부여하는 개혁을 통해 경제 회복을 앞당길 수 있다. 반면 노동시장이 경직된 국가들은 고정환율제 채택 자체를 재검토하거나 노동시장 유연성 제고를 먼저 시도할 필요가 있다.
고정환율제와 노동시장 유연성과의 상관관계를 밝힌 해당 연구를 시작으로 다양한 추가 연구가 가능하다. 우선 밝혀진 상관관계가 다양한 경제 충격에 어떻게 적용되는지와 노동시장 유연성이 통화 위기 예측 및 극복에도 도움을 줄 수 있는지가 유익한 주제가 될 것이다. 또한 노동시장, 환율 제도, 실질 환율 수준 등의 상호작용에 대한 연구도 경제 회복 메커니즘에 대한 추가 시사점을 제공할 수 있다.
원문의 저자는 무하마드 아살리(Muhammad Asali) 컬럼비아 대학교(Columbia University) 겸임 교수 외 2명입니다. 영어 원문 기사는 Exchange rates and recoveries from crises: The role of labour market institutions | CEPR에 게재돼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