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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 ‘야성적 영혼’ 깨우는 친기업 행보
FTC 리더 교체도 기업·시장엔 호재
넘치는 자금, 주변 금융시장 잠식 우려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과 함께 미국 금융 시장의 규제가 대폭 완화되고, 이에 따라 기업공개(IPO)와 인수합병(M&A) 거래도 급증할 것이란 전망이 제기됐다. 이미 글로벌 해외 투자 프로젝트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사상 최대 수준으로 치솟은 가운데, 일각에선 미국 내부에서 소화되지 못한 자금이 주변 금융시장을 잠식할 우려 또한 커지고 있다.
“규제 완화가 경제의 건전한 순환 불러와”
22일(이하 현지시각)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메리 에르도스 JP모건 체이스 자산관리 책임자는 전날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2025 세계경제포럼 연차총회’에 참석해 “트럼프 취임으로 미국의 금융 규제가 대폭 완화되면, 은행의 야성적 영혼이 살아날 것”이라며 미국 은행권이 본격적인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그는 바이든 행정부의 규제 강화를 비교 근거로 제시했다. 에르도스 책임자는 “바이든 행정부의 신규 규제는 이전 트럼프 행정부의 8배 수준”이라며 “이는 많은 기업이 과도한 규제 때문에 주식시장 상장을 꺼리거나 아예 상장할 수 없는 처지에 놓인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꼬집었다. 이어 “그간 금융 시스템을 막고 있던 과도한 서류작업이 없어지고, 경제의 건전한 순환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벤 카펜터 JP모건 글로벌 헬스케어 투자은행 공동대표 역시 13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제43회 JP모건 헬스케어 콘퍼런스에 참석해 “지정학적 리스크 새 행정부 출범으로 인한 시장 변동성은 분명 존재한다”면서도 “하지만 탄탄한 재무 상태와 친기업적인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기조를 고려하면 시장 전반이 상승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카펜터 공동대표는 그간 M&A 시장을 억누르는 주범으로 지목됐던 반독점 규제 당국인 연방거래위원회(FTC) 리더 교체가 시장 활성화를 주도할 것이라고 관측했다. 빅테크 등 기업을 대상으로 대대적인 전쟁을 벌여 온 FTC의 기조가 바뀌면서 시장에 긍정적 영향을 줄 것이란 해석이다. 앞서 지난 10일 트럼프 대통령은 차기 FTC 위원장으로 앤드류 퍼거슨 현 FTC 위원을 지명한 바 있다.
글로벌 투자 프로젝트 일제히 미국행
다만 이 같은 장밋빛 전망에도 시장 활성화에 의한 자금 순환은 주로 미국 내에서 제한적으로 이뤄질 전망이다. 세계 최대 경제 대국인 미국의 활발한 소비자 수요에 대규모 보조금을 기반으로 한 정부 인센티브까지 겹치면서 전 세계의 자금을 빨아들일 것으로 예측되기 때문이다. 이미 글로벌 해외 투자 프로젝트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사상 최대 수준으로 치솟았다.
FT 산하의 데이터 제공업체 fDi마켓에 따르면 미국을 향한 신규 외국인직접투자(FDI) 프로젝트 비중은 지난해 11월 기준 14.3%로 전년 말(11.6%) 대비 2.7%p 늘었다. 특히 해외 기업이 외국에 새로운 인프라를 건설하고 운영하는 그린필드 투자에 대해 미국은 지난해 11월까지 1년간 무려 2,100건 이상의 프로젝트를 유치한 것으로 확인됐다. fDi마켓은 미국의 신규 그린필드 FDI 프로젝트의 추정 가치가 270억 달러(약 327조원)에 달했다고 추산했다. 이는 전년 대비 1,000억 달러(약 145조원) 이상 증가한 수준이다.
이네스 맥피 옥스포드이코노믹스 분석가는 “미국은 점점 더 많은 글로벌 투자 프로젝트를 유치하고 있다”고 진단하며 “이는 다른 곳보다 더 강력한 수요 전망과 훨씬 더 강한 생산성 향상을 반영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트럼프 정책’이 불확실성을 야기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보호주의 정책 등은 ‘미국에 투자해야 할 이유’로 작용하고 있다”며 “미국 예외주의는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의 경제 성장 또한 투자 활성화에 힘입어 중국·유럽 등을 계속 앞지를 것이란 예측이다.
실제 IMF는 최근 미국의 2025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로 2.7%를 제시했다. 이는 유로존(유로화 사용 지대) 성장률로 제시한 1.0%를 한참 웃도는 수치다. 일각에서 제기된 고율 관세에 따른 투자 위축도 단기간 내 현실화할 가능성이 작다는 평이 우세하다. 리처드 볼빈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 투자 연구 책임자는 “트럼프 정책이 투자 인센티브나 경제 상황을 바꾸지는 않을 것”이라며 “그런 관점에서 미국 투자에 대한 매력은 계속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유럽에서도 존재감 뚜렷 美 자산운용사들
이런 가운데 금융시장에서는 미국 내에서 소화되지 못한 자금이 외부로 유입되면서 주변 금융시장을 식민지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하고 있다. 특히 유럽의 경우 미국의 거대 자산운용사들이 유럽 금융시장을 빠르게 잠식하는 것에 대한 경계의 목소리가 높다. ISS마켓인텔리전스에 의하면 영국과 유럽에서 미국 운용사들의 운용자산은 2014년 21억 달러에서 2024년 9월 말 45억 달러(약 6조4,500억원)로 급증했다.
특히 미국에 기반을 둔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의 경우, 지난해 3분기 글로벌 순유입액이 2,210억 달러(약 316조5,800억원)를 기록하며 유럽 전체 투자펀드 업계의 자금 유입액을 상회했다. 단일 미국 기업의 자금 유치 규모가 유럽 전체 업계를 능가한다는 사실은 미국 자산운용사들의 압도적인 시장 지배력을 보여준다.
이 같은 미국 운용사들의 성장은 유럽 금융시장의 구조적 변화가 가속화하고 있다. BCG 보고서는 2023년 북미 운용자산이 전년 대비 16% 증가한 반면, 유럽은 8%, 영국은 2% 증가에 그쳤다고 분석했다. 저금리 환경에서 수익률 추구 현상이 강화되고, 브렉시트 이후 영국 금융사들의 경쟁력이 약화한 것 또한 주요 원인이라는 설명이다.
유럽 금융기관들은 대규모 통합을 추진하면서 미국 자본의 영향력 확대에 대응하고 있다. AXA는 BNP파리바와 자산운용 사업을 통합했으며, UBS는 크레디트스위스를 인수하며 몸집을 키웠다. 뿐만 아니라 일각에선 미국의 규제 완화에 동참할 움직임도 포착된다. FT는 한 은행 고위 임원을 인용해 “영국 정부가 규제 완화를 선도할 것”이라며 “이미 바젤III 시행을 미루고 미국의 정책 변화를 주시하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