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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연금 머니무브 본격화, 울고 웃는 은행·증권사 앞 ‘공공의 적’ 등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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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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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꼭 알아야 할 소식을 전합니다. 빠르게 전하되, 그 전에 천천히 읽겠습니다. 핵심만을 파고들되, 그 전에 넓게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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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용사 이동해도 복리효과 그대로
‘마케팅 올인’ 은행 vs. 증권사 ‘고수익’
퇴직연금 기금화 논의 재점화에 긴장 고조

시행 3개월 차에 접어든 퇴직연금 실물이전을 둘러싸고 금융권의 경쟁이 날로 치열해지고 있다. 은행들은 적극적인 마케팅으로 초반 기세를 잡았지만, 수익률 등 가시화한 지표를 앞세운 증권사들의 반격 또한 만만치 않은 모습이다. 다만 한동안 중단됐던 퇴직연금 기금화 논의에 다시 불이 붙으면서 민간사업자들의 적극적인 움직임에도 묘한 변화가 감지된다.

아직까진 증권사→은행 구도

23일 KB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 등 4대 시중은행에 따르면 올해 들어 이달 20일까지 퇴직연금 잔액은 1,883억원 감소했다. 특히 개인형 퇴직연금(IRP)에서 1,207억원이 빠져나갔다. 기업 단위로 이동이 이뤄지는 확정급여(DB)형과 확정기여(DC)형 또한 각각 657억원, 19억원가량 줄어들었다. DB형은 퇴직금과 마찬가지로 퇴직 후 받는 금액이 정해진 상품이며, DC형은 개인이 직접 자금을 운용하는 방식이다.

이 같은 감소세는 지난해 10월 31일 시행된 퇴직연금 실물이전 제도의 결과다. 해당 제도의 시행으로 퇴직연금 가입자는 기존 운용 상품을 매도(해지)하지 않고도 퇴직연금 사업자를 바꿀 수 있게 됐다. 이전까지 복리 효과가 사라질 것을 우려해 중도 해지를 꺼렸던 소비자들은 제도 시행과 동시에 앞다퉈 새로운 금융사를 찾아 나섰다.

은행들은 제도 시행 전후로 공격적인 광고 집행 등 활발한 마케팅을 펼치며 집객에 나섰다. 일례로 연금 시장의 강자로 꼽히는 하나은행은 DB형 상품 금리를 공격적으로 제시하며 소비자를 이끌었다. 우리은행도 퇴직연금 이전 고객에게 상품권을 증정하고, IRP 신규 가입자의 수수료를 면제하는 등 다양한 혜택을 제공했다.

은행들의 적극적 마케팅은 단기간 내 성과로 이어졌다. 지난해 4분기 기준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은행 퇴직연금 적립 규모는 총 178조7,913억원으로 전년 동기(155조3,394억원) 대비 23조4,519억원 증가했다. 특히 하나은행의 2024년 말 퇴직연금 적립금은 전년 대비 6조6,000억원가량 늘며 DB형, DC형, 개인형 IRP를 합쳐 가장 큰 순증액을 자랑했다.

증권사 ‘빠른 시장 대응’ 강조하고 나서

그러나 올해 들어 묘한 변화가 감지된다. 마케팅 특수가 사라지고, 보다 거시적인 지표를 기준으로 개인연금을 이동하는 ‘머니무브’도 본격화한 것이다. 증권사는 은행보다 높은 수익률을 앞세워 소비자들을 공략하고 나섰다. 금융감독원 통합연금포털 자료를 바탕으로 적립규모 상위 10개사(개인형IRP 기준)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미래에셋증권(3.21%), 한국투자증권(3.11%), 삼성증권(3.03%)은 나란히 상위권을 차지하며 안정적인 자금 운용 능력을 과시했다.

반면 5대 시중은행은 2.06~2.48% 수익률을 기록하며 상대적으로 낮은 순위에 머물렀다. 증시 변동성이 매우 컸던 2023년 수익률 격차는 더욱 두드러졌다. 미래에셋증권(8.99%), 한국투자증권(8.97%), 삼성증권(8.23%)이 8% 이상 수익률을 기록한 반면 은행권의 수익률은 4~6%대 초반에 머물렀다.

이처럼 업권별로 수익률 격차가 큰 원인으로는 금융사별로 다르게 적용되는 투자 제약사항을 꼽을 수 있다. 예컨대 은행이나 보험사 퇴직연금 계좌로는 실시간 상장지수펀드(ETF) 매매가 불가능하다. 증시 변동성이 갈수록 심해지는 추세 속에 실시간 거래가 불가능하다는 점은 시장 대응이 한발 늦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에 수수료율도 차이를 보인다. 지난해 말 기준 퇴직연금 총비용부담률은 은행이 0.412%로 가장 높고 생명보험사(0.333%), 증권사(0.325%) 등 순을 보였다.

이에 증권업계는 높은 수익률과 낮은 수수료 등 강점을 내세워 소비자들을 공략하고 있다. 최종진 미래에셋증권 연금본부장은 “퇴직연금 납입을 시작하는 단계에서는 적립 액수가 크지 않아 수익률에 큰 관심이 없던 고객들도 납입금이 늘어나면서 고수익 상품을 적극적으로 찾는 경우가 많다”며 “전문가 도움을 받아 고위험·고수익 상품을 찾는 수요를 노려 관련 서비스 확충에 집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초대형 메기 국민연금 등판 가능성

다만 이런 증권업계의 적극적 행보는 최근 퇴직연금 기금화 논의가 재점화함에 따라 제동이 걸릴 위기에 놓였다. 지난해 8월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개정안’을 발의하면서 급부상한 퇴직연금 기금화는 100인 초과 사업장에 대해 국민연금이 기금형 퇴직연금 사업자로 참여할 수 있게 하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해당 논의는 지난달 비상계엄 사태와 탄핵 정국으로 소강상태를 보이는 듯했으나, 이달 초 정부가 발표한 ‘2025년도 경제정책방향’에 다시 등장하며 불이 붙었다. 당시 정부는 “퇴직연금 수익률 제고를 위한 종합적 방안을 마련하겠다”며 “공적·민간기관 등이 참여하는 기금형 제도 도입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증권업계는 정부의 공식 발언에 퇴직연금 기금화가 등장한 것만으로도 경계하는 분위기다. 그간 기획재정부와 고용노동부, 금융위원회 등이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퇴직연금 개선대책을 논의한 적은 있지만, 공식 입장으로 기금화 논의를 기작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기 때문이다. 퇴직연금 사업자들이 관계 부처에 기금화 논의 여부를 확인했을 때도 “현재 내부 논의 중”이라는 답변을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금융권에서는 사업 확장이 한창인 중에 퇴직연금 기금화를 논의하는 건 모순이라는 반응이 주를 이룬다. 한 증권사 퇴직연금 관계자는 “퇴직연금 민간사업자가 수익률 제고 등을 고민하며 사활을 걸고 있는 와중에 국민연금이 시장에 진입하면 사실상 민간사업자의 경쟁력을 공적 개입으로 위축시키겠다는 것”이라며 “연금체계는 3층으로 이뤄져 안정적인 것인데, 1층(국민연금)이 2층(퇴직연금)까지 가져가는 건 위험 관리 차원에서도 좋지 않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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