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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리 ‘-0.1%→0.5%’ 1년도 안 걸려
안정적 물가 상승 및 임금인상 기조
글로벌 엔 캐리 자금 20조 달러 추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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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행이 기준금리 0.5%에 올라서며 금융정책 정상화 프로세스에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해 3월 ‘마이너스’ 금리를 벗어난 데 이어 같은 해 7월 0.25%로 금리를 올린 후 6개월 만의 추가 인상이다. 시장에선 올해도 높은 수준의 임금인상이 예상되는 만큼 일본은행이 연내 한 차례 더 금리 인상을 단행할 것이란 전망을 내놓고 있다. 이와 동시에 지난해 8월 글로벌 증시 폭락장을 이끈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 공포 또한 고개를 드는 모습이다.
소비자물가지수 3년 연속 2% 이상 상승세
일본은행은 23일과 24일 이틀간의 통화정책 결정회의 끝에 기준금리인 단기 정책금리를 기존 0.25%에서 0.5%로 인상했다. 정책위원 9명 중 1명을 제외한 8명이 금리 인상에 표를 던졌다. 앞서 일본은행은 지난해 3월 단기 정책금리를 17년 만에 올리며 마이너스 금리(-0.1%)를 해제했고, 같은 해 7월 금리를 0.25%로 올렸다. 0.5%의 기준금리는 리먼브라더스 사태 직후인 2008년 10월 이후 17년 만이다.
이번 금리 인상의 배경으로는 안정적인 물가 상승률이 지목된다. 1990년대 거품 경제가 붕괴 이후 디플레이션(경기침체 속 물가 하락)으로 오랜 시간 꿈쩍하지 않던 일본의 물가는 최근 꾸준히 우상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 이날 일본 총무성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일본 소비자물가지수(CPI, 신선식품 제외)는 전년 대비 2.5% 올랐다. 2023년(3.1%)보다는 낮아졌지만, 3년 연속 2% 이상 상승세를 보이며 안정적인 흐름을 보였다.
일본 산업계 전반에 확산 중인 임금인상 기조도 주된 이유로 분석된다. 일본은행은 각 지점의 보고 및 경제단체 조사 등을 토대로 올해 춘계 노사교섭(춘투)에서 높은 수준의 임금인상이 이뤄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실제로 후생노동성의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근로자 실질임금은 전년 동월 대비 0.5% 증가하며 4개월 만에 오름세로 돌아섰다.
일본은행은 3개월에 한 번 제시하는 ‘경제·물가 정세 전망’ 보고서도 발표했다. 일본은행은 2024년도(2024년 4월∼2025년 3월) CPI 상승률 전망치를 2.7%로 제시했다. 이는 지난해 10월 발표한 전망치(2.5%)보다 0.2%p 증가한 수치다. 2025년도(2025년 4월∼2026년 3월) CPI 상승률 전망 또한 기존보다 0.5%p 올린 2.4%로, 2026년도(2026년 4월∼2027년 3월)는 0.1%p 상향 조정한 2.0%로 제시했다.
일본은행이 인플레이션 전망을 대폭 상향 조정한 것을 두고 시장에서는 추가 금리 인상에 대한 자신감으로 해석하는 분위기다.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 총재 역시 “보고서에서 제시된 경제활동과 물가에 대한 전망이 실현되면, 그에 따라 정책금리를 인상하고 금융완화 정도를 조정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 제시된 물가 전망과 금리 인상 속도 지연에 대한 우려에 대해서는 “지금으로서는 심각한 뒷걸음질 상황은 보이지 않는다”고 시장을 안심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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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율·증시에 이목 집중
일본은행이 금리 정상화를 서두르면서 이 같은 결정이 금융시장에 미칠 영향에도 관심이 쏠린다. 이날 달러·엔 환율은 큰 폭으로 움직였다. 23일 달러당 156엔 선이던 환율은 24일 금리 인상 발표 직후 156.4엔까지 치솟았으나, 이후 155엔 선으로 하락했다. 달러·엔 환율의 하락은 엔화 가치 상승을 의미한다. 일본은행이 금리인상 기조를 지속하며 미국과의 금리 격차가 축소될 것이라는 전망에 엔화 매수, 달러화 매도 흐름이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해 8월 시장을 공포로 몰아넣은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이 되풀이될 지도 초미의 관심사다. 엔 캐리 트레이드는 금리가 낮은 일본에서 돈을 빌려 금리가 높은 나라에 투자하는 것을 말한다. 일례로 지난해 7월 31일 일본은행이 시장의 예상을 깨고 깜짝 금리 인상을 발표하자, 엔 캐리 자금이 일시에 일본으로 되돌아가면서 글로벌 증시는 크게 요동쳤다.
일본은행의 금리 인상 발표 3영업일 만에 미국 스탠다드앤드푸어스(S&P)500지수는 3.0% 하락했으며, 나스닥지수 역시 3.43% 미끄러졌다. 대만(가권지수 -8.35%)과 한국(코스피 -8.77%, 코스닥 -11.30%) 등 아시아 증시도 폭락을 면치 못했다. 저금리에 엔화를 차입해 미국 기술주 등 위험 자산에 투자했던 이들은 자금 회수를 서둘렀고, 이를 상환하기 위해 엔화로 바꾸는 과정에서 엔화 강세까지 이어졌다. 일본은행의 발표 직전 161엔대였던 달러·엔 환율은 금리 인상 이후 141엔까지 밀려났다.
현재 글로벌 시장 내 엔 캐리 자금 규모는 구체적으로 집계된 바 없다. 개인부터 헤지펀드, 소규모 자산운용사, 사모펀드, 일본 기업 및 기관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운용되는 만큼 종합적인 집계가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다. 다만 도이체방크는 국제통화기금 데이터 등을 토대로 1990년 초반부터 현재까지 엔 캐리 트레이드에 쓰인 자금이 총 20조 달러(약 2경7,538조원)에 달할 것이라고 추산했다. 천문학적 규모를 자랑하는 만큼 엔 캐리 트레이드의 일부 금액만 청산되더라도 글로벌 증시 등에 미칠 영향력은 폭발적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韓 시장 충격은 제한적” 관측
그럼에도 국내 증권가에선 엔 케리 트레이드 청산에 대한 과도한 우려는 불필요하다는 평이 우세하다. 지난해 8월 폭락장의 경우,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 여파도 영향을 미쳤지만 미국의 경기 침체 우려가 맞물린 결과라는 분석에서다. 김유미 키움증권 수석연구위원은 “일본은행의 금리 인상 가능성이 이미 엔화 가치에 일정 부분 반영된 것으로 보여 충격은 크지 않을 것”이라며 “작년에는 미국의 경기 침체가 심각한 상황에서 일본은행이 깜짝 금리 인상을 발표한 탓에 충격이 컸지만, 최근 금융시장은 안정적인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금융감독원 또한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에 따른 국내 시장 충격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분석을 내놨다. 금감원은 24일 오전 ‘금융상황 점검회의’를 개최하고 “일각에서 작년 일본 기준금리 인상 직후 발생한 대규모 엔 캐리 자금 이탈에 따른 시장 충격 재발을 우려하기도 하지만, 청산 유인은 매우 낮다”고 진단했다. 금리 인상 폭은 지난해와 동일하지만, 당시와 달리 미·일 금리 격차가 크고 엔화가 약세인 만큼 충격 재발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설명이다.
다만 이복현 금감원장은 회의 참석자들에게 상황을 면밀히 모니터링 해줄 것을 당부했다. 설날 연휴 중에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및 유럽중앙은행(ECB)의 금리 결정, 미국 물가 지표 발표 등에 따라 글로벌 시장의 변동성이 커질 수 있는 지적이다. 이 원장 “작년에도 일본 금리 인상 직후 발표된 미국 고용지표 악화로 경기침체 우려가 부각됐다”고 짚으며 “시장 변화에 즉시 대응할 수 있도록 준비 태세를 갖춰달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