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성차부터 철강까지, 트럼프發 관세 정책에 신음하는 글로벌 자동차 업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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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자동차 생산국들, 트럼프發 관세에 짓눌려 현대차 등 일부 기업은 현지화 전략에 힘 싣는다 추가 관세 부과 검토 나선 美, 현지 업계 "불확실성 커졌다" 비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고강도 관세 정책으로 인해 글로벌 자동차 시장이 혼란에 휩싸였다. 관세 전쟁의 근원지인 미국은 물론, 핵심 자동차 생산국인 일본·한국·독일의 관련 기업들도 줄줄이 비용 부담에 짓눌리는 양상이다. 곳곳에서 극단적인 통상 전략에 대한 우려가 쏟아져 나오는 가운데, 트럼프 행정부는 오히려 추가 관세 부과를 시사하며 압박을 더해 가고 있다.
관세 폭탄에 車 시장 '휘청'
13일(이하 현지시각) 파이낸셜타임스(FT)가 보도한 바에 따르면, 포드, 제너럴모터스(GM), 스텔란티스 등 이른바 미국의 ‘빅3’ 완성차 업체들은 트럼프발(發) 관세 정책의 여파로 올해 총 70억 달러(약 9조8,700억원) 규모 손실을 입을 것으로 전망된다. 관세로 인해 부품 공급망이 흔들리고, 원자재 가격이 급등한 영향이다. 이는 관세 정책이 미국 내 일자리를 되살리고 리쇼어링을 촉진할 것이라는 트럼프 행정부의 주장과는 반대되는 흐름이다.
미국발 관세의 후폭풍에 휘말린 것은 비단 미국 기업뿐만이 아니다. 특히 세계 최대 자동차 생산국인 한국·일본·독일의 수많은 중소 부품 공급업체들은 생태계 혼란으로 인해 직격탄을 맞은 상황이다. 이들 업체는 관련 산업의 중추 역할을 수행하지만, 대형 완성차 업체와 달리 이윤율이 낮고 해외 이전 자금 여력이 부족해 고율 관세에 훨씬 더 취약하다.
이 같은 문제는 통계치를 살펴보면 보다 명확히 확인할 수 있다. 일본의 대미 부품 수출은 지난 5월 관세 시행 후 매달 감소세를 보이는 중이며, 7월에는 전년 동기 대비 17.4% 급감했다. 한국에서는 자동차 및 부품 업체의 81%가 관세로 인한 실적 악화를 예상하고 있다는 대한상공회의소 조사 결과가 발표됐으며, 독일 업계 역시 이미 관세로 인해 수십억 달러 규모의 손실을 입은 것으로 전해진다.
현대차, 美 생산 역량 확대 나서
관세 장벽에 가로막힌 기업들은 현지화 전략을 통해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일례로 현대차·기아는 미국 현지 생산 물량을 확대하고, 현지 부품 조달을 늘리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현시점 현대차·기아의 미국 현지 생산량은 현대차 앨라배마 공장(HMMA) 36만 대, 기아 조지아 공장(KaGA) 35만2,000대로 합산 약 71만 대 수준이다. 지난 3월 완공된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의 올해 말 연간 생산 능력 목표치는 30만 대다.
자금 투입 규모 역시 한층 확대된다. 현대차는 지난달 18일 뉴욕 맨해튼 '더 셰드'에서 개최된 CEO 인베스터 데이 행사에서 내년부터 2030년까지 5개년 동안 77조3,000억원의 투자를 단행하겠다고 밝혔다. 구체적인 투자처는 연구·개발(R&D) 투자 30조9,000억원, 설비투자(CAPEX) 38조3,000억원, 전략투자 8조1,000억원 등이다. 미국 투자 금액은 기존 11조6,000억원(88억 달러)에서 15조3,000억원(116억 달러)으로 3조7,000억원(28억 달러) 늘어날 예정이다. 전체 투자 금액의 20%가량을 미국에 쏟는 셈이다.
다만 이 같은 전략이 실제 현지에서 얼마나 효과를 발휘할지는 의문이다. 최근 미국의 제조업 기반이 상당히 취약해진 상태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한 시장 관계자는 "미국은 제조업 생산 체계 전반이 쇠퇴한 상황"이라며 "미국 기업들이 제조 부문에서 오프쇼어링을 택하고, 많은 이윤이 발생하는 소프트웨어 개발과 제품 디자인에 집중해 왔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이어 "아시아의 생산 체계를 미국에서 재현하려면 막대한 자본이 투입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끝나지 않는 美의 통상 압박
미국의 고율 관세로 인해 글로벌 자동차 업계 전반이 혼란에 빠진 가운데, 트럼프 행정부는 오히려 통상 압박을 강화하는 추세다. 지난달 로이터통신과 연방 관보의 보도에 따르면, 당시 미 상무부는 “향후 몇 주 내에 추가 관세가 부과될 자동차 부품 선정을 검토할 것”이라며 “이는 업계의 요청에 따른 결정”이라고 밝혔다. 이어 “자동차 산업은 자율주행 능력 및 기타 첨단 기술 분야에서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면서 “방위 산업에 중요한 새로운 자동차 제품을 식별해 관세 부과 검토 기회를 가질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자동차 부품에 대한 의견 수렴은 10월 1일부터 오는 14일까지 진행된다.
자동차 업계의 후방 산업 역시 관세 부담에 짓눌리는 중이다. 앞서 상무부는 지난달 15일부터 29일까지 철강이나 알루미늄을 사용해 만든 파생 제품의 관세 부과 대상 추가 요청을 받았다. 트럼프 행정부는 무역확장법 232조를 근거로 해당 제품군 일부에 50% 관세를 부과하고 있는데, 그 범위를 확대하겠다는 뜻을 내비친 것이다. 상무부는 지난 5월에도 미국 제조업체 및 협회로부터 접수한 의견을 바탕으로 건조기·세탁기·식기세척기 등 가전제품에 사용된 철강에 50%의 관세를 부과하기로 결정한 바 있다.
미국 상공회의소와 자동차 업계는 이 같은 상무부의 계획에 우려를 표하고 나섰다. 미국 자동차 생태계를 지탱하는 주요 후방 산업들이 관세로 인해 경쟁력을 잃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이들은 지난달 상무부에 보낸 서한을 통해 "철강 및 알루미늄 관세 대상 품목을 급작스럽게 확대하면 제조업체들이 투자와 생산 계획을 수립할 때 필요한 예측 가능성이 약화된다"며 "다수의 기업이 취약한 공급망과 글로벌 경쟁, 인플레이션 압박에 직면한 시기에 이번 절차가 추가적인 불확실성을 유발해 성장 둔화 및 미국 내 투자 억제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고 호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