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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회장 포함 SMC 전혁직 이사 공정위에 신고 상호출자금지 및 탈법행위금지 위반 혐의 의결권 제한 위해 고의로 신규 상호출자 형성 주장
고려아연이 MBK파트너스와 영풍 측에 '대타협'을 제시했으나, MBK·영풍 연합 측이 사실상 이를 뿌리치면서 경영권 분쟁이 장기화 국면에 접어들었다. 최근 열린 임시주주총회는 고려아연의 완승으로 끝난 모양새지만 연합이 법적 대응을 예고한 만큼 경영권 분쟁은 당분간 안갯속을 이어갈 전망이다.
MBK·영풍 연합, 고려아연 신고
31일 관계부처에 따르면 공정거래위원회는 이날 오전 MBK파트너스가 최 회장을 상대로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를 제기한 신고서를 접수했다. 해당 신고서엔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측이 공정거래법 제21조(상호출자의 금지), 제36조 제1항(기업집단 규제 회피 금지), 시행령 제42조 제4호(상호출자 금지에 대한 탈법행위 규정) 등을 위반했다며 엄정한 조사와 조치를 촉구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MBK 측은 신고서를 통해 "2014년 신규 순환출자 금지 규제 도입 이후 최초로 해외 계열사를 활용해 신규 순환출자 고리를 형성한 사례"라며 "이런 방식의 부당한 확장이 허용된다면 공정위의 기업집단 규제 근간이 흔들리게 된다"고 강조했다. 공정위는 이에 대해 "주목도가 높은 사안인 만큼 접수된 신고서 내용과 현행법을 토대로 조사에 착수해 신속하게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MBK는 최 회장이 국내 공정거래법상 순환출자 규제 대상이 아닌 해외 계열사를 이용해 편법으로 경영권을 방어하는 꼼수를 썼다는 입장이다. 앞서 최씨 일가는 MBK·영풍 연합의 고려아연 경영권 확보가 사실상 확실시됐던 23일 임시주주총회 전날 영풍 주식 10.3%를 호주에 본사를 둔 손자회사 선메탈코퍼레이션(SMC)에 넘겼다. 국내 공정거래법상 신규 순환출자 고리 형성은 불법이지만 해외 법인을 이용해 '고려아연→선메탈홀딩스(SMH)→SMC→영풍→고려아연' 순환출자 고리를 만들었고, 그 결과 MBK·영풍 측의 고려아연 의결권은 제한됐다.
MBK는 이를 두고 공정거래법 제21조에 따라 금지돼 있는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 계열회사 간 상호출자 금지를 회피한 탈법행위라고 주장하고 있다. MBK 측은 '누구든지 기업집단 규제를 회피하는 행위를 해선 안 된다'고 규정한 공정거래법 제36조 제1항에도 저촉된다고 보고 있다. 아울러 MBK는 "우리 법은 규제 위반에 해당하지 않더라도 회피하는 행위를 일반적·포괄적으로 금지하고 있다"며 "제21조 위반과 동일하게 탈법행위에 대해서도 공정거래법에선 가장 중한 위반행위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공정거래법 제124조에 따라 탈법행위를 한 자는 공정거래법상 가장 중한 처벌인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게 된다는 주장도 곁들였다.
거버넌스포럼 "상법 개정 필요"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포럼)도 31일 논평을 내고 "이번 사태는 투자자 보호를 위해 조속한 상법 개정이 필요함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라며 "주총이라는 주주권리의 핵심 제도가 무력화됐다"고 짚었다. 고려아연이 상법의 허점을 악용했다는 비판이다. 이어 "자본시장은 신뢰를 바탕으로 발전하고 투명성과 예측 가능성이 필수 조건"이라며 "이를 무시하고 파행적으로 진행된 고려아연 임시주총은 그동안 정부, 국회 및 전 국민이 간절히 바랐던 '한국 증시의 선진시장 진입' 희망을 무참히 짓밟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울러 포럼은 "주주들의 의결권을 강탈해 주식회사의 존립을 허무는 행위, 특정 주주의 사익을 위해 회사의 자산과 회사의 법률행위 능력이라는 법인격을 동원한 것 자체, 그리고 주주들의 가처분 신청권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주총 전날로 지분 거래 타이밍을 잡은 것 모두 주주 이익을 심각하게 침해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대형 인수·합병(M&A)은 사회적 논쟁의 크기가 큰 만큼 그 자체로 시장의 프랙티스(practice·관행)로 굳어진다"면서 "어떤 사회가 대형 M&A를 어떻게 처리했는지는 거버넌스 규범의 형성 차원에서 아주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포럼은 “공정위와 금융당국은 이번 사태를 꼼꼼히 조사해야 할 것”이라며 “최근 LG, 두산, 현대차가 모회사 주주 이익을 침해하는 해외법인 현지 상장을 강행하는 것 같이 대기업을 중심으로 수많은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이 외국 자회사를 악용한 상호출자를 통해 패밀리의 지배력을 부당하게 확대할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분쟁 장기화 불가피
다만 투자금융업계에서는 MBK가 적어도 투자자 관점에선 사실상 패배했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빠르게 결론이 나는 가처분과 달리 무효 취소 소송이나 형사 소송은 최소 수개월에서 수년이 걸리는 장기전이기 때문이다. 경영권 분쟁에서 장기전으로 갈수록 힘이 빠지는 건 사모펀드 쪽이다. 공정위에 따르면 임시 주총 효력의 무효·취소를 다투는 본안 소송은 최종 결론까지 2~3년, 최 회장에 대한 공정거래법 위반 및 업무상 배임 혐의 등의 형사 고발 역시 1년 안팎의 시일이 소요될 전망이다.
게다가 최 회장 역시 가만히 있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최 회장의 임기는 2026년 3월이면 만료되는데 올해 3월 정기 주총에서 패배할 경우 최 회장 역시 MBK·영풍 연합과 마찬가지로 주총 결과를 무력화시키기 위해 무효 취소 소송을 제기할 필요가 있다. 어느 쪽이 이기든, 지난한 법정 다툼과 사법 리스크 속에서 분쟁이 장기화될 공산이 크다는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