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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금융기관 긴축 종료 예상 시점 수정 국채 금리 인상에 경제 경착륙 우려↑ “긴축 장기화, 시장 변동성 확대” 경고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기준금리 인하가 속도 조절 국면에 들어선 가운데, 또 다른 통화 정책인 양적 긴축의 지속 여부가 시장의 새로운 관심사로 떠올랐다. 시장에서는 연준이 목표로 한 부채 감소 여부와 미국 국채 금리의 향방이 그 시점을 좌우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미국과 시차를 두고 긴축에 돌입한 유럽과 일본 등 주요국들도 일제히 긴축 기조의 지속을 시사했다.
종료 예상 시점 2025년 1분기→3분기
23일(이하 현지시각) 미국 투자 전문 매체 배런스에 따르면 현재 미 연준이 유지 중인 양적 긴축(Quantitative Tightening·QT) 정책은 경제 및 금융 여건 변화에 따라 올해 하반기께 종료될 전망이다. 마크 카바나 뱅크오브아메리카증권 금리전략 책임자는 “최근 자금시장의 제한적 변동성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의사록의 대차대조표 정책 논의 부족, 부채한도 관련 우려 미미 등을 고려할 때 양적 긴축이 2025년 3분기에 종료될 것으로 예상한다”며 “이는 2025년 1분기 종료될 것이라는 이전의 예측을 수정한 것”이라고 밝혔다.
연준의 양적 긴축 정책이 올해 초 종료될 것이라던 뱅크오브아메리카증권의 이전 예측은 뉴욕 연방준비은행의 관측과도 일치한다. 뉴욕 연은은 지난해 4월 발간한 공개시장운영 보고서에서 연준이 양적 긴축을 종료하는 기준으로 11%의 명목 국내총생산(GDP) 대비 지급준비금 비율을 제시했다. 이는 직전 기준치(9%)보다 2%p 높아진 수치로, 양적긴축의 종료가 더 일찍 결정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국제금융센터(KCIF)의 전망 또한 비슷했다. KCIF는 지난해 1월 “최근 FOMC 회의에서 일부 위원이 역환매조건부채권(역레포) 잔액 감소에 주목하면서 QT 축소 논의 필요성을 언급한 게 확인됐다”며 “금융시장 내 양적 긴축이 예상보다 이른 시점에 종료될 것이라는 기대가 커지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2019년 9월 연준의 1차 QT가 마무리될 무렵 유동성 부족으로 자금시장이 큰 혼란을 겪었던 만큼 연준이 이번에는 당초 예상보다 이른 시점에 QT를 종료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면서 올해 초 양적 긴축 정책 종료에 무게를 실었다.
MBS 감소, 월 목표에 한참 못 미쳐
이 같은 시장의 기대와 달리 연준의 양적 긴축 종료 논의가 매우 느리게 전개되는 배경에는 고공행진 중인 미국의 국채 금리가 자리하고 있다. 양적 긴축의 종료는 연준이 보유 채권에 대한 매도세를 끝낸다는 의미도 되는데, 지금과 같은 고금리 상황에서 중앙은행의 수입 축소는 자칫 경제의 경착륙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주식과 기업 신용 등 고위험 자산의 가치급락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23일 기준 미 국채(10년물) 금리는 3개월 전보다 0.5%p 이상 오른 4.62%를 기록했다.
예상보다 더딘 주택담보증권(MBS) 축소세도 연준의 고민을 깊게 만드는 요소다. 양적 긴축 선언 이후 1년간 연준의 MBS는 3,000억 달러(약 429조7,000억원) 감소에 그쳤다. 이는 MBS의 원천인 모기지 대출을 받은 금융소비자 가운데 상당수가 과거 저금리(2~3%)로 대출을 받은 탓에 조기 상환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여기에 지난해 말 기준 만기가 10년 이상 남은 MBS 규모 또한 2조4,000억 달러(약 3,435조원)에 달해 단기간 내 MBS의 눈에 띄는 감소세도 기대할 수 없는 실정이다.
2022년 6월 양적 긴축에 돌입한 연준은 공개시장 계정(SOMA) 포트폴리오 조정을 통해 지속적으로 대차대조표 규모를 줄이고 있다. 첫 3개월은 월간 475억 달러(국채 300억 달러, MBS 175억 달러)를 축소했고, 2022년 9월부터는 축소 규모를 월간 950억 달러(국채 600억 달러, MBS 350억 달러)로 늘렸다.
美·EU·英 등 주요국 대차대조표 축소에 日 동참
이런 가운데 유럽과 일본 등 주요국의 중앙은행 또한 양적 긴축 정책을 펼치며 미국과의 보폭을 맞추고 있다. 유럽중앙은행(ECB)은 2022년 말 긴축 페달을 밟으면서 채권 매입을 대부분 중단했다. 코로나19 팬데믹에 대응하기 위해 매입해 온 1조7,000억 유로(약 2,422조원) 규모의 ‘팬데믹 긴급 매입 프로그램(PEPP)’에 대한 재투자 역시 점진적 축소로 방향을 잡았다. 필립 레인 ECB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지난해 8월 미국 와이오밍주에서 열린 경제정책 심포지엄에 참석해 “통화정책 기조는 인플레이션을 적기에 목표 수준으로 낮출 때까지 충분히 제한적인 영역에 머무를 필요가 있다”고 강조하며 긴축 기조 유지를 시사하기도 했다.
영국 잉글랜드은행(BOE)도 기준금리 4.75% 이상을 유지하며 긴축을 이어가는 모습이다. 영국의 소비자물가는 2022년 11%로 최고치를 찍은 후 현재 2.5%까지 내려왔다. 하지만 여전히 정부 목표치(2%)를 상당 폭 웃도는 수준이다. BOE는 “추가 긴축이 필요할 수 있지만, 지금으로선 경제 상황을 지켜보면서 누적된 긴축 효과를 관찰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고 밝혔다.
일본은행(BOJ) 역시 지난해 7월 양적 긴축 정책 기조 대열에 동참했다. 당시 BOJ는 매달 6조 엔(약 55조원) 규모의 국채 매입 규모를 2026년 1분기까지 3조 엔 수준으로 줄이겠다고 발표했다. 전 BOJ 이사회 소속인 시라이 사유리 게이오대 교수는 “과거 양적 완화를 시행했던 모든 중앙은행이 QT로 돌아섰다”고 진단하며 “각 중앙은행이 생각하는 대차대조표의 적절한 규모가 명확하지 않은 만큼, 시장은 언제든 긴축이 중단되거나 조정할 것에 대비하고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사유리 교수의 말처럼 전 세계적 긴축 기조가 시장의 변동성을 키울 수 있다는 경고는 곳곳에서 나온다. 시장에 투자 자금이 고갈되면서 주식시장 등 금융시장 전반에 압박을 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스티븐 배로우 스탠더드은행 G10 전략 책임자는 “과거에는 중앙은행들이 채권을 매입하면서 시장에 현금이 돌고 그중 일부가 주식과 같은 위험 자산에 투자됐으나, 이제 자산이 줄어들면서 새로운 국면이 펼쳐지고 있다”고 진단했으며, 스위스 리 연구소의 제롬 하겔리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글로벌 QT가 연내 계속된다면 변동성 급등 현상이 자주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