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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통상법 301조 활용해 中 해운업계 견제 착수 中, 선박 수주·항구 터미널 시장 영향력 막대해 일각에서는 '산둥항 제재' 보복이라는 분석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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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해운 시장에서 새로운 무역 갈등이 불거지고 있다. 미국 정부가 자국 조선·해운업 보호를 명분으로 중국 해운 선박에 대한 경제적 압박 정책을 추진하면서 양국 간 해운 패권 경쟁이 본격화하는 양상이다.
中 선박, 美 입항 시 '수수료' 낸다
26일 해운업계에 따르면, 미국무역대표부(USTR)는 최근 중국 원양해운그룹(COSCO·코스코그룹) 등 중국 해운사의 선박이 미국 항구에 입항할 때 입항 수수료를 부과하는 방안을 공표했다. 추가 관세를 부과하는 기존의 방식을 넘어 입항 수수료라는 새로운 규제 도구를 꺼내 든 것이다. USTR은 이번 조치가 미국 통상법 301조에 근거한 것이라고 밝혔다. ‘수퍼 301조’라고도 불리는 해당 조항은 상대국의 불공정한 무역 관행으로 미국 업체들이 손해를 입었을 경우, 미국이 보복 관세 등 제재를 단행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공개된 안에 따르면, 미국 항구에 입항하는 중국 해운사 소속 선박에는 최대 100만 달러(약 14억원) 또는 선박 용적 1톤당 최대 1,000달러(약 143만원)의 수수료가 부과될 예정이다. 중국산 선박을 운영하는 해운사도 선단 내 중국산 선박 비율에 따라 추가적인 부담을 지게 된다. 중국산 선박 비율이 25% 이상 50% 미만이면 입항 1회당 최대 75만 달러(약 10억7,000만원), 50% 이상이면 최대 100만 달러가 추가되는 식이다. USTR은 오는 3월 24일 새 규칙안에 대한 공청회를 개최해 산업계와 전문가 의견을 수렴한 뒤 최종안을 확정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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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해운 경쟁력 고려한 조치인가
미국의 입항 수수료 부과는 중국의 글로벌 해운·조선업계 영향력을 고려한 '경계 조치'로 풀이된다. 영국 해운조사기관 클락슨리서치(Clarksons Research)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의 전 세계 신규 선박 수주 점유율은 71%로 압도적 1위를 차지했다. 2024년 세계 수주량 6,581만 CGT(표준선환산톤수) 중 4,645만 CGT를 확보한 것이다. CGT는 단순 선박의 크기나 무게가 아닌 선박 건조의 난이도와 부가가치를 반영한 ‘기술적 가치’를 표현하는 단위로, 조선사의 실질적인 작업량을 확인할 수 있는 지표로 평가된다.
중국은 선박 건조뿐만 아니라 글로벌 항구 터미널 시장에서도 막강한 영향력을 보유하고 있다. 미국 해군전쟁대학 중국해양연구소의 조교수인 이삭 B 카든의 연구에 따르면, 중국 기업은 전 세계 96개국의 항구에서 하나 이상의 터미널을 소유하거나 운영 중이다. 아울러 전 세계 상위 100개 항구 중 25개가 중국 본토에 위치해 있으며, 세계 주요 컨테이너 항구의 약 61%가 중국과 연계돼 있다.
반면 미국은 지난 수십 년 동안 조선업계에서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다. 미국 조선업계는 1975년까지만 해도 세계 1위에 빛나는 생산 능력을 자랑했으나, 1980년대 조선업 보조금이 대부분 사라지며 쇠퇴의 길로 접어들었다. 이와 관련해 한 업계 관계자는 "미국은 조선업 제조 기술이 아웃소싱되기 시작한 이후부터 원자재와 부품 자급에 난항을 겪기 시작했다"며 "이후 조선업 관련 투자가 급감하며 조선소의 경쟁력과 생산 능력이 전반적으로 하락했다"고 설명했다.
中, 최근 美 제재 선박 입항 막아
한편 일각에서는 미국의 이번 조치가 '보복'의 일환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지난달 중국 산둥성에 있는 항만을 운영하는 산둥항만그룹은 미국의 제재하에 놓인 선박의 정박, 입항 등을 금지한 바 있다. 미국 정부가 이란산 원유 거래에 연루된 선박 및 기업에 대한 제재를 가하자, 제재 대상 선박의 항만 이용을 금지하며 '맞불'을 놓은 것이다.
칭다오항, 르자오항, 옌타이항 등 산둥성에 위치한 주요 항만은 중국의 주요 원유 수입 통로다. 선박 추적 업체 케이플러에 따르면 이들 항만을 통해 수입된 원유는 지난해 하루 평균 174만 배럴에 달한다. 이는 중국 전체 원유 수입량의 약 17% 수준이다. 수입된 원유의 상당량은 이란, 러시아, 베네수엘라에서 생산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