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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명 숨진 샤오미 전기차 사고 후폭풍 한계 다다른 자율주행 담론 정조준 기술의 본질은 ‘운전자 보조’ 수준

중국 정부가 자동차 광고에서 ‘자율주행’, ‘스마트 주행’이라는 단어 사용을 전면 금지했다. 운전자가 개입하지 않아도 차량이 스스로 주행할 수 있다는 인상을 주는 표현이 소비자를 오도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번 조치는 모든 자동차 브랜드에 동일하게 적용되며, 테슬라나 샤오미처럼 자율주행 기능을 핵심 마케팅 포인트로 삼아온 기업들도 예외 없이 포함됐다. 기술의 진보보다 그 오해의 여지가 더 크다고 판단한 것이다.
금지어 목록 오른 ‘자율주행’ 기술 현주소
17일(현지시각) 로이터통신 보도에 따르면 중국 공업정보화부(MIIT)는 자동차 제조업체들이 운전 지원 기능을 홍보하면서 ‘스마트 주행(智能驾驶)’ 및 ‘자율 주행(自动驾驶)’과 같은 용어를 사용하는 것을 전면 금지했다. MIIT는 16일 60여 개 자동차 제조사 대표들과 가진 회의에서 해당 지침을 전달하며 “자율주행이라는 용어가 실제 기능과 괴리돼 소비자에게 잘못된 기대를 심어줄 수 있다”고 그 이유를 밝혔다.
MIIT는 기술 업그레이드에 대한 조사도 강화하기로 했다. 새 지침에 따라 차량 제조사들은 당국의 승인 없이 이미 고객에게 인도된 차량에 대해 첨단 운전자 보조 시스템(ADAS) 기능을 원격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로 테스트하거나 개선할 수 없다. 모든 기능은 충분한 신뢰성 검증 테스트를 거쳐 정부의 사전 승인을 받은 후에만 적용할 수 있다. ADAS는 운전자의 안전과 편의성을 향상하기 위해 차량에 탑재되는 다양한 기술들을 의미한다.
이 같은 규제 조치는 치열한 가격 경쟁 속에서 자동차 업체들이 앞다퉈 ADAS를 탑재한 신차를 출시하는 가운데 나왔다. 세계 최대 자동차 시장으로 꼽히는 중국은 2020년대 들어 과열 경쟁이 벌어지며 많은 기업이 첨단 기능을 핵심 기능을 핵심 판매 전략으로 내세우고 있다. 특히 세계 최대 전기차 제조 업체 비야디(BYD)는 지난 2월 스마트 주행 기능이 탑재된 1만 달러 미만 저가 차량 21종을 출시하며 이같은 경쟁에 불을 붙였다. 이어 중국 스타트업 립모터, 일본 기업 토요타 등이 비슷한 기능을 갖춘 저가 모델을 선보이며 경쟁을 본격화한 바 있다.

샤오미가 만든 비극, 자율주행의 민낯
업계에서는 지난 3월 발생한 샤오미 전기차 세단인 ‘SU7’ 사고가 이번 조치의 직접적 원인이 된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달 29일 밤 안후이성의 한 고속도로에서 발생한 이 사고로 운전자 뤄모 씨를 포함한 20대 탑승자 3명이 전원 사망했다. 당국의 조사에 의하면 차량은 사고 직전 116㎞로 달리고 있었으며, 자율주행 보조 기능(NOA·Navigate on Autopilot)을 작동시킨 상태였다.
희생자들이 통과하던 구간은 당시 공사로 인해 차로 일부가 폐쇄돼 있었다. 차량은 장애물을 감지한 뒤 알림을 보냈고, 운전자도 수동으로 차량을 감속했으나 가드레일과의 충돌을 피하지 못했다. 자동차가 장애물 경고 알림을 보낸 후 충돌까지 걸린 시간은 2초였다. 충돌 직후 차량 배터리가 폭발하며 차체에 불이 붙었고, 탑승자들은 모두 현장에서 숨을 거뒀다.
이 사고로 자율주행이라는 이름 아래 감춰진 책임의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대다수 자동차 제조 업체는 NOA 시스템을 ‘보조 운전’이라 말하면서도, “자동차 스스로 운전한다”는 환상을 심어왔다. 소비자는 자율주행이라는 말에 기대 차량의 판단에 운명을 맡겼고, 그 결과는 되돌릴 수 없는 피해로 이어졌다. 특히 문제의 차량이 신생 브랜드인 샤오미의 첫 전기차였다는 점에서 기술 검증 절차에 대한 의문 또한 이어졌다. 사고 당시 차량 문이 열리지 않으면서 탑승자들이 탈출하지 못했다는 의혹 등이다.
사안을 심각하게 받아들인 중국 당국은 즉각 규제의 고삐를 죄기 시작했다. 이달 초에는 차량 제조사에 기능 설명의 정확성과 소비자 오인 방지를 명시한 가이드라인이 내려졌으며, 일부 지역에서는 실제 기능의 범위와 한계를 차량 내에 표기하는 조치도 논의되고 있다. 이번에 광고 내 자율주행, 스마트 주행과 같은 표현이 전면 금지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중국 정부 관계자는 “특정 브랜드를 겨냥한 규제가 아니라, 자율주행이라는 기술 전반에 대한 신뢰 회복 조치”라고 설명했다.
기술적 책임 교통망 전체로 분산하려는 움직임도
자율주행이라는 표현조차 어려워지면서 최근에는 ‘자율협력주행’ 개념이 주목받고 있다. 자율협력주행은 말 그대로 차량 단독의 판단이 아니라 차량-차량 간, 또는 차량-인프라 간 통신을 기반으로 공동 대응하는 시스템을 의미한다. 이는 자율주행 기술의 근본적 한계를 보완하려는 시도인 동시에 차량이 모든 상황을 판단할 수 있다는 일종의 환상에서 벗어나려는 전략적 후퇴이기도 하다.
제조사들 역시 레벨4 수준의 완전 자율주행 기술 상용화에 매우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기술적 완성도는 물론 법적 책임과 윤리적 기준, 사회적 수용성 등 복합적 장벽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현대차와 메르세데스-벤츠, 제너럴모터스 등 다수의 완성자 업체가 레벨4 개발 성공 후에도 프로토타입 개념의 테스트 운행을 거듭 중이며, 포드와 폭스바겐이 공동 투자한 자율주행 개발 회사 ‘아르고’는 아예 문을 닫았다.
이러한 흐름은 정책 환경에도 반영되고 있다. 자율협력주행 기술이 적용된 대표적 인프라로는 협력형 지능형교통시스템(C-ITS)을 꼽을 수 있다. C-ITS는 주행 중인 차량에 주변 도로 및 교통상황과 급정거, 낙하물 등 사고 위험 정보를 실시 제공하는 시스템이다. 국토교통부는 자율주행차의 한계를 보완하고, 일반차의 교통안전을 제고하기 위해 시범사업과 실증사업을 통한 기술 검증 등 C-ITS 사업화를 추진 중이다. 차량 하나하나의 기능을 극대화하는 것보다 전체 시스템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편이 효율과 안정성 측면에서 더 합리적이라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자율협력주행은 결국 자율주행의 후퇴가 아니라, 보다 현실적인 재구성에 가깝다는 게 전문가들의 일관된 견해다. 자율성이라는 기술 환상을 걷어내고, 협력 기반의 실질적 안전 확보에 방점이 찍혔단 분석이다. 제조사들이 ‘완전 자율주행’에 더 이상 열을 올리지 않는 이유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환상보다는 책임과 검증에 무게를 두고, 지속가능한 성장을 도모하겠다는 취지다. 그간 숨 가쁘게 달려 온 기술 발전에 자동차 업계가 급브레이크를 밟는 배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