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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내 제조사는 단가·공급 한계
발전용 대형 원자로 아닌 소형 연구용
제한적 수요, 꾸준한 수주는 과제로

한국원자력연구원 등이 원자력 종주국으로 불리는 미국의 미주리대학교와 연구용 원자로 수출 계약을 맺었다. 이번 계약으로 한국은 향후 저가형 소형 원자로 시장에서 실질적인 공급자로 거듭날 가능성을 시사했으며, 본격적인 수출 산업으로 성장시킬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을 갖추게 됐다. 다만 과도한 의미 부여로 신뢰도를 저해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 또한 짙어지는 모습이다.
신규 연구로 건설 설계 계약
18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따르면 한국원자력연구원과 현대엔지니어링, 미국 MPR로 구성된 컨소시엄은 미국 미주리대가 발주한 ‘차세대 연구로 사업’의 첫 단계인 초기 설계 계약을 체결했다. 미주리대는 해당 계약을 국제 경쟁입찰로 발주했으며, 미국 회사들을 비롯해 총 7곳이 도전한 끝에 한국 컨소시엄이 최종 계약 대상으로 낙점됐다.
이번 사업은 미국 미주리대의 20메가와트열(MWth)급 고성능 신규 연구로 건설을 위한 설계 사업이다. 컨소시엄은 앞으로 6개월 동안 미주리대 측이 원하는 용도를 바탕으로 적합한 설계 요건과 설비를 결정하는 작업을 진행하게 되며, 계약 규모는 1,000만 달러(약 140억원)다. 과기부는 “향후 전개될 기본·개념 설계도 역시 한국 컨소시엄이 맡을 가능성이 크며, 이 경우 계약 규모는 더 커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컨소시엄은 미주리대가 국내 원자력 연구 및 사업 역량을 높이 평가해 이번 계약을 확정했다고 밝혔다. 주한규 원자력연구원 원장은 “이번 사업 수주는 세계 유일의 고성능 연구로 핵연료 기술과 높은 설계 능력 등 연구원이 쌓아온 독보적인 기술력과 민간의 해외 사업 역량이 결합해 만든 이정표”라고 자평했다.
시작 진입 자격 확보에 의미 부여
업계에서도 한국이 미국이라는 종주국에 원자로를 납품할 수 있는 ‘공식적 공급자’로 인정받았다는 점에 의미를 부여하는 분위기다. 연구용 소형 원자로에 한정된 이야기지만, 가장 보수적인 원자력 시장에서 첫발을 내디뎠다는 상징적 무게는 무시할 수 없다는 평가다. 아울러 이전까지는 세계 시장에서 발전소 단위의 대형 계약만을 노리던 한국이 이제는 틈새형 저가 시장에도 들어갈 수 있는 길이 열렸단 분석이다.
이번에 수출되는 원자로에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한국이 보유한 기술이 적용됐다. 바로 ‘표준화된 저농축 우라늄 기반 소형 연구용 원자로’로, 방사성 폐기물 관리와 경제성 측면에서 우수한 설계 구조가 특징이다. 이는 제한된 예산 내에서 최대한의 기술 기술 경쟁력을 확보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개발도상국이나 예산이 넉넉하지 않은 중견 국가의 대학 및 연구기관들엔 중요한 기준이 될 수 있다는 게 컨소시엄의 설명이다.
시장성 측면에서도 낙관적이란 분석이다. 미국 정부는 트럼프 대통령 재집권 이후 자국 내 노후 원자로 교체를 순차적으로 추진 중이며, 연구용 원자로만 해도 약 30기 이상이 리모델링 대상에 올라 있다. 아직 확실한 수요로 연결된 것은 아니지만, 이번 미주리대와의 계약이 후속 수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이는 기술력만큼이나 신뢰 이력이 중요한 원자력 시장의 특수성과도 맞닿아 있다.

성급한 ‘자아도취’에 신뢰도 깎일라
반면 냉정한 시각을 유지해야 한다는 회의론 또한 만만치 않다. 이번 수출 대상은 전력 생산에 쓰이는 발전용 원자로가 아니라, 대학이나 연구소에서 실험용으로 쓰는 소형 연구용 원자로이기 때문이다. 연구용 원자로는 에너지 생산 기능보다는 신소재 실험, 방사선 조사, 의약품 제조, 중성자 분석 등 비상업적 목적의 장비에 가깝다. 이는 제한적인 수요를 의미하며, 산업적 영향력 또한 크지 않다는 말과 같다. 실제 원자력연구원이 운영하는 연구용 원자로 하나로(HANARO)도 지난 5년간 연평균 가동 일수가 50일 남짓에 불과했다.
게다가 연구용 원자로는 국제 규제 기준이 발전용에 비해 상대적으로 느슨하다. 상업 발전소처럼 고준위 폐기물이나 안전설비 기준이 엄격하지 않기 때문에 진입 장벽도 상대적으로 낮다. 물론 일정 수준의 기술력이 뒷받침돼야 하지만, 해당 분야에 경험이 있는 국가라면 충분히 도전할 수 있는 영역이라는 게 업계 중론이다. 미국에 수출했다는 상징성은 인정하되, 이를 과도하게 홍보하거나 ‘기술 종주국을 뛰어넘었다’는 식의 프레임은 과장에 가깝다는 평가다.
이와 관련해 한 업계 관계자는 “이번 사례는 한국 원자력 기술이 하나의 좁은 틈을 파고든 것일 뿐, 세계 시장 전체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전환점으로 해석하는 건 무리가 있다”며 “이걸 가지고 과도하게 추켜세우는 평가는 오히려 신뢰를 깎아 먹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기술적 가능성에 무게를 두되, 냉정하게 스스로의 위치를 직시할 필요 또한 있다는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