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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듯한 서류에 수십억원 대출, 이게 가능?” 반복되는 금융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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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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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꼭 알아야 할 소식을 전합니다. 빠르게 전하되, 그 전에 천천히 읽겠습니다. 핵심만을 파고들되, 그 전에 넓게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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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위 서류에 신한·하나은행 연속 사고
재직증명 위조 및 담보가치 부풀리기 빈번
손발 묶인 은행, 책임은 흐릿-피해는 명확

은행권이 금융 소비자가 제출한 허위 서류를 제대로 걸러내지 못하면서 수십억원에 달하는 규모의 금융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이들 금융사고 가운데 상당수는 은행 내부 시스템에서 별다른 이상 징후조차 포착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허위 서류 심사 체계에 구멍이 뚫려 있다는 진단이 나온다.

금융사고 키우는 심사 구조

25일 금융권에 따르면 하나은행은 자사에서 74억원 규모의 금융사고가 발생했다고 지난 23일 공시했다. 영업점 직원이 여신 거래처로부터 금품을 받고 허위 서류를 바탕으로 대출을 추가 집행한 사실이 적발됐다는 설명이다. 문제의 직원이 거래처에 집행한 부당 대출은 74억7,070만원에 이른다. 해당 사실을 보고받은 금융감독원은 즉시 하나은행에 대한 수시 검사에 착수했다.

허위 서류로 인한 금융 사고는 꾸준히 반복되는 일이다. 비교적 최근의 사례로 지난달 신한은행에서 적발된 17억원을 횡령 사건을 꼽을 수 있다. 신한은행은 지난 3월 7일 ‘금융 사고 공시’를 통해 2021년 12월부터 작년 7월까지 17억720만원의 횡령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서울 모 지점 기업대출 담당 직원 A씨는 자사와 거래 중인 업체의 명의를 도용해 위조한 서류로 대출을 받고 갚기를 반복한 것으로 드러났다.

신한은행은 자체 모니터링 과정에서 이러한 사실을 확인하고 경찰에 해당 직원을 고발했다. 고발당한 직원은 이후 퇴사를 신청한 뒤 잠적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두 사건은 모두 ‘서류만 통과하면, 대출이 실행된다’는 시스템적 허점을 노린 범죄로 내부 통제 시스템이나 심사 인력만으로는 범죄를 사전에 걸러내기 어렵다는 한계를 드러냈다.

은행들은 신용대출 심사 과정에서 소득, 재직, 사업자 등록 등 다수의 서류를 요구하지만, 해당 문서가 실제로 발급기관에서 발행된 것인지를 실시간으로 검증할 수 있는 수단은 미비한 실정이다. 특히 위조 기술이 고도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문서 진위를 일일이 판단하는 데는 한계가 존재한다는 지적이다. 결국 사후에야 사건이 밝혀지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은행이 떠안거나 금융소비자 보호 기금으로 보전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은행은 눈 뜨고 당한다

작년 말에도 우리은행에서 외부인의 허위 서류 제출에 따른 사기 혐의 금융사고가 발생한 바 있다. 사고 금액은 25억원으로, 사고 발생일은 지난해 3월 14일이다. 우리은행은 금융사고 발견 경위에 대해 “제보 접수 후 자체 조사를 통해 발견했다”며 “재개발 상가 할인 분양을 받은 고객이 할인받기 전 분양가로 대출금을 신청하면서 부당대출이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은행들은 실제 영업점 현장에서 팀장이나 지점장이 모든 서류를 하나하나 검토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전한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영업점 내 대출 결재권자가 기업을 실사하거나 하다못해 기업 대표를 만나 면담하면서 서류의 허위 여부를 파악하면 가장 완벽할 것”이라면서도 “업무는 쏟아지고 대출 1건에 쏟을 시간은 제한돼 있으니 부하 직원을 믿고 결재를 내주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금융권 종사자들은 이 같은 허위 서류로 인한 부당 대출을 개인의 일탈 혹은 특정 영업점의 실책으로만 치부할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영업점 내 대출 결재권자가 기업을 실사하거나 하다못해 기업 대표를 만나 면담하면서 서류의 허위 여부를 파악하면 가장 완벽할 것”이라면서도 “업무는 쏟아지고 대출 1건에 쏟을 시간은 제한돼 있으니 담당 직원을 믿고 결재를 내주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금융당국도 허위 서류로 인한 금융 사고 반복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개선 방안을 마련했다. 지난해 12월 금융감독원은 대출 심사에 사용되는 계약서상 중요 사항의 누락 및 오기재 여부 확인 의무를 은행권 자율 규제에 담도록 지도했다. 아울러 은행의 외부 감정 평가 의뢰 시 전산상 무작위로 평가사를 지정하도록 했다. 직원 또는 대출자가 특정 평가사에 의뢰해 담보 가치를 부풀리는 행위를 막기 위한 조치다.

소비자 책임 묻지 못하는 은행, 진위 확인 권한마저 없어

그럼에도 업계에서는 은행 단독의 심사 시스템으로는 허위 서류를 완벽히 걸러내기 불가능에 가깝다는 목소리가 주를 이룬다. 은행은 서류 진위를 실시간으로 검증할 권한이 없을뿐더러, 고객에게 일방적으로 책임을 넘길 수도 없는 구조에 놓여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금융당국은 지난 2015년부터 은행 신고서상에 소비자 책임 표현을 제한하는 조치를 취했다. ‘향후 발생하는 손해에 대해서는 본인(고객)이 책임을 지겠다’ 등 소비자에게 부담감을 주는 표현을 없애겠다는 취지에서다.

이에 일각에서는 제3의 심사 전문 기관을 도입해 금융기관과 고객 사이의 책임을 분산시키는 방식의 제도 개편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금융기관이 수집한 서류를 외부 인증기관이 검증하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대출 여부를 판단하는 다중 심사 체계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이는 은행이 직접적으로 법적 판단을 내리지 않아도 독립적인 제3기관의 판단을 근거로 대응할 수 있게 해준다. 금융기관의 책임 부담을 줄이는 것은 물론 고객에게도 신뢰성 있는 심사 과정을 제공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영국과 호주 등 일부 주요국에서는 이미 외부 신용 확인 기관이나 서류 인증 플랫폼을 통해 제출된 정보를 실시간 검토하고, 위조 가능성이 있는 경우 이를 자동으로 차단하는 시스템을 구축해 운영 중이다. 국내의 경우 일부 서류에 한해 진위 확인 응용프로그램인터페이스(API)가 도입돼 있긴 하지만 여전히 재직증명서나 급여명세서 등 주요 서류에 대해서는 수기 확인에 의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상황에서 새로운 인증 체계가 도입되지 않는 한, 허위 서류라는 고전적인 수단을 악용한 범죄는 앞으로도 반복될 것이라는 게 업계의 일관된 목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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