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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d, 경기 진단 보고서 '베이지북' 공개 기업, 채용 미루고 제품 가격 책정 주기 단축 소비자, 자동차·내구재 중심으로 사재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정책 불확실성으로 기업들이 채용을 주저하고, 제품 가격 책정 주기를 단축하고 있다는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경기 진단이 나왔다. 기업들의 인플레이션 상승 전망도 짙어졌다. 관세가 본격 발효되기 전 자동차를 중심으로 한 소비자들의 사재기 현상도 확인됐다. 이에 연준의 5월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도 멀어지는 분위기다.
연준 “무역 관련 불확실성 만연”
24일(이하 현지시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연준은 전날 공개한 4월 경기동향보고서(베이지북)에서 “경제활동은 이전 보고서 이후 크게 변하지 않았지만 국제 무역정책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만연해 있다”고 진단했다. 베이지북은 연준을 구성하는 12개 지역 연방준비은행이 담당 구역의 경제활동을 직접 조사한 결과를 바탕으로 하는 경기 진단 보고서다. 통상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 2주 전에 발표되며 이번 보고서는 다음 달 6~7일로 예정된 5월 FOMC의 정책 결정을 지원하기 위해 작성됐다.
이번 베이지북의 키워드는 ‘관세’와 ‘불확실성’이다. 베이지북에서 관세에 대한 언급 횟수는 107차례에 이르러 직전 보고서(49회)보다 2배 이상 많았다. 트럼프 1기 행정부 당시인 2018년 10월 베이지북에서 51회 언급됐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지역 기업인들이 느끼는 관세 불안감이 더욱 커진 것으로 풀이된다. 이번 베이지북에서 불확실성과 관련된 표현이 89회나 등장한 것도 눈길을 끄는 대목이다.
연준은 여전히 경제는 성장하고 있다고 봤지만 경제 종사자들의 심리적 불안감은 커졌다고 봤다. 실제 출장이나 휴가를 위한 여행은 모두 둔화되고 있으며 외국인 여행객도 감소했다. 보고서는 “여러 지역에서 기업들이 고용에 대해 관망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으며 경제 상황에 대한 명확한 결과가 나올 때까지 채용을 중단하거나 늦추고 있다고 보고했다”며 “또한 기업들이 해고를 준비하고 있다는 보고도 산발적으로 나왔다”고 밝혔다.
소비자 지출은 자동차를 제외하고 전반적으로 낮아졌다고 연준은 전했다. 자동차의 경우 대부분의 지역에서 완만하거나 강한 판매가 이뤄진 것으로 파악됐다. 연준은 “일반적으로 관세 관련 가격 인상에 앞서 구매를 서두른 영향을 받았다”고 배경을 분석했다. 알레르토 무살렘 세인트루이스 연은 총재는 “일부 담당자들은 지속적인 불확실성으로 인해 기존 자본 투자 계획을 실행하거나 새로운 계획을 세우는 것을 꺼렸다고 보고했다”며 “한 버번 증류소는 무역 규칙이 계속 바뀌면서 미리 계획을 세우는 것이 거의 불가능해 보였다”고 전했다.

FOMC 위원들, 6월 이후 금리 조정 가능성 시사
이번 베이지북을 두고 시장에서는 연준이 금리 인하 가능성을 일축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날 베이지북이 발표된 후 미국 선물시장은 연준이 기준금리를 현 4.25~4.50%로 동결할 확률을 94%로 반영했다. 연준은 내달 6~7일 FOMC를 열고 금리를 결정할 예정이다.
클리블랜드 연방준비은행의 베스 해맥 총재도 5월 열릴 FOMC 정례회의에서는 금리 인하 논의가 시기상조라고 선을 그었다. 그는 CNBC와의 인터뷰에서 "5월 FOMC까지는 금리를 내리거나 올릴 만큼 충분한 정보를 확보할 가능성은 낮다"고 언급했다. 이어 그는 "5월 인하 가능성에 대해선 인내심을 가져야 한다"며 "우리는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 확인할 때"라고 말했다.
다만 그러면서도 이후 금리 조정 가능성에 대해서는 “만약 우리가 명확하고 뚜렷한 경제 지표를 6월까지 확인할 수 있고, 그 시점에서 금리의 바른 방향을 판단할 수 있다면 FOMC가 금리를 움직이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5월은 금리를 인하하기에 이르지만 6월까지는 금리를 움직일 수 있을 만큼의 정보를 확보할 가능성이 있다는 발언으로 해석된다.
트럼프 “파월에게 전화할지도 몰라” 금리 인하 재차 압박
그동안 주요 연준 관계자들은 관세 정책의 경제 영향이 불확실하다는 점을 고려해 기준금리를 한동안 유지한 채 지켜보는 것이 적절하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해맥 총재도 “지금은 선제적으로 대응하기에 좋은 시기가 아니다”라며 관망 기조를 강조해 왔다. 그런 만큼 금리 조절 가능성과 시기에 대해 언급한 것은 최근 연준의 분위기를 고려하면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하지만 그럼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여전히 즉각적인 금리 인하를 촉구하며 연준을 압박하고 있다. 연준 베이지북이 발표된 당일 저녁 트럼프 대통령은 "아직 제롬 파월 연준 의장과 전화 통화를 하진 않았지만, 전화할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그는 "금리를 인하하지 않은 것은 파월 의장의 실수"라며 "우리는 지금 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22일에도 백악관 집무실에서 "파월 의장을 해고할 생각은 없지만 너무 늦게 움직이지 않는 것은 좋지 않다"고 압박했다. 지난 21일에는 자신의 소셜미디어(SNS) 트루스소셜을 통해 파월 의장을 "큰 패배자(major loser)"라고 칭하며 공개적으로 비난했고, 17일에는 "금리를 내리지 않으면 그를 해고하겠다"고 경고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