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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항공청, 일반직 공무원-전문가로 분리돼 양측 의견 대립으로 실무에 차질 생겨 혼란 바로잡기 위한 강력한 리더십 필요

윤석열 정부의 과학기술 대표 브랜드인 우주항공청(이하 우주청)이 내부 잡음에 시달리고 있다. 시너지 창출을 위해 배치한 일반직 공무원들과 민간 전문가들이 사사건건 충돌하며 실무에도 차질이 빚어지는 양상이다. 전문가들은 우주청이 정상적으로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내부 리더십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양분된 우주항공청
20일 정계에 따르면, 우주청은 공무원과 민간 전문가들의 시너지를 창출하겠다는 구상 아래 출발했다. 현재 우주청이 크게 두 개의 조직으로 나뉘어 있는 이유다. 우선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서 넘어온 노경원 차장 산하의 일반직 공무원 조직이 있다. 우주청 안살림을 담당하는 기획조정관과 우주항공정책국, 우주항공산업국이다. 해당 조직은 대부분 과기정통부나 산업통상자원부, 국토교통부, 외교부 등 우주항공 관련 부처들에서 우주청으로 이동한 공무원들로 구성돼 있다.
반면 미국항공우주국(NASA) 출신인 존 리 본부장이 이끄는 우주항공임무본부에 몸담은 직원들은 대부분이 민간 전문가다. 임무본부는 우주항공 관련 연구개발(R&D)을 진두지휘하는 조직으로, 석·박사 비율이 80%에 달한다. 임무본부의 민간 전문가들은 최대 10년 수준의 임기제 공무원 형태로 고용됐으며, 비교적 높은 임금을 받는다. 5급 선임연구원의 연봉은 8,000만~1억1,000만원에 달하며, 존 리 본부장의 연봉은 2억5,000만원으로 대통령과 비슷한 수준이다.
내부 충돌 빈번해
문제는 우주청 출범 이후 약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공무원 조직과 민간 전문가들이 이렇다 할 시너지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 추가 발사를 둘러싸고 발생한 갈등 사례를 살펴보면 이 같은 문제를 여실히 확인할 수 있다. 현재 누리호 기술을 이전받고 있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누리호에 부품, 장비를 공급하는 중소·중견 기업 등은 우주산업 생태계 유지를 위해 우주청에 누리호 추가 발사를 요청하고 있다.
우주청은 위성 수요가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 추가 발사 계획을 확정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이었으나, 최근 국방부가 누리호 추가 발사 시 국방 위성을 탑재하겠다고 제안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국방 위성 2기를 주 탑재 위성으로 실으면 누리호 7차 발사의 명분이 생기기 때문이다. 이에 우주항공산업국은 최근 열린 우주청 내부 회의에서 이 안건을 올리며 자체 예산을 사용해서라도 추가 발사에 나서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임무본부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에 기술을 이전하기로 한 상황에 우주청 예산으로 추가 발사를 하기는 어렵다며 반발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임무본부 관계자는 “위성 발사 수요가 있다면 정식으로 발사체 계약을 맺어야 한다"며 "국방 발사라고 해서 무작정 우주청 예산을 투입해 추가 발사 계획을 세우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임무본부는 누리호 추가 발사 자체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추가 발사를 결정하기 전에 기술 이전 등의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덧붙였다.
우주항공 업계는 누리호 추가 발사를 놓고 발생한 산업국과 임무본부의 갈등이 공무원 조직과 민간 전문가 조직의 태생적인 차이에서 비롯했다고 본다. 한 업계 관계자는 "누리호 추가 발사 계획 확정은 사실 몇 달씩 지연될 일이 아니다"라며 "공무원 조직과 전문가 조직의 반복되는 충돌이 우주청의 사업 진행에 차질을 빚고, 업무 효율을 갉아먹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임무본부는 정무적 판단이 필요한 부분에서 주저하는 면이 있고, 일반직 공무원들도 전문가인 임무본부의 입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며 "기존에 정부가 기대했던 시너지보다는 마찰음이 더 크다"고 짚었다.

우주항공청의 지향점은?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우주청의 근본적인 '운영 방향'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시너지 창출이라는 명분을 앞세워 내부 충돌을 방치할 것이 아니라, 강력한 실권자가 지배권을 잡고 초기 기틀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 경영 전문가는 "현재의 비효율적인 구조를 방치하면 결국 우주청의 실무 전반에서 잡음이 생기고, 비전 자체가 흐려질 것"이라며 "포스코(POSCO)가 고(故) 박태준 명예회장의 강력한 리더십 아래서 자리를 잡았듯, 우주청에도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한 때"라고 강조했다.
박 회장은 지난 1967년 정부의 종합제철소 건설 계획을 맡은 후, 이듬해 창립된 포항종합제철주식회사(포스코의 전신)의 회장 자리에 오른 인물이다. 당시 포스코는 ‘양질의 철을 생산해 국가 산업화 기반을 마련하며 국가의 은혜에 보답한다’는 뜻의 창업 정신 제철보국(製鐵報國)을 앞세웠다. 일본으로부터 강점기 피해 배상 목적으로 받은 대일청구권자금이 제철소 설립에 투입됐기 때문이다.
당초 대일청구권자금은 별도 사용처가 명시돼 있어 포항제철 건설 자금으로 바로 활용할 수 없는 돈이었다. 이에 박 회장과 김학렬 당시 경제기획원 장관 등 정부 관계자들은 자금을 내준 일본의 정책 결정자들을 상대로 끈질긴 설득 작업에 나섰고, 대일청구권자금 6,370만 달러와 일본수출입은행 차관 5,000만 달러를 제철소 건설에 투입하기로 합의했다. 박 회장의 비장한 각오를 담은 표현 ‘우향우 정신’도 이때 나왔다. 박 회장은 1970년 4월 포항제철소 착공식에서 “민족 숙원사업인 제철소 건설 실패는 민족사에 씻을 수 없는 죄”라며 “실패하면 우향우하여 영일만에 투신한다는 각오로 임해야 한다”고 발언한 바 있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박 회장의 '캔두이즘(candoism)' 정신과 특유의 리더십은 포스코가 시장 입지를 다지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후 포스코는 철강을 꾸준히 생산하며 국가 경제에 이바지했고, 선진국으로부터 철강 기술 이전을 거부당하는 상황에서 자체 철강 제조 기술을 확보하는 등 발전을 거듭했다. 현시점 포스코는 한국을 대표하는 철강 기업으로 자리매김했으며, 2010년부터 지난해까지 14년 연속 글로벌 철강 분석 기관 WSD로부터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철강사'로 인정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