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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IP 효과 전무, 유저 이탈 가속
‘기대작’ 이름 뒤엔 부실 콘텐츠만
韓 게임 생태계 낙후 문제 수면 위로

라인게임즈가 ‘창세기전 모바일’로 원작 팬들의 향수를 자극하며 기대를 모았지만, 게임 이용자들의 외면 속 흥행에 참패했다. 경쟁사 출신 인재 영입은 무의미했고, 유저 평가는 혹평으로 얼룩졌다. 이 같은 흥행 실패는 국내 주요 게임사들 대부분이 안고 있는 숙제로, 한국 게임업계가 기술력, 인력, 우수한 지식재산권(IP)을 모두 갖추고도 ‘재미’라는 본질을 놓치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출시 초기부터 완성도 문제 꾸준히 지적
30일 시장조사기관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라인게임즈의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SRPG) ‘창세기전 모바일’의 지난달 월간활성이용자 수(MAU)는 8,742명으로 집계됐다. 창세기전 모바일 MAU는 출시 초기인 지난해 1월 20만8,404명을 기록한 이후 꾸준히 감소하다가 올해 1월 2만2,421명으로 반짝 반등했지만, 불과 석 달 만에 3분의 1수준으로 급감했다.
라인게임즈가 2023년 하반기부터 경쟁사인 넥슨코리아 출신 인사들을 대거 영입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같은 성적은 ‘흥행 참패’에 가깝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당시 라인코리아에는 김태환 전 넥슨 부사장과 윤주현 전 넥슨 플랫폼 디렉터 등이 합류하며 분위기 반전을 예고했다. 김 전 부사장은 넥슨 시절 ‘메이플스토리’ 등 핵심 IP 사업을 이끈 바 있으며, 윤 전 디렉터는 플랫폼 아키텍처를 총괄한 기술 전문가로 꼽힌다.
라인게임즈가 2016년 인수한 창세기전 IP는 모바일과 콘솔을 오가며 여러 버전으로 출시됐지만, 모두 이렇다 할 성적을 거두지 못했다. 특히 2023년 말 닌텐도 스위치 전용으로 선보인 ‘창세기전: 회색의 잔영’은 흥행 실패의 여파로 개발사 레그스튜디오가 해체되기도 했다. 창세기전 모바일 역시 매출을 비롯한 각종 지표가 급락하면서 프로젝트를 총괄하던 이경진 디렉터가 지난해 3월 회사를 떠났다. 현재 해당 IP의 운영은 자회사 미어캣게임즈가 단독 수행 중이다.
원작의 향수에 이끌려 창세기전 모바일을 접한 이용자들은 게임의 재미와 완성도 모두 기대 이하였다는 평가를 내놨다. 게임의 시스템이 지나치게 단조롭고, 전투 밸런스와 과금 구조 역시 여타 게임 대비 열세라는 지적이다. 심지어 일각에선 “겨우 이런 걸 만들려고 IP를 가져갔나”라는 비판을 내놓기도 했다. 과거의 추억만으로는 후속 게임의 성공을 확신할 수 없다는 사실이 다시 한번 증명된 셈이다.

유저 니즈 파악 실패 + 자만이 낳은 결과
이 같은 문제는 비단 라인게임즈에 국한하지 않는다. 여타 국내 대형 게임사들도 비슷한 함정에 빠져 있다. 엔씨소프트는 최근 ‘쓰론 앤 리버티’ 등 굵직한 신작을 잇달아 선보였지만, 유저 반응은 냉담했다. 해외 진출을 노리고 화려한 그래픽과 대규모 콘텐츠를 앞세웠지만, 정작 재미라는 본질을 놓친 결과였다. 결국 흥행 저조로 인한 조기 할인과 서버 통합 등이 이어졌고, “엔씨 게임은 다 거기서 거기”라는 자조 섞인 평가만 더해졌다.
넥슨도 마찬가지다. 모바일 버전으로 준비된 ‘마비노기 모바일’은 개발비만 1,000억 원 이상 투입된 대작으로 소개됐지만 지난 3월 출시 이후 줄곧 평점 하락을 겪고 있다. 지속적으로 발견되는 표기 문제와 시스템적으로 미흡한 부분, 직업과 룬의 망가진 밸런스, 기타 운영에 관한 성토가 맞물린 결과다. 유저들은 넥슨 측에 낡은 스토리와 사용자 인터페이스(UI)를 개선해달라고 요청 중이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현상이 대형 게임사에서 두드러진다는 점에 주목했다. 거대한 조직 구조와 보수적인 개발 문화, 그리고 상업적 성공만을 추구하는 리스크 회피 전략이 ‘새로움’과 ‘몰입감’이라는 게임의 본질을 저해했다는 분석이다. 한 게임업계 관계자 “최근 출시되는 게임들은 하나같이 ‘왜 유저가 이 게임을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명확히 답하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으며 “뻔한 스토리에 일부 캐릭터를 더하거나 빼는 방식으로는 더 이상 유저들의 관심을 끌지 못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기술력만 믿고 ‘재미’는 뒷전?
이와 같은 맥락에서 한국 게임 시장은 지나치게 폐쇄적인 것으로 평가받는다. 개발자들이 내부 피드백에만 의존하고, 해외 유저 트렌드나 커뮤니티의 반응을 반영하는 데는 소극적이라는 지적이다. 심지어 일부 게임은 외부 비공개 테스트(CBT)조차 없이 바로 출시되거나 형식적인 피드백만 수렴한 채 업데이트를 강행하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유저 경험을 반영한 개선이 어려운 시스템이 고착하고, 실패가 반복되는 구조다.
글로벌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대형 IP를 앞세우거나 고사양 장비에 맞춘 하이엔드 게임을 양산하는 전략도 오히려 독이 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는 과금 유도 대신 몰입도 높은 스토리와 창의적 시스템으로 유저를 끌어들이는 해외 게임사들의 행보와 상반된 것으로, 국내 게임은 반복적 사냥과 뽑기, 과금 유도에 의존하는 구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게 이용자들의 일관된 지적이다. 유저들은 끊임없이 진화하는데, 게임사들은 과거의 영관에 머물러 있단 비판이 주를 이루는 배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