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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AI 도입 놓고 ‘저울질’ 미국 모델은 ‘부담’, 중국 모델은 ‘위험’ 명분, 실리 모두 얻는 ‘절충안 필요’
본 기사는 VoxEU–CEPR(경제정책연구센터)의 칼럼을 The Economy 편집팀이 재작성한 것입니다. 원문 분석을 참조해 해석과 논평을 추가했으며 본 기사에 제시된 견해는 VoxEU 및 CEPR과 반드시 일치하지 않음을 밝힙니다.
호주가 AI 기술 개발을 놓고 깊은 고민에 빠졌다. 중심에는 AI 개발을 위한 5년 치 국가 예산이 미국 기준 ‘프런티어 AI 모델’(frontier AI model, 고도의 능력을 갖춘 첨단 AI 모델) 학습 비용에도 못 미친다는 경제적 이유가 자리 잡고 있다. 미중 갈등 심화와 비용 문제로 양국 기술 중 하나를 선뜻 선택하기도 힘든 상황이 어려움을 더한다.

호주, 미·중 AI 모델 놓고 ‘고민’
AI 개발은 미중 간 경쟁의 최전방으로 자리 잡았다. 미국 모델이 기술적 우위를 점하고 있지만 ‘01.AI’나 딥시크(DeepSeek) 등 중국 기업의 비용 효율성도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GPU(그래픽 처리 장치) 사용을 줄이고 효율적 알고리즘을 활용하는 중국의 기술은 미국과 같은 대규모 투자가 불가능한 호주에게는 관심의 대상일 수밖에 없다.

주: 오픈AI GPT-4, 딥시크 V3, 01.AI 이라이트닝(좌측부터)
하지만 AUKUS(호주, 영국, 미국 간 3국 안보 동맹)를 통해 공고화된 미국과의 군사 및 정보 파트너십이 문제를 복잡하게 한다. 중국 기술에 기울어 보이는 어떤 모습도 미국 정부의 반발을 살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막대한 비용이 소요되는 미국 기술만 바라보고 있을 수도 없는 것이, 잘못하면 디지털 기술과 인프라 등 다른 부문 투자까지 영향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너무 비싸고’ 중국은 ‘위험’
호주 재무부가 AI 개발을 위해 5년 동안 투입하기로 한 국가 예산은 4천만 호주 달러(약 355억원)가 전부인데 이 예산 규모로 오픈AI의 GPT-4와 경쟁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어불성설이다. 해당 AI를 위해 오픈AI는 호주가 5개년 예산으로 책정한 규모의 세 배를 몇 개월 만에 쓰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호주가 미국 시스템만을 고집하다가는 주도권 하나 없이 천문학적인 비용만 청구받는 수동적 소비자로 전락할 수 있다. 반면 중국 개발자들과 협력하면 예산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면서 전략적 자주권까지 확보할 가능성이 높다.
이는 ‘안전하지만 비싼’ 것과 ‘저렴하지만 위험한’ 대안 사이의 고민을 벗어난다. 미국 기술에 완벽히 의존하는 존재가 될지, 호주 정부가 감사와 규제 권한을 행사하는 공동 개발자의 위치에 설지를 결정하는 훨씬 중요한 문제다.
중국을 선택한다면 호주가 보유한 650,000명을 넘는 중국 출신 이민자들은 중요한 자산이 될 수 있다. 중국 본토 학계와 기술 네트워크를 연결해 주는 가교가 될 수 있고 영어권 국가 어디에서도 구하기 어려운 호주-중국 양국 언어 데이터에 접근하기도 쉽다. 또한 중국어 AI 모델을 공공 부문에 활용하기 위한 테스트 및 개선 작업에 투입해 호주의 다문화주의(multiculturalism)를 경쟁 우위에 활용하는 기회로 삼을 수 있다.

주: 영국, 인도, 중국, 뉴질랜드(좌측부터)
미국과의 ‘군사 동맹’도 부담
하지만 지정학적 상황을 고려하면 문제가 단순하지 않다. AUKUS가 군사적 협력 다음으로 강조하는 사항이 공동 기술 개발이기 때문에 호주가 공식적으로 중국 시스템을 수용할 경우 문제가 될 소지가 다분하다. 이미 미국 의회 내에 우방국들의 중국 기술 사용을 배신행위로 보는 시각이 존재한다. 하지만 중국을 완전히 배제하고 미국의 기술 사용 계약을 그대로 수용할 수도 없는 일이다.
그래서 생각할 수 있는 절충안은 호주가 미국과 중국 모델 모두를 받아들여 ‘주권국 관리하의 개발 환경’(sovereign inference enclaves)에 놓고 사용하는 것이다. 호주 정부는 암호화 및 수출 규정 준수 등에 대한 강도 높은 감사를 실시할 수도 있고 정보 보호에 유리한 환경도 유지할 수 있다.
이러한 시도가 성공한다면 호주는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 국가들이 따를 수 있는 선례를 남기는 셈이 된다. 중국은 이미 디지털 실크로드(Digital Silk Road, 중국의 디지털 영향력을 전 세계로 확장)를 통해 다수의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 개발도상국 그룹)에 인프라를 공급하는 상황이고 이 기회에 AI 기술 제공을 통해 영향력을 굳히려 할 것이다. 또한 개발도상국들도 미국의 동맹국인 호주의 움직임을 보고 엄두를 낼 것이다.
결론적으로 호주는 미국, 중국 가운데 한쪽을 선택하는 ‘제로섬 게임’에서 벗어나야 한다. 미국과 중국 모델을 놓고 비용과 반응 시간, 정확성 등 핵심 지표에 대한 비교를 통해 명분과 실리를 얻을 수도 있고 위험성을 최소화하기 위해 호주법 준수 여부에 대한 모니터링이 가능한 한정된 환경에서 사용하도록 하는 방법도 고민할 수 있다.
두 AI 강대국의 양극화를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서 호주는 명분을 지키며 실리를 얻는 방안을 신중히 고민해 실행해야 한다.
원문의 저자는 마리나 장(Marina Zhang) 시드니 공과대학교(University of Technology Sydney) 부교수 외 3명입니다. 영어 원문 기사는 Australia’s AI ambitions hinge on collaboration with China | EAST ASIA FORUM에 게재돼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