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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J CGV 성공적 활용 사례 존재
시장 “검토는 OK, 실행 가능성 희박”
’홈플러스의 실패’ 유동화 리스크 부각

신세계그룹이 스타벅스 매장의 임대보증금을 유동화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전국 수천 개 매장의 임대인 동의를 얻기 어렵다는 현실적 한계가 크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특히 최근 스타벅스 본사와 임대인들 간의 신뢰가 흔들린 상황에서 유동화 추진은 갈등만 키울 수 있다는 우려가 팽배하다. 과거 유사 구조를 활용한 홈플러스의 사례처럼 자칫 투자자 피해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어 실제 실행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수천 명 임대인 동의 필요, 불가능 가까워
2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스타벅스 운영사 SCK컴퍼니는 5,000억원대에 이르는 임대보증금을 활용한 금융상품 개발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임대인에게 맡겨둔 부동산 보증금을 담보로 자금을 융통하는 상품으로, 전세보증금 담보대출과 유사한 개념이다. SCK컴퍼니의 임대보증금은 10년 전인 2015년 1,961억원 수준에 불과했지만, 매장 수가 꾸준히 증가함에 따라 지난해엔 4,792억원까지 늘었다.
이 같은 방안은 신세계그룹이 지난해부터 비핵심 자산을 매각하고 자산 유동화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제시됐다는 전언이다. 신세계그룹은 지난해 이마트 가양점과 성수점 등 알짜 점포를 매각한 것을 기점으로 이마트와 이마트에브리데이, 이마트24를 합병하는 등 자산 효율화에 한창이다. 최근에는 부동산 관련 계열사 신세계프라퍼티를 통해 스타필드하남을 유동화하는 것도 추진 중이다.
임대 보증금을 활용한 유동화의 전례로는 CJ CGV를 꼽을 수 있다. 지난 2018년 8월 CJ CGV는 JB자산운용과 임차보증금 이체 약정을 체결하고 임차보증금 1,986억원을 양도했다. 해당 보증금을 담보로 CJ CGV가 JB자산운용으로부터 대출은 받은 셈이다. 애초 양사는 2021년 8월을 만기로 정했으나, 합의를 통해 만기를 3년 연장했다. 그리고 지난해 8월 대출 잔액 전부를 상환했다.
그러나 이러한 모델이 스타벅스에 그대로 적용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보증금 유동화 구조는 개별 임대인과의 계약을 기초로 하기 때문에 이를 실현하기 위해선 매장별 임대인 전원의 동의가 필요한 탓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스타벅스는 CGV처럼 일·이백 개 수준의 매장이 아닌 만큼 임대인 모두의 동의를 받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며 “임대보증금 유동화 방안은 실행 단계까지 가지 못할 공산이 크다”고 짚었다. 실제 지난해 기준 국내 스타벅스 매장 수는 2,009곳으로 같은 기간 CGV(192곳)의 10배가 넘는다.

임대인들과 매출 누락 소송 등 갈등 격화
SCK컴퍼니와 스타벅스 매장 임대인들의 관계가 악화 일로에 있다는 점도 이 같은 비판적 시각에 힘을 보탰다. 법조계에 의하면 국내 스타벅스 점포 임대인 37명은 이달 초 SCK컴퍼니를 상대로 1인당 1,400만원씩의 수수료 지급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이들은 스타벅스가 지난해 10월부터 시행한 유료 구독 서비스 ‘버디 패스(Buddy Pass)’에 따른 할인액이나 카드사와 제휴해 진행하는 프로모션에 따른 무료 쿠폰은 임차료 산정의 기준이 되는 매장 매출액에 포함해야 하는데 이를 제외해 손해를 봤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가령 버디 패스에 가입해 30% 할인을 받는 소비자가 매장에서 커피와 음식 1만원어치를 구입한 경우, 매장 매출은 할인 전 금액인 1만원으로 계상해야 하지만 회사가 이를 7,000원으로 계상해 3,000원이 매출에서 누락된다는 지적이다. 원고 측은 “버디 패스 구독료나 제휴 카드사로부터 받는 제휴 수수료는 본사가 전부 가져가면서 매장 매출에서 누락시켜 임차료를 적게 내려 한다”고 꼬집었다.
이번 소송에 참여한 드라이브스루(DT) 매장 임대인 이 모씨는 “계약 당시 스타벅스는 ‘직원 할인 및 무료 쿠폰만 임대료 정산 대상에서 제외한다’고 명시했다”면서 “하지만 실제 운영 과정에서는 본사 수익으로만 귀속되고 임대 매장 매출에는 반영되지 않는 여러 프로모션이 시행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스타벅스 직원 외에 계열사 직원들까지도 복지 명목으로 할인 혜택을 받는 구조가 확산하는 등 여러 구조적 문제가 발생했다”고 덧붙였다.
전국 2,000여 개의 스타벅스 매장은 모두 본사가 직접 운영하는 곳들로, 각 매장 순매출의 최대 16%를 임차료로 지불한다. 매출이 적게 잡힐수록 스타벅스가 지급하는 임대료 또한 낮아지는 구조다. 그러나 지금처럼 매장 매출자료의 정확성과 정산의 투명성, 임대료 산정의 공정성 등이 한꺼번에 의심받는 상황에서는 대규모 보증금 유동화라는 ‘민감한 거래’가 받아들여질 가능성은 매우 낮다는 게 업계의 일관된 시각이다.
홈플러스 실패 사례도 재조명
유통업계에서 유사한 시도로 이미 시장의 경계심을 자극했다는 점도 SCK컴퍼니의 청사진에 먹구름을 드리운다. 대표적인 사례가 홈플러스다. 홈플러스는 2019년 보유 매장의 임대보증금을 유동화해 자금을 조달한 뒤 이를 대규모 투자금 회수와 배당 재원으로 활용했다. 그러나 이후 실적 악화와 유동성 위기로 원금 회수마저 하지 못했다. 홈플러스는 지난 3월 법정관리를 신청했으며, 이에 따라 유동화 상품 투자자들의 피해 또한 복구가 요원한 상황이다.
이처럼 임대보증금 유동화 상품은 매장 운영의 안정성과 연결된 만큼 스타벅스처럼 수천 개의 계약에 기반한 구조에서는 투자 리스크가 더욱 증폭된다. 단 한 건의 계약 불이행이나 조기 해지가 발생해도 상품 전체의 신뢰도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홈플러스의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듯, 매장 운영이나 임대 계약 어느 하나만 흔들려도 상품 구조 전체가 붕괴하는 구조다.
금융시장도 이에 대한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있다. 한 채권 운용사와 관계자는 “부동산 기반 유동화 상품에 대한 리스크 프리미엄이 갈수록 커지는 추세”라며 “유동화 대상이 되는 자산의 질은 물론 운영 주체의 재무건전성과 기업 신뢰도가 상품 평가에 결정적인 요소로 작용하는 양상”이라고 전했다. 가뜩이나 임대인들과의 신뢰 관계에 금이 가기 시작한 스타벅스와 자금 여력이 줄어든 신세계그룹이라는 변수가 투자자 관점에서는 절대 좌시할 수 없는 악조건으로 작용할 것이란 회의론적 시각이 주를 이루는 배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