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수정
반도체부터 자동차까지, 핵심 산업 위상 악화 中 추격에 더해 美 관세장벽에 수출마저 부진 내수 침체 장기화에 고급 인재 유출도 가속화

한국 경제를 떠받쳐온 8대 주력산업의 글로벌 시장점유율이 최근 10년 새 일제히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핵심 산업이 중국의 거센 추격에 밀리며 기술 경쟁력이 흔들리고 있는 데다, 미·중 무역갈등과 관세 전쟁의 여파로 수출 부진까지 가시화하고 있다. 내수 시장마저 침체가 장기화하면서 산업 전반에 경고등이 켜졌다. 설상가상으로 고급 인재의 해외 유출까지 심화하며 한국 산업의 미래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디스플레이 점유율, 10년 새 절반 가까이 하락
3일 옴디아, SNE리서치 등 국내외 시장조사기관에 따르면 반도체, 디스플레이, 스마트폰, 자동차, 석유화학, 철강, 조선, 배터리 등 한국 8대 주력 산업의 시장점유율이 10년 전보다 모두 뒷걸음질 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디스플레이 부문의 하락 폭이 두드러졌다. 스마트폰 등에 탑재되는 중소형 유기발광다이오드(OLED)의 경우, 2015년 삼성·LG디스플레이 합산 점유율 98.5%로 한국이 독점했지만, 이후 BOE, CSOT 등 중국 업체의 거센 추격에 올해 1분기 점유율은 60% 아래로 떨어졌다.
수출 1위 반도체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 2015년 81.5%였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D램 시장 점유율은 올해 1분기 75.9%로 하락했다. 반면 중국의 CXMT는 범용 D램을 넘어 고부가가치 메모리인 DDR5와 최신 고대역폭메모리(HBM3) 양산 채비를 마쳤다. 이미 기술적으로 한국을 추월했다는 조사도 나왔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이 지난 2월 실시한 전문가 설문조사에 따르면 한국은 첨단 패키징을 제외한 인공지능(AI) 반도체, 전력 반도체, 차세대 고성능 센싱 기술 등에서 중국에 밀렸다.
수출 2위 자동차도 이미 중국의 사정권에 들었다는 평가다. 지난해 중국 1, 2위 완성차업체인 BYD(427만 대)와 지리그룹(334만 대)의 합산 판매량은 761만 대로 723만 대를 기록한 세계 3위 현대자동차그룹을 앞선다. 이차전지 역시 2020년 4분기 34.7%였던 점유율이 올해 1분기 18.7%로 하락하며 5년 만에 반토막이 났고, 배터리 3사 모두 적자를 기록했다. 이 외에 스마트폰(23.8%→20.0%), 석유화학(5.3%→3.6%·에틸렌 기준), 철강(4.3%→3.4%) 조선(30%→17%)도 같은 길을 걷고 있다.
철강·자동차 등 관세 부과 품목 대미 수출 감소
중국의 거센 추격 속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촉발한 미·중 관세 전쟁은 또 다른 악재가 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5월 수출입 통계'에 따르면 지난달 한국의 양대 수출 시장인 미국과 중국을 향한 수출이 나란히 8% 이상 급감했다. 특히 미 정부가 품목별 관세를 부과한 품목을 중심으로 수출 부진이 심화했다. 지난 3월 25%의 관세가 부과된 철강은 지난달 대미 수출액이 20.6% 줄었고, 4월과 5월 두 차례에 걸쳐 25%의 관세가 부과된 자동차와 자동차부품 수출액은 지난달 각각 32.0%, 8.3% 감소했다.
지난 4월부터 적용되는 10% 기본관세도 대미 수출에 부담으로 작용했다. 2대 수출 품목인 일반기계의 경우 지난달 수출액이 5.6% 감소했고, 가전제품도 25.4% 급감하며 부진이 이어졌다. 이차전지와 바이오헬스 부문이 각각 33.6%와 9.1% 늘었지만, 전체 대미 수출 감소세를 막아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대미 수출의 버팀목 역할을 해왔던 반도체 또한 힘을 쓰지 못하는 상황이다. 산업부에 따르면 올해 1~4월 대미 반도체 수출액은 31억7,000만 달러(약 4조3,700억원)로 전년 동기 대비 14.6% 늘어났는데, 지난달에는 수출액이 17.6% 감소했다.
무역전쟁 심화에 따라 최대 수출 실적을 올리는 중국 시장까지 부진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한국의 대중 수출액은 1월 -13.9%, 2월 -1.4%, 3월 -4.4%로 줄어들다가 4월 3.9%로 깜짝 반등했다. 하지만 5월 대중 수출액은 또다시 8.4% 급감했다. 특히 반도체, 석유화학 등 중간재를 중심으로 한국의 대중국 수출 감소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 대중국 수출액의 약 30%를 차지하는 반도체 수출액은 전년 대비 14.6% 줄어들었고, 석유화학도 11.4% 감소했다. 여기에 중국의 부동산 경기 침체가 장기화하면서 지난달 일반기계의 수출액도 13.6% 쪼그라들었다.

美로 빠져나간 고급 인력 5,684명, 인구 10만 명당 11명
설상가상으로 내수 경기도 침체가 장기화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1~4월 평균 소매판매액 불변지수는 전년 동기 대비 0.2% 감소해 3년 연속 감소세를 이어갔다. 이 같은 소비 위축은 자영업자의 붕괴로 이어지고 있다. 올해 1분기 서울 지역 개업 점포는 8,772개로 통계가 집계된 2019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개업이 감소하는 데 반해 폐업률은 개선되지 않으면서 개업 대비 폐업 비중이 급증했다. 2023년 1분기에는 개업 점포(1만6,827개)와 폐업 점포(1만5,316개) 수가 비슷했지만, 올해 1분기에는 폐업 점포가 개업의 1.7배에 달했다.
창업이 급속도로 쪼그라든 이유는 자영업의 수익성이 악화했기 때문이다. 소상공인연합회가 지난 4월 전국 소상공인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올해 월평균 영업이익은 208만8,000원으로 집계됐다. 주 40시간 기준 최저임금 월 환산액(209만6,270원)에도 못 미친다. 기업 생존율도 하락세다. 서울시 생활밀접업종 신생 업체 1년 생존율은 2023년 81.6%에서 2024년 80.9%, 올해는 78.2%로 떨어졌다. 5곳 중 1곳은 1년 안에 문을 닫는 셈이다. 소상공인연합회는 “기존 점포들은 버티기에 들어갔고 신규 진입은 급감한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내수와 수출이 동반 부진한 가운데, 한국의 미래 성장동력을 책임질 핵심 인재가 해외로 빠져나가는 ‘두뇌 유출’ 현상도 심화되고 있다. 미 국무부에 따르면 지난해 고숙련·고학력 인재에게 발급하는 EB-1·2 취업비자를 받은 한국인은 5,684명으로, 인구 10만 명당으로 환산하면 10.98명으로 세계 1위를 기록했다. 인도(1.44명), 중국(0.94명) 등 인구 대국과 비교해도 10배가 넘는 수치다. 더욱이 EB-1·2 비자는 가족에게도 영주권을 주기 때문에 4인 가족을 가정하면 최소 1,400~1,500여 명의 최고급 두뇌가 미국으로 빠져나간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