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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SSI 파운드리 인력 확보 나서 "TSMC에 밀렸다" 삼성 파운드리 시장 입지 축소 관료주의에 몸살 앓는 삼성전자, 인재 역량 발휘 어려워

삼성전자가 미국 반도체 법인(SSI)의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영업 인력 확보에 힘을 싣고 있다.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부의 시장 경쟁력이 눈에 띄게 약화한 가운데, 유능한 인재를 확보해 위기를 타파하겠다는 구상으로 풀이된다.
삼성전자 '파격 채용' 착수
25일 삼성전자에 따르면, 현재 SSI는 채용 홈페이지를 통해 파운드리 경력직을 뽑고 있다. 모집 중인 파운드리 직무 3개 중 2개(파운드리 영업 및 사업 개발 디렉터·매니저)는 영업 관련이며, 나머지 한 개 직무는 엔지니어링 전문성을 갖추고 고객사 제품의 품질 관리를 책임질 수 있는 시니어 매니저(차장급)다.
삼성전자는 디렉터직의 기본 연봉으로 최대 31만9,800달러(약 4억3,530만원), 시니어 매니저직의 기본 연봉으로 최대 28만9,050달러(약 3억9,340만원)를 제시했다. 신규 고객 유치 등 성과에 연동해 받게 될 보너스를 감안하면 이들의 연봉은 약 40만 달러(약 5억5,000만원)까지 올라갈 것으로 추산된다. 이는 SSI가 위치한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높은 소득세율(최대 50.3%)을 감안해도 한국 본사의 같은 직급 대비 높은 수준이다.
SSI가 파격적인 연봉을 내세워 인재 확보에 나선 것은 파운드리 영업 조직을 강화하기 위함이다.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 파운드리 신공장 가동(2026년 말~2027년 상반기 예정)을 앞두고 대형 미국 팹리스(반도체 설계 전문 기업) 공략을 목표로 '밑 작업'에 착수한 것이다. 지난 3월에는 대만 TSMC 출신 마가렛 한이 SSI 파운드리 총괄 부사장으로 영입되기도 했다.
먹구름 낀 삼성 파운드리
삼성전자가 신규 고객사 유치에 사활을 거는 배경에는 파운드리 사업부의 위기가 있다. 삼성전자 파운드리는 5나노미터(nm) 이하 첨단 공정 경쟁이 본격화한 이후 기술력 확보에 실패, '만년 2등' 기업으로 전락했다. 시장조사기관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올 1분기 전 세계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은 7.7%에 그친다. SMIC(6.0%), UMC(4.7%) 등 후발 주자인 중화권 파운드리 업체에 바짝 쫓기는 신세가 된 것이다. 같은 기간 업계 1위 TSMC의 점유율은 67.1%에서 67.6%로 증가했다.
지난달 시장에 적잖은 충격을 안긴 '구글 사태'를 살펴보면 현재 삼성전자 파운드리가 처한 상황을 한층 명확히 확인할 수 있다. 삼성전자와 구글은 오랜 기간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분야에서 협력 관계를 구축해 왔다. 구글은 삼성전자와 수년간 시스템온칩(SoC) 프로젝트 '화이트채플'을 진행, 삼성전자 AP '엑시노스'를 모티브로 한 자체 AP '텐서'를 개발했다. 이를 계기로 삼성전자는 구글 스마트폰 픽셀 시리즈에 탑재되는 AP 양산을 맡게 됐다.
문제는 파운드리 시장 내 3나노 공정 경쟁이 시작되면서 삼성전자가 기술적 한계에 부딪혔다는 점이다. 삼성전자는 수율(완성품 중 양품 비율) 악화, 반도체 설계 자산(IP) 부족 등 각종 악재에 짓눌렸고, 결국 구글의 요구를 충족할 수 없는 상황에 처했다. 이에 구글은 올해 하반기 출시 예정인 픽셀10의 AP 양산을 삼성전자가 아닌 TSMC에 위탁했다. 이와 관련해 한 시장 관계자는 "구글을 놓친 건 삼성 파운드리의 복합적인 문제를 단번에 보여준 케이스"라며 "현재 삼성전자 내부적으로도 많은 대화와 고민이 오가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의 고질적 병폐
다만 단순 인재 확보만으로 파운드리 사업부가 직면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삼성전자 특유의 경직된 기업 문화 탓에 인재 이탈이 가속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IT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은 창의성을 발휘하기 힘든 조직 문화, 경영진과의 소통 부재 등 고질적인 문제를 떠안고 있다”며 “관료주의가 좀처럼 타파되지 않아 인재들이 제대로 창의성을 발휘하기가 힘든 환경”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능력 있는 정예 엔지니어들이 역량을 다 드러내지 못하고 회사를 등졌다는 이야기가 심심찮게 들린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문화는 삼성전자의 실제 실적에도 막대한 악영향을 미쳤다. 게이트올어라운드(GAA) 3나노 2세대 공정의 실패가 대표적인 예다. 한 반도체 업계 종사자는 "삼성전자의 GAA 3나노 2세대 공정은 도입 당시 아직 완벽하게 완성되지 않은 상태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며 "성과를 중시하는 경영진이 신기술 도입을 무리하게 강행하며 수율(양품 비율) 확보에 실패한 것"이라고 말했다.
메모리 사업부에서도 유사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일례로 10나노 4세대(1a) DDR5 D램의 경우, 설계에 문제가 있다는 R&D 조직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2023년 양산이 강행됐다. 그 결과 해당 제품은 고객사인 인텔로부터 부적격 판정을 받으며 공급이 미뤄졌고, 이는 경쟁사 SK하이닉스에 메모리 시장 점유율을 내주는 뼈아픈 결과로 이어졌다. 1a D램에서 나타난 설계 문제는 1a 공정에 기반을 두고 한 세대 진화한 10나노 5세대(1b) D램에서도 그대로 나타났고, 결과적으로 해당 D램을 기반으로 한 고대역폭메모리(HBM) 사업 역시 날개를 펴지 못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