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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시장 삼킨 중국 배터리, 한국 10년 텃밭 무너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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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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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의 사회적 책임을 자각하며 공정하고 균형 있는 시각을 최우선으로 합니다. 꾸준한 추적과 철저한 리서치를 바탕으로 사실만을 전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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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첨단설비 갖춰 내년부터 가동
전기차 年 150만대분 배터리 생산
中공세에 쪼그라든 K배터리 점유율

전기차 시장이 본격적으로 열린 2010년대 중반부터 지난해까지 한국의 텃밭이었던 유럽 배터리 시장이 하나둘 중국 손에 넘어가고 있다. 막대한 정부 보조금으로 체력을 쌓은 중국 기업들이 중국에 이은 ‘넘버2’ 배터리 시장인 유럽 총공격에 나서면서다. 이런 상황에서 CATL, EVE, CALB, 고션 등의 투자가 끝나면 격차는 더 벌어진다. 지난해 37조원에서 2035년 259조원으로 7배 커질 전망인 ‘황금 시장’이 중국판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유럽으로 그라운드 옮긴 中 배터리

1일 배터리업계에 따르면 중국 ‘배터리 굴기’의 무대가 최근 유럽으로 옮아가고 있다. 중국에서 만든 배터리를 수출하는 전략에서 벗어나 유럽 현지 생산체제 구축을 본격화하면서다. 세계 1위 배터리 업체로 도약한 CATL이 대표적이다. 지난달 말 CATL은 헝가리 데브레첸에 73억 유로(약 11조6,500억원)을 투자해 생산 공장을 설립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공장은 2027년 완공 예정이며, 완공 시 유럽 최대 규모의 배터리 생산 기지가 될 전망이다.

헝가리 공장이 올 하반기 부분 가동을 시작으로 2028년 완전 가동에 들어가면 CATL의 유럽 시장 점유율은 비약적으로 높아진다. 카데리악 페테르 헝가리배터리산업협회장은 “CATL 헝가리 공장은 이미 수년 치 일감을 수주해 놨다”며 “BMW 스텔란티스 폭스바겐 등 유럽 자동차 메이커들이 CATL 배터리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CATL의 헝가리 진출이 단순한 생산 거점 확보를 넘어 유럽 배터리 시장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게임 체인저’로 평가되는 이유다.

실제 CATL 헝가리 데브레첸 배터리 공장의 위용은 압도적이다. CATL은 축구장 310개를 합쳐 놓은 이곳에 100GWh 규모 공장을 짓고 있다. 매년 전기자동차 120만~160만 대에 적용할 수 있는 물량으로 LG에너지솔루션, SK온, 삼성SDI 등 한국 배터리 3사의 국내 공장을 모두 합친 생산량(46GWh)의 두 배가 넘는다. CATL의 헝가리 공장 안에는 생산 효율을 극대화한 첨단 로봇 생산 시스템(CATL 4세대 인더스트리)이 들어간다. 규모의 경제와 제조 효율화를 통해 품질은 끌어올리고, 생산단가는 내려 유럽 자동차 메이커를 품겠다는 전략이다.

중국 푸젠성 닝더시에 위치한 CATL 사옥 전경/사진=CATL

뒷배는 중국·헝가리 정부

CATL이 수십조원을 투입해 유럽에 공장을 세울 수 있던 배경에는 중국 정부가 있다. 반중(反中) 정서와 환경오염 가능성 탓에 불거진 현지인의 반발을 무마해준 게 중국 정부였다. 한 CATL 납품업체 관계자는 “데브레첸에서도 환경오염 등으로 지역사회 배터리 공장 건립 반대 여론이 컸다”며 “막대한 정부 보조금을 받은 CATL이 데브레첸에 각종 방식으로 돈을 뿌리고 중국 정부 고위 관계자들이 헝가리 정부 인사를 만나 꼬인 실타래를 풀어준 덕에 공장을 건설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또한 중국은 지난해 헝가리 정부에 10억 유로(약 1조6,000억원) 차관을 비밀리에 줬다. 현지 언론이 이를 보도했을 때 헝가리 정부는 부인했지만 증거가 나오자 결국 시인했다. 전기차 캐즘(Chasm·일시적 수요 정체)으로 고전하던 CATL에 조 단위 투자금을 마련해 준 것도 중국 정부다. 미국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등에 따르면 중국은 연간 40조~60조원의 보조금을 전기차 및 배터리 분야에 투입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각종 투자·생산 보조금에 더해 저리 대출도 해준다. 연구개발(R&D)에 쓴 돈은 175%를 세액 공제시 계상해 준다. CATL은 이런 식으로 작년에만 2조~3조원가량을 보조금으로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헝가리 정부도 CATL 공장 건립에 보조금을 지원했다. 헝가리 정부는 이번 CATL의 데브레첸 공장 건설에 세제 혜택과 직접 지원금 형태로 8억 유로(약 1조2,800억원)의 지원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는 전체 투자금의 약 11%에 해당하는 규모다. 현재 헝가리는 최근 몇 년 동안 유럽에서 중국 투자를 가장 많이 유치한 국가로 부상했다. 독일 메르카토르 중국연구소(MERICS)와 로디움 그룹의 공동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유럽으로 향한 중국 해외직접투자의 30% 이상인 31억 유로(약 5조원)가 헝가리에 집중됐다.

LG·SK·삼성 vs. CATL ‘배터리 치킨게임’

다만 장기간 이어진 호황에 무리한 생산 증설에 나선 전기차 제조사들이 공급 과잉을 주도하기 시작하면서 가격 인하 경쟁이 벌어진 탓에 배터리 기업들 역시 타격을 피하기 어려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실제 CATL과 BYD도 자국 내 과잉 공급과 가격 폭락이라는 양날의 검에 직면해 있다. 중국 전기차 생태계는 이미 포화 상태로 '1위도 버거운' 치킨게임의 파고가 유럽 시장으로까지 확산되고 있는 형국이다.

한국 기업들 사정은 더 나쁘다. 2020년까지만 해도 유럽은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이 주도해 왔다. 하지만 3년여 만에 상황이 급변했다. 가격 경쟁력이 높은 LFP(리튬인산철) 배터리를 앞세운 CATL 등 중국 업체들이 빠르게 점유율을 높이면서다. 2023년 한국 배터리 3사는 유럽 시장의 60.4%를 차지했지만, 올 1분기에는 점유율이 37.2%로 추락해 CATL(43%) 한 곳에도 밀렸다. 유럽 전기차 메이커 관계자는 “CATL이 현지 생산능력 확대에 발맞춰 유럽 전기차 회사를 상대로 공격적인 영업을 펼치고 있다”며 “한국 배터리 3사와의 계약 기간이 종료되면서 CATL로 갈아탄 업체가 속속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BMW, 메르세데스-벤츠, 스텔란티스 등 유럽 완성차 업체들은 보급형 전기차 확대를 위해 LFP 배터리 채택을 확대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흐름이 중국 업체들의 점유율 확대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업계에서 치킨게임 우려가 커지는 것도 이런 까닭이다. 한국무역협회가 지난해 8월 발표한 ‘중국 공급과잉에 대한 주요국 대응’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중국의 배터리 생산량은 1.07테라와트시(TWh)로 이미 전 세계 수요(0.95TWh)를 넘어섰다. 이는 전년 대비 초과분이 더 늘어난 수치다.

이에 전문가들은 CATL이 유럽 내 생산 능력을 늘려가며 가격 인하를 동반한 저가 공세에 나설 가능성을 경고한다. 경쟁사를 압박하고 점유율을 높이기 위한 치킨게임 양상이 펼쳐질 수 있다는 뜻이다. 문학훈 오산대 미래전기자동차과 교수는 “현재 전기차 생산량 대비 배터리 공급이 과잉 상태”라며 “CATL 입장에서는 치킨게임을 통해 경쟁사를 압박하는 전략이 유효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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