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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임집행부 임금 인상률 '이면 합의' 드러나 조합원 신뢰 붕괴와 내홍 속에 비대위 출범 성과급의 실질적 개선 도출 못해 실망 쌓여

삼성전자 최대 노조인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전삼노)의 조합원 수가 1년 만에 3만 명 아래로 떨어졌다. 지난해 성과급 ‘0원’ 논란과 총파업을 기점으로 급증했던 조합원 수는, 최근 불거진 노조 집행부의 이면합의 논란을 계기로 빠르게 빠져나가고 있다. 이에 전삼노는 신뢰 회복을 위해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조직 재정비를 위한 새 임원 선출에 속도를 내고 있다.
4개월 만에 6,000명 이탈하며 조합원 급감
3일 업계에 따르면 이날 10시 기준 전삼노의 조합원 수는 2만9,944명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총파업을 기점으로 3만 명을 돌파한 지 1년 만에 조합원 수 3만 명이 무너졌다. 전삼노는 지난해 7월 임금 인상률 상향, 유급휴가 약속 이행, 초과이익성과급(OPI) 기준 개선 등을 요구하며 1967년 창사 이래 처음으로 총파업에 나섰다. 이후 조합원 수가 빠르게 늘어 올해 3월에는 3만6,000명을 넘기기도 했다. 그러나 집행부의 이면 합의 논란으로 내홍을 겪으며 4개월 만에 6,000명 이상이 이탈했다.
올해 3월, 삼성전자와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전삼노)은 임금·단체협약(임단협)을 통해 평균 임금 인상률 5.1%(기본인상률 3.0%, 성과인상률 2.1%)에 합의했다. 그러나 이후 상임집행부가 사측과 별도로 협의해 자신들에게만 더 높은 성과인상률을 적용받은 사실이 드러났다. 공식적으로는 전 조합원에게 동일한 인상률이 적용된다고 밝혔지만, 실제로는 상임집행부만 추가 혜택을 챙긴 것이다. 조합원들 사이에서 이 같은 임금 인상 차이가 공유되며 의혹이 제기됐고, 언론 보도와 내부 고발을 통해 사실로 확인됐다.
논란 속에 집행부는 임기 9개월가량을 남기고 전원 사임했고, 전삼노는 비대위 체제로 전환한 상태다. 다만 전삼노는 삼성전자 전체 직원(약 12만5,000명) 23%를 차지하는 최대 노조로 대표 교섭 지위를 계속 이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노조 내부에서는 올해 하반기 예정된 내년 임금 교섭에서 동력을 잃을 수 있어 체제 정비가 시급하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이에 따라 노조는 공백인 집행부 자리를 채우는 등 내부 안정화 작업에 서두를 것으로 예상된다. 당초 9월 예정이었던 4기 신임 임원 선거도 이르면 7~8월 중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사측이 집행부의 이기적 행태 방조해 자멸"
일각에서는 이번 사태가 단순한 내부 갈등이 아니라, 사측의 전략적 개입이 작용한 결과라는 해석도 나온다. 전영현 DS부문 인사총괄 부회장을 중심으로 한 경영진이 집행부와의 이면 합의를 묵인하거나 유도해 내부 신뢰를 의도적으로 흔들었고, 이를 통해 노조의 자정 능력을 약화시켰다는 지적이다. 조합원들 사이에서는 “회사가 집행부의 이기적인 행태를 방조해, 노조가 스스로 붕괴되도록 유도했다”는 냉소적인 평가도 나온다.
실제로 지난해 5월 전 부회장 취임 당시, 노조 내부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그가 삼성SDI 대표 재직하던 2018년, 노조 설립을 시도하던 노동자를 조직적으로 방해하고 탄압해 결국 설립을 무산시킨 전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전삼노는 당시 성명에서 사측과의 소통 단절, 노조에 대한 경계심, 그리고 DS부문 내 조합원 비중이 높다는 점 등을 들어 전 부회장 체제 아래에서 노사 관계가 더욱 경색될 수 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삼성전자가 과거 ‘노조 파괴’ 전략을 펼친 전력이 있다는 점도 이러한 해석에 힘을 싣는다. 삼성그룹은 2013년 이른바 ‘노조와해 문건’ 파문을 시작으로 2018년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업체 노조 와해 공작 등으로 여러 차례 사회적 논란을 빚은 바 있다. 당시 사측이 ‘그린화 전략’ 등 노조 무력화 방안을 체계적으로 실행해왔다는 정황이 검찰 수사와 재판을 통해 드러났으며, 이는 삼성전자 내 노조 설립과 활동을 사실상 봉쇄해온 배경이 됐다.

파운드리 사업 부진 속에 노조 힘쓰기 어려워
전삼노의 조합원 수가 급감한 배경에는 실리적 기대가 무너진 것도 주요하게 작용했다. 지난해 초 반도체(DS) 부문에서 성과급이 전혀 지급되지 않은 ‘성과급 0원’ 사태가 터지자, 직원들의 불만이 폭발하면서 집단 대응에 대한 공감대가 빠르게 확산됐다. 그 결과 2023년 말 1만 명 수준이던 전삼노의 조합원 수는 2개월 만에 1만8,000명이 추가 가입해 2만8,000명에 이르렀다. 이 시기 사내 게시판에서는 '노가완(노조 가입 완료)' 인증 릴레이가 이어질 정도로 가입 열기가 뜨거웠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노조에 가입한다고 성과급이 되살아나는 것은 아니다'라는 회의론이 확산됐다. 2025년 임단협에서는 상임집행부의 이면 합의도 큰 충격을 줬지만, 평균 5.1% 임금 인상을 제외하면 성과급 제도의 근본적인 개선이나 복원은 이루어지지 않은 점도 조합원들의 실망감을 샀다. 성과급 회복을 기대했던 직원들 사이에서 실질적인 보상과 동기 부여가 사라진 데다, 집행부에 대한 조합원의 신뢰가 무너지기 시작하면서 결국 대규모 탈퇴로 이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 같은 흐름에는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 특히 파운드리 부문의 부진도 큰 영향을 미쳤다. 주요 고객사인 엔비디아 납품이 지연되고, 경쟁사인 SK하이닉스에 고전하면서 조합원들 사이에 “회사가 돈을 못 버는 상황에서 노조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이냐”는 자조 섞인 반응이 퍼졌다. 실제로 2025년 1분기 삼성전자의 전체 매출은 79조1,400억 원으로 분기 기준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지만, DS(반도체) 부문은 HBM(고대역폭메모리) 판매 감소 등의 영향으로 전분기 대비 17%나 매출이 줄어드는 등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