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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건부 전세대출 막히며 월세 급증
전월세전환율 6.0%→6.2% 상향 조정
갭투자 봉쇄에 전세제도 존속 불투명

정부의 ‘6·27 부동산 대책’에 따라 이달부터 전세대출 규제가 본격화하며 서울 주요 단지에서 전세 매물이 급감하고 반전세가 빠르게 확산하는 모습이다. 정부는 갭투자 차단을 목표로 고액 전세에 대한 보증 비율을 낮추는 동시에 전월세전환율 상향과 대출 심사 강화 등 다층적 규제를 가하고 있으며, 그 결과 집주인들은 반전세나 월세 중심으로 매물을 전환하고 있다. 이 같은 흐름은 단기적인 시장 반응이 아닌 구조적 전환의 신호로, 전세제도 자체의 존속 가능성에 대한 논의로 이어질 전망이다.
서초 메이플자이 월세 비중 절반 육박
14일 부동산 데이터분석 업체 아실에 따르면 이달 8일 기준 서울 아파트 전세 물량은 2만 4,819건으로 집계됐다. 이는 새 정부의 첫 부동산 대책이 발표된 지난달 27일(2만4,897건)보다 78건(0.4%) 줄어든 수치다. 반면 이 기간 월세 물량은 1만8,796건에서 1만9,207건으로 411건(2.1%) 증가했다. 소유권 이전 조건부 전세대출이 막히면서 전세 보증금을 마련하지 못하는 세입자가 많아지자, 집주인들이 월세 전환을 서두른 결과다.
전세 매물이 빠르게 사라지면서 고액 보증금과 월세가 혼합된 반전세 물건도 급증하는 추세다. 지난달 입주를 시작한 서울 서초구 ‘메이플자이’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현재 해당 단지에서 월세로 나온 물량은 1,581가구로 전체 3,307가구의 47.8%에 달한다. 전용면적 84㎡ 주택형의 평균 임대료는 보증금 1억원에 월세 480만~600만원 수준이다. 인근 공인중개업소 대표는 “조건부 전세대출이 막히면서 세입자 전세금으로 잔금을 치를 수 없어졌고, 보증금을 최대한 낮추고 월세를 받아 대출 이자를 감당하려는 소유주가 많아졌다”고 설명했다.
짧은 기간 반전세 매물이 급증하면서 월세 물건의 보증금도 크게 뛰었다. 다방이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을 바탕으로 분석한 결과, 이달 9일 기준 서울 아파트 신규 임대차 거래의 평균 월세 보증금은 1억6,388만원으로 한 달 전(1억7,869만원)보다 1,481만원(9.0%) 늘었다. 이를 실수요자 입장에서 해석하면, 임차 물건의 선택지는 줄어든 반면 부담은 커졌다고 볼 수 있다.
전문가들은 보증금과 함께 월세 가격 또한 급등할 것이란 전망을 내놨다. 대출 규제 강화에 따라 임차인이 신축 아파트에서 거주하기 위해선 전액 현금 또는 일부 보증금을 월세로 돌리는 방법밖에 없어지면서 월세가격의 상방 압력이 심화할 것이랑 분석이다. 김인만 김인만부동산경제연구소장은 “전세대출 한도가 막히고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까지 적용되면, 집주인 입장에서는 보증금 1억~2억원을 더 올리기 힘들다”면서 “결국 20만~30만원이라도 월세를 달라고 하는 집이 늘어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각도 규제에 시장 유동성↓
전세대출 보증 축소와 함께 시장의 관심이 집중되는 또 하나의 지표는 ‘전월세전환율’이다. 전월세전환율은 전세보증금 대비 월세 수준을 산정하는 지표로, 이를 상향 조정하면 동일한 월세에 대한 환산보증금 액수가 줄어드는 효과가 있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는 오는 21일 신청분부터 전세보증(보증금 반환·안심대출) 가입 시 적용하는 전월세전환율을 기존 6.0%에서 6.2%로 상향키로 했다. 주택금융공사(HF) 역시 5.8%에서 6.2%로 높인다.
이는 일견 대출보증 심사에서 유리한 조건처럼 보일 수 있다. 예컨대, 전세보증금 2억원에 월세 250만원인 임대 매물은 기존 전월세전환율 6.0%를 적용했을 때 환산보증금이 7억원(250만원x12/6.0%+2억원)이지만, 오는 21일부터는 6억8,387만원(250만원x12/6.2%+2억원)으로 줄어든다. 이에 따라 같은 월세 조건에서도 고액 반전세로 간주돼 대출 보증이 거절되는 사례가 줄어들 수 있다.
그러나 정부가 내놓은 부동산 대책에는 수도권 및 규제 지역의 전세대출 보증 비율을 90%에서 80%로 낮추는 조치가 포함되면서 대출 문턱을 도리어 높이는 효과가 예상된다. 보증비율이 감소하면, 은행은 이를 위험이 커졌다고 간주해 대출 심사를 강화한다. 임차인으로선 전세 자금 마련에 더 큰 어려움을 겪게 된다는 의미다. 여기에 유주택자의 전세퇴거자금대출 한도를 1억원으로 낮추고, 2주택 이상인 경우에는 전세퇴거자금대출이 아예 불가능해지면서 시장의 유동성은 크게 위축될 전망이다.

전세보증금 활용 불가→수익형 전환 불가피
이런 가운데 정부는 부동산 정책의 초점을 명확히 ‘갭투자 차단’에 맞추면서 시장 안정화에 총력을 기울이겠다는 입장이다. 갭투자는 전세보증금을 활용해 적은 자본으로 주택을 매입하고 시세 차익을 노리는 방식으로, 그동안 다주택자나 투자자들에게 주요한 수익 모델로 작동해 왔다. 그러나 정부는 이를 부동산 시장 불안의 주요 원인으로 보고, 전세대출 보증 축소와 보증 한도 하향 등 다층적 규제를 동원해 전세 기반의 투자 구조를 원천적으로 봉쇄하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있다.
정부가 갭투자 방지에 방점을 찍으면서 시장에서는 월세 중심의 구조 전환에 속도가 붙을 것이란 관측이 주를 이룬다. 실거주 목적 외에는 자금 조달이 어려워지면서 전세를 활용한 자산 증식 전략이 봉쇄되고, 세입자들은 어쩔 수 없이 월세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을 것이란 지적이다. 실제 서울 아파트 월세 매물 비중은 7월 첫째 주 기준 43.3%로 연초 38.7%과 비교해 반년 만에 4.5%p나 뛰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시장 변화가 계절 등 요인에 따른 단기적 현상이 아닌 ‘구조적 전환 초기 국면’이라고 진단했다. 자산 형성이 어려운 청년층 또는 저소득층 세입자일수록 대출 규제에 좌우되기 쉽고, 결국 이들이 부담이 큰 월세 시장에 유입되는 흐름은 더욱 강화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한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공급 부족에 강한 대출 규제까지 맞물리면서 전세 시장이 급격히 위축되고 있다”고 짚으며 “전세 시장이 당장 사라지진 않겠지만, 장기적으로는 반전세‧월세 혼합 구조가 주류로 자리 잡을 공산이 크다”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