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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만 방어 체제 '조건부 개입' 강조 콜비 차관 "美 국력을 中 견제에 집중해야" 대만, 中 침공 대응해 하이마스 로켓 동원

'양안(兩岸) 관계'를 둘러싼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는 가운데, 미 국방부가 대만과 중국 간 무력 충돌 가능성에 대비해 일본·호주 등 주요 동맹국에 구체적인 역할 분담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작 미국은 대만 방어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으면서 동맹국에만 방위 책임을 전가한다는 비판 속에 각국은 방위비 증액, 무역 협상 등 대미 현안과 맞물려 신중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美 콜비 차관, 동맹국의 집단 방어 체제 강조
13일(현지 시각) 파이낸셜타임스(FT)는 엘브리지 콜비 미 국방부 정책 차관이 최근 일본·호주 국방 관계자와의 회담에서 대만 유사시 양국이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 분명히 해줄 것을 요구했다고 보도했다. FT는 복수의 관계자를 인용해 “일본과 호주 측은 미국이 대만 방어를 약속하지 않은 상황에서 이러한 요구가 나올 줄은 몰랐다며 놀라워했다”고 전했다. FT의 보도 이후 호주 정부는 “어떤 분쟁에도 사전에 군 투입을 약속하지 않는다”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고, 일본 정부는 "헌법과 국제법, 국내 법규에 따라 대응할 것"이라는 원론적인 입장만 내놨다.
콜비 차관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집권 1기 당시 전략·전력 개발 담당 국방부 부차관보를 지낸 인사로, 미국의 대외정책과 국력을 중국과의 대결에 집중해야 한다는 '대중국 우선론자'로 알려졌다. 그는 전날 소셜미디어 엑스(X)에 "우리는 '미국 우선주의'의 기치 아래 억지력을 회복하고 '강한 힘을 통한 평화'를 실현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며 “이는 동맹국에 방위비 지출과 집단 방어 관련한 노력을 강화하도록 촉구하는 것을 포함한다”고 적었다. 이 같은 콜비 차관의 주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 공약으로 내건 ‘대만 유사시 조건부 개입’ 방침과 맥을 같이 한다.
미국은 공식적으로 "하나의 중국" 원칙을 인정하지만, 동시에 대만의 자위권을 지지하며 중국의 무력 침공에 대응할 수 있다는 입장을 견지해 왔다. 이에 조 바이든 전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 모두 '대만관계법(Taiwan Relations Act)'을 근거로 대만에 대한 군사·외교적 지원을 확대해 왔으며, 미국은 사실상 대만의 최대 군사 지원국으로 자리잡았다. 중국은 미국을 비롯한 서방의 개입에 강하게 반발하며 대만해협에서 수차례 무력 시위와 군사훈련을 벌이며 도발했고, 이에 맞서 대만도 중국의 주권 주장을 거부하며 양안 간 갈등이 갈수록 격화되고 있다.
동맹국 방위비 증액 압박에 관세 협상 맞물려
이처럼 중국과 대만 간 긴장이 고조되는 가운데 전문가들은 미국이 스스로 대만 방어를 공언하지 않는 상황에서 동맹들에게만 명확한 입장 제시를 압박하는 것은 모순이라고 지적한다. 미국 싱크탱크 미국기업연구소(AEI)의 잭 쿠퍼 연구위원은 “트럼프 대통령 본인도 대만 방어를 약속하지 않았는데 미국이 다른 나라들에 명확한 조처를 요구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라고 비판했다. FT도 "미국이 그동안 동맹들에 방위비 증액을 요구해 왔으나, 대만 문제로 전쟁이 일어날 경우를 대비해 동맹국에 구체적 역할 분담을 언급하는 것은 새로운 요구"라고 짚었다.
특히 호주와 일본 모두 미국의 방위비 증액 압박에 직면해 있어 미국의 요구에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13일 전시 지도자 존 커틴 추모식에 참석한 앤서니 알바니즈 호주 총리는 '호주 우선주의'라는 새로운 독트린을 주장하면서 "불확실성의 시대에 우리는 자신의 길을 따라 미래를 만들어가기 위해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는 자신감과 결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국방비를 국내총생산(GDP)의 3.5%로 인상해야 한다는 미국의 요구에 호주가 내놓은 직접적인 답변"이라고 분석했다.
일본 역시 방위비 증액 요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일본 정부는 올해 국방비를 GDP의 1.8% 규모로 편성해 2027년까지 GDP의 2%에 도달하겠다는 목표에 한 걸음 더 가까워졌다. 그러나 지난 4월 콜비 차관은 일본에 국방비를 GDP의 3%까지 인상할 것을 촉구했고, 이에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는 "일본의 방위비는 일본이 정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어 6월에는 미국 측이 기존 요구보다 0.5%포인트 상향한 GDP의 3.5% 수준을 일본 측에 요구하면서 7월 1일로 예정됐던 미일 외교·안보 고위급(2+2) 회담이 파행되는 등 갈등이 표면화됐다.
기본 관세 10%만 적용받는 호주와 달리 25%의 상호관세를 통보받은 일본은 무역 협상에서도 미국에 일방적으로 끌려가지 않겠다는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양국 간 무역 관계가 불공정하다며 일본에 미국산 자동차와 쌀 수입을 늘릴 것을 압박했다. 이에 이시바 총리는 "미국과 일본은 동맹국이지만, 할 말은 해야 한다"며 "일본은 미국에 대한 최대 투자국인데 무엇이 불공정하다는 것이냐"며 강하게 반발했다. 지난 7일 미국으로부터 관세 서한을 받은 직후에는 "미국과의 대화와 협상을 통해 문제 해결에 집중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대만, 中 무력 침공 가능성에 방어 체제 강화
대만과 미국과의 공조에도 균열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대선 기간 내내 대만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드러냈던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이후 "우리는 점차 반도체 산업을 잃었고, 대만이 우리에게서 훔쳐갔다"고 비판하면서 대만에 32%의 상호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한국과 일본에 부과한 25%에 비해 높은 수준이다. 여기에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의 군사적 위협에 대응한다는 명분 아래 대만이 GDP 대비 10% 정도를 방위비로 지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보호비 명목으로 미국산 무기를 더 많이 구매하라는 요구로 해석된다.
이러한 흐름 속에 대만은 중국의 무력 침공 가능성에 대비해 방어 체제를 강화하고 있다. 12일 로이터통신은 "대만 중부 타이충시 주변에서 고기동 로켓체계(HIMARS) 2대가 기동하는 모습이 목격됐다"며 타이충시 공원에 설치된 하이마스 발사차량과 로켓탄이 장전된 것으로 보이는 로켓포드 사진을 게재했다. 대만의 영자신문 타이완뉴스도 지난 9일부터 19일까지 열흘간 이어지는 제41차 한광훈련에서 하이마스가 처음 투입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한광훈련은 중국 침공에 대비해 대만군의 격퇴 능력과 방어 태세를 점검하는 최대 규모의 연례 군사훈련이다.
최대 사거리 300km에 달하는 하이마스는 대만해협 건너 푸젠성 해안을 직접 타격할 수 있어, 대만군이 자체 개발한 8륜형 다연장로켓 ‘레이팅(Thunderbolt)-2000’을 보완하는 전력으로 주목받는다. 레이팅-2000은 사거리별로 15km·30km·45km 탄종을 운용한다. 227mm Mk 45 로켓은 자탄 518발 또는 지름 8mm 강철 구슬 2만5,000개를 실은 집속탄으로 상륙 시도 병력에 대한 제압에 효과적인 무기다. 대만군은 레이팅-2000으로 해상 상륙 전력을 제압하고 하이마스로 중국군의 지상군 기지나 항만 시설을 정밀 타격한다는 작전 구상을 세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