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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중앙은행, 디지털 유로 도입 추진 금리·서비스 차별성 없어 실익 제한 기존 결제망 강화가 더 효율적 대안
본 기사는 The Economy 연구팀의 The Economy Research 기고를 번역한 기사입니다. 본 기고 시리즈는 글로벌 유수 연구 기관의 최근 연구 결과, 경제 분석, 정책 제안 등을 평범한 언어로 풀어내 일반 독자들에게 친근한 콘텐츠를 제공하는 데 목표를 두고 있습니다. 기고자의 해석과 논평이 추가된 만큼, 본 기사에 제시된 견해는 원문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2025년 7월 1일 기준, 유럽 내 가계가 보유한 요구불 예금의 평균 금리는 0.34%에 불과하다. 같은 기간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0%로, 실질 수익률은 마이너스 1.66%에 이른다. 실질 가치가 줄고 있음에도 유럽 가계의 총예금 규모는 10조 유로(약 1경5,000조원)에 달하며, 이는 유로넥스트(Euronext) 상장 기업 전체 시가총액을 훌쩍 넘는다.
실질 수익이 사실상 마이너스임에도 불구하고, 가계 자금이 대규모로 예금에 머물러 있는 상황에서 유럽중앙은행(European Central Bank, ECB)은 소매용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entral Bank Digital Currency, CBDC)인 디지털 유로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ECB는 이를 “투자가 아닌 결제 수단”으로 정의하지만, 실질적인 경쟁력에는 의문이 제기된다. 디지털 유로의 금리는 시중은행 예금 수준에 머무를 가능성이 높아, 이용자에게 뚜렷한 유인을 제공하긴 어렵다.
CBDC가 기존 예금과 같은 금리를 제공한다면, 은행 간 경쟁을 유도하거나 이용자 혜택을 높일 수 있다는 기존 이론은 현실과 거리가 있다. 은행들은 기준금리 인상기에도 예금금리를 제한적으로만 반영하며 순이자마진(Net Interest Margin, NIM)을 유지해 왔다. 디지털 유로 도입 이후에도 이 전략이 쉽게 바뀔 가능성은 작다.

사라지는 금리 격차
CBDC가 예금보다 높은 금리를 제시하면, 더 안전하고 유리한 저축 수단으로 주목받을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2023년 7월부터 2025년 7월까지 유럽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4%포인트 올렸지만, 예금금리는 0.45%포인트 오르는 데 그쳤다. 정책금리 인상분을 은행이 대부분 흡수한 셈이다. 수익성을 지키기 위해 예금금리 인상을 억제해 왔기 때문이다. CBDC가 상대적으로 높은 금리를 내걸더라도, 은행이 예금금리를 소폭만 올리면 격차는 쉽게 줄어든다. 수익률이 비슷해진다면, 소비자가 굳이 익숙한 예금을 떠날 이유는 없다.
서비스 측면에서도 두 수단의 차이는 미미하다. 모바일 앱, 실시간 알림, 자동이체, 예금자 보호 등은 이미 대부분의 시중은행에서 제공하는 기본 기능이다. 결국 금리도 비슷하고 기능도 유사하다면, CBDC는 기존 시스템을 대체하기보다는 복제하는 데 그칠 가능성이 크다. 오히려 별도의 인프라를 구축하고 운영하는 데 드는 비용까지 고려하면, 전체 효율성은 떨어질 수 있다.

주: 정책 금리(X축), 예금 스프레드(Y축)/CBDC 도입 이전(회색), 최적화된 CBDC 금리 도입 이후(파란색)
세 가지 시나리오, 결론은 하나
국제통화기금(IMF)은 2024년 보고서(Fintech Note 2024/007)에서 CBDC 활용 방식은 ▲지폐를 디지털 형태로 전환하는 ‘현금 대체’, ▲시중은행 예금과 경쟁하는 ‘예금 대체’, ▲중앙은행의 지급준비금 운용을 보완하는 ‘지급준비금 보완’으로 구분된다.
‘현금 대체’는 유통 비용을 줄이는 데 일부 기여할 수 있지만, 이미 시중은행 앱을 통해 대부분 구현 가능한 기능이다. ‘예금 대체’는 CBDC가 예금보다 더 나은 조건을 제시할 때만 이용자에게 의미가 있지만, 금리가 같아지면 실질적인 효과는 사라진다. ‘지급준비금 보완’은 금융기관을 대상으로 한 구조로, 일반 이용자와는 무관하다.
IMF 시뮬레이션을 보면, 예금 대체 시나리오에서 금리 차가 클 경우 GDP의 0.18% 수준의 이익이 발생하지만, 금리 차가 5bp 줄면 0.04%, 완전히 사라지면 0.01%로 떨어진다. 체감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결론은 분명하다. 금리 차가 사라지면, CBDC가 가져올 실질적인 변화도 함께 사라진다.

주: CBDC 금리(X축), 변숫값(Y축)/복지 변화(파란색), 예금의 GDP 대비 비율(주황색), CBDC의 GDP 대비 비율(노란색)
나이지리아가 던진 경고
2021년 10월 나이지리아가 출시한 CBDC ‘e나이라(eNaira)’는 이자를 제공하지 않는 구조였고, 2024년 3월 기준 통화 유통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0.36%에 그쳤다. 나이지리아 중앙은행의 조사에 따르면 확산이 저조했던 이유는 네 가지로 요약된다. 상점들이 이미 저렴한 즉시결제 시스템을 사용하고 있었고, CBDC 지갑은 절차가 복잡했으며, 오프라인 기능은 부족했고, 무엇보다 이자 유인이 없었다.
이 같은 제약은 선진국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유럽의 단일유로결제지역(SEPA), 미국의 페드나우(FedNow), 브라질의 픽스(Pix) 등은 모두 실시간 이체를 지원하고 있고, 예금자 보호와 다양한 사용자 편의 기능도 갖춰져 있다. 반면에 CBDC 지갑은 별도의 신원 인증(KYC) 절차를 요구하며 진입 장벽만 높일 수 있다.
결국 금리 측면에서 차별성이 없다면, CBDC는 실제 이용자에게 선택받기 어렵다는 현실을 나이지리아는 보여준다.
안정성 논란, 관건은 설계
CBDC가 대규모로 확산될 경우 예금 이탈이 급격히 일어나고, 금융시스템의 유동성이 불안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그러나 국제결제은행(Bank for International Settlements, BIS)의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CBDC가 전체 소매 예금의 20%를 넘기기 전까지는 유의미한 유동성 리스크가 발생하지 않는다.
유럽중앙은행은 개인당 CBDC 보유 한도를 3,000유로(약 440만원)로 설정할 때 예금의 약 9%만 이동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따라 유동성커버리지비율(Liquidity Coverage Ratio, LCR)은 20bp가량 낮아지지만, 이는 현행 규제 기준 내에서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다. 은행들도 실시간 정산 시간 조정, 전환 속도 제한 등 다양한 기술적 대응 수단을 갖추고 있어 시스템 전반의 불안정성은 설계에 따라 충분히 통제할 수 있다.
기능만으로는 차별화 어려워
CBDC 지지자들은 프로그래머블 결제, 오프라인 사용, 국경 간 송금 등을 차별화 요소로 제시하지만, 이미 상업은행과 핀테크 기업들이 이 기능들을 상당 부분 구현하고 있다. QR 기반 오프라인 결제, 조건부 자동 정산, 실시간 국제 송금은 민간 인프라에서도 가능하다.
또한 예금자 보호나 금융기관 청산 체계 등 공공 화폐의 안전성은 일정 금액 이하 예금자에게 이미 충분히 보장돼 있다. 게다가 핀테크 앱을 통해 자금을 주고받을 때, 사용자는 그 수단이 은행 예금인지, 스테이블코인인지, CBDC인지 구분하기 어렵다. 결제 수단 간 기술적 차이가 실제 사용자 경험에서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뜻이다.
CBDC가 제공할 수 있는 이점이 별도 인프라 구축과 운영 비용보다 작다면, 효율성 측면에서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정부가 민간 결제망을 제한하거나 강하게 규제하지 않는 이상, CBDC는 독자적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렵다.
투자 우선순위, 어디에 두어야 하나
CBDC 개발에는 막대한 예산과 규제 역량이 투입된다. 국제결제은행에 따르면, 소매용 CBDC 도입에는 최소 5년간 현재 결제 시스템 예산의 15%에 해당하는 추가 운영비가 필요하다. 이 중 절반만이라도 즉시 결제망 확장, 개방형 시스템 구축, 가맹점 수수료 인하 등에 활용할 경우, 소비자 편익은 CBDC 도입보다 두세 배 더 커질 수 있다. 결국 정책당국은 경쟁력이 떨어지는 새로운 결제망에 투자할지, 아니면 이미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기존 인프라를 강화할지 판단해야 한다.
실용이 필요한 시점
시장에서 예금의 실질 수익률이 마이너스로 돌아선 현실은 통화 시스템 개편의 필요성을 제기할 수 있다. 그러나 CBDC가 예금과 같은 금리를 제공하고, 상업은행이 동일한 기능을 빠르게 따라잡을 수 있다면, 새로운 공공 수단으로서의 차별성은 거의 사라진다.
이용자 행동은 쉽게 바뀌지 않고, 시스템 안정성은 전환 속도와 보유 한도 같은 설계 장치에 따라 유지되며, CBDC는 애초에 확산 규모가 제한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포용성 확대, 수수료 절감, 정책 전달력 개선이라는 목표를 고려할 때, 기존 인프라를 업그레이드하는 쪽이 더 빠르고 실용적인 해법일 수 있다.
중앙은행이 구조적으로 더 높은 금리를 지급할 가능성이 적은 상황에서, CBDC는 정책적 상징성에 비해 실질적 성과가 제한적인 수단이 될 가능성이 크다. 지금 필요한 것은 새로운 플랫폼이 아니라 실질적인 개선책이다.
본 연구 기사의 원문은 Parity’s Hollow Promise: Why Central‐Bank Digital Currencies Will Struggle to Outshine Ordinary Deposits | The Economy를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2차 저작물의 저작권은 The Economy Research를 운영 중인 The Gordon Institute of Artificial Intelligence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