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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국영 선사, 스페인 항만 지분 취득 EU 집행위 경고에도 중국 자본 침투 기존 글로벌 해운물류 구조 변화 가속

중국이 글로벌 공급망의 중심축으로 부상하고 있다. 중국이 글로벌 제조강국이 된 이후부터 시작된 중국 기업의 항만 인수·투자 확대가 유럽을 비롯한 전 세계 해운·물류 흐름에 작지 않은 변화를 만들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中 COSCO, 발렌시아항 지분 51% 확보
21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중국 국영 선사 코스코쉬핑(COSCO SHIPPING, 이하 코스코)은 최근 스페인 발렌시아항 터미널 지분 51%를 확보했다. WSJ는 허치슨(Hutchison)이나 블랙록(BlackRock) 등 글로벌 투자자 그룹에 세계 40여 곳 항만을 약 230억 달러(약 32조원)에 매각하는 논의를 이어가는 가운데, 코스코의 유럽 항만 투자 확대가 이뤄졌다고 짚었다.
또 주목할 만한 부분은 중국 해운 기업이 유럽 주요 항구에 지분을 투자하거나 직접 소유하는 데 대해 유럽 국가들이 거부감을 나타내고 있음에도 지분 인수에 성공했다는 점이다. 벨기에 등 유럽 국가들은 중국을 '잠재적인 적'으로 간주하고 중국 민간 해양 부문의 정치화와 군사와 증가를 경고해 왔다.
지금도 유럽 내 주요 해양 인프라에 대한 중국의 투자는 큰 논쟁거리다. 지난 2022년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가 국가 안보에 위험 요소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음에도 독일이 함부르크 최대 컨테이너 항구 터미널 지분 24.9%를 코스코에 넘기겠다고 승인한 게 도마에 올랐을 정도다. 거래를 옹호하는 쪽은 지분이 25% 미만일 때 의결권이 없다는 독일 회사법을 든다. 그러나 반대편은 이런 거래가 반복되면 중국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 게 점점 어려워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유럽 항구 점령한 중국
하지만 코스코는 이미 스페인과 독일은 물론 카나리아 제도의 라스팔마스 항만, 네덜란드 로테르담 항만 등의 일부 또는 지배 지분을 보유하며 글로벌 시장에서의 영향력을 넓히고 있다. 코스코의 해외 항만 투자 확대 전략은 하루아침에 이뤄진 것이 아니다. 그 시작은 2004년 벨기에 앤트워프 컨테이너 시설 지분 인수에서 비롯됐다. 이후 2008년 그리스 피레우스 항만 운영권을 넘겨받으면서 유럽 항로 거점 확보에 속도를 올렸다. 피레우스 항구는 코스코가 인수한 뒤 단기간에 세계적인 물류 허브로 거듭났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유럽 각지에서 중국 자본 영향력이 뚜렷해진 또 다른 계기는 2017년 스페인 발렌시아, 빌바오 항만 사업의 지분 51%를 약 2억 유로(약 3,230억원)에 인수한 것이다. 코스코는 이 항만을 ‘글로벌 터미널 포트폴리오 확장에 딱 들어맞는 전략적 자산’으로 평가했다. 현지 항만 운송 통계와 국제연합(UN) 해상연결지수(Shipping Connectivity Index)에 따르면, 2025년 1~3월 기준 발렌시아항은 지중해에서 가장 연결성이 높은 항만으로 꼽힌다. 2025년 1분기 지수는 610점으로, 2017년 코스코 투자 이후 빠르게 올랐다.
컨테이너 처리량에서도 변화가 있었다. 코스코가 지분을 가져간 2017년을 전후로, 발렌시아항을 통한 중국발 컨테이너 수입이 해마다 증가했다. 하지만 중국으로 나가는 컨테이너 수출 물량은 그대로거나 다소 줄었다. 스페인이 EU 기준 미국을 거치지 않고 중국 상품을 직접 들여올 수 있는 대표 입구 가운데 한 곳이 된 셈이다.
중국, 거점 다변화·신흥국 진출도 속도
중국의 항만 투자 확대는 중국 정부의 일대일로 이니셔티브(Belt and Road Initiative·BRI) 전략의 일환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 2013년 BRI라는 야심 찬 비전을 공개하면서 정복 대신 교역에 방점을 뒀다. 시 주석은 중국이 아시아와 유럽, 아프리카를 잇는 수천 마일의 고속도로와 철도 노선('벨트'), 해상 노선('도로')의 네트워크를 구축하겠다고 천명했다.
이 아이디어는 과거 실크로드를 복원하는 것으로, 궁극적인 전략 목표는 중국의 위치를 확고히 할 무역 네트워크를 확장하고 강화하는 것이다. 중국은 이를 통해 앞으로 수십 년간 지배적인 경제력과 정치력을 유지하겠다는 구상이다. 이후 중국 정부는 해외 항만·철도·물류 인프라 투자에 대대적으로 나섰다. 이 과정에서 유럽은 투자 비중이 가장 높은 지역으로 꼽힌다. 특히 스페인의 경우, 중국과의 해상 운송이 늘어 전기차 등 새로운 품목의 유럽 진출량도 빠르게 늘었다.
중국 해운·항만 기업의 해외 거점 확대는 유럽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 국영기업 차이나 머천츠(China Merchants)는 2013년 4억 유로(약 6,460억원)에 터미널링크(Terminal Link) 지분 49%를 인수했다. 이로써 유럽, 북아메리카, 남미, 아시아, 아프리카 129곳 이상의 항만에 중국 기업 자본이 들어가게 됐다.
해운업계에서는 주요 해상 컨테이너 운송의 절반 이상을 코스코, 머스크(Maersk), MSC, CMA CGM 등 10곳이 채운다고 설명한다. 코스코 등 중국계 기업은 이런 글로벌 해운 사업자와 나란히 거점 확보 경쟁을 벌이고 있다. 스페인 현지 발렌시아항 관계자는 “코스코 컨테이너선 입항이 늘어나면서 발렌시아항의 컨테이너 처리량이 2024년 547만TEU(1TEU는 20피트 컨테이너 한 개)까지 뛰었다”고 전했다. 같은 기간 그리스 피레우스항은 422만TEU로 집계됐다.
이와 관련해 월스트리트저널은 “유럽은 중국의 무역·외교 확대 전략에 있어 핵심 대륙이며, 중국 정부가 최근 항만 거점 투자에 속도를 올리고 있다”고 전했다. 전문가들도 “중국이 주요 항만 지분을 확보함에 따라 기존 해운물류 구조에도 점차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