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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입찰 D-day, 경영권 지분 63.38% 매각 대상 내달 초 우선협상대상자 확정, 연내 거래 종결 전망 매도-매수자 '눈높이' 간극, 본입찰 결과 주목

애경산업 매각전이 본입찰 단계에 들어서면서 태광산업 컨소시엄과 앵커에쿼티파트너스(앵커PE) 간 양강 구도로 압축됐다. 매각 대상은 AK홀딩스와 특수관계인이 보유한 지분이며, 매각가는 6,000억원 규모로 추산된다. 다만 태광산업은 석유·화학 부문의 부진 속에 자금 조달 리스크를 안고 있고, 앵커PE는 연이은 투자 실패와 핵심 인력 이탈로 관리 역량에 의문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이에 시장에서는 결과적으로 매도 측의 눈높이를 얼마나 맞추는 지가 이번 딜의 성패를 가를 것으로 보고 있다.
희망가 6,000억 상회, 애경 전체 시총보다 커
22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애경산업의 매각 자문사인 삼정KPMG는 이날 본입찰을 실시한다. 애경산업 매각자는 애경그룹 지주사인 AK홀딩스와 애경자산관리로, 애경홀딩스 보유분 39.08%와 특수관계인 지분을 포함한 총 63.38%가 매각 대상이다. 입찰 숏리스트(적격인수후보)는 △앵커PE △태광산업-티투프라이빗에쿼티(티투PE)-유안타인베스트먼트 컨소시엄 등이다. 앞서 지난달 진행된 예비입찰을 통해 폴캐피탈코리아를 포함해 3곳이 숏리스트에 올랐으나, 실질적으로는 태광산업과 앵커PE 간의 경쟁 구도로 좁혀졌다. 우선협상대상자는 늦어도 다음 달 초에 확정되며 거래는 연내 마무리될 전망이다.
애경산업의 매각 배경에는 지주사인 AK홀딩스의 재무 건전성 악화가 자리하고 있다. AK홀딩스의 실적 구조를 들여다보면 2020년 3조원을 밑돌았던 매출이 2023년 4조4,797억원까지 치솟으며 적자 진통에 시달렸던 영업손실도 마이너스에서 벗어나 흑자 구간에 진입했다. 하지만 지난해를 기점으로 매출은 제자리걸음에 영업이익도 50% 넘게 쪼그라들었고, 올해 1분기에도 이 기조가 이어지면서 매출은 두 자릿수 감소한 데 이어 1년 만에 다시 적자의 늪에 빠졌다.
재무구조 개선도 시급한 상황이다. 재무 건전성을 진단하는 대표적 지표인 부채비율은 2020년 228.8%에서 지난해 328.7%로 불어난 데 이어 올해 1분기에는 359.4%까지 치솟았다. 이 기간 차입금의존도도 47.2%에서 51.1%로 재무안정성 지표가 저하된 모습이다. 통상적으로 부채비율은 100% 이하, 차입금의존도는 30% 이하를 안정적인 재무로 평가한다.
유동부채 역시 지난해 말 2조6,735억원에서 이번 1분기 3조2,165억원으로 증가했다. 총차입금도 2조5,304억원에서 2조8,670억원으로 늘어났고, 순차입금도 2조1,736억원에서 2조4,588억원으로 증가했다. 순차입금은 총차입금에서 기업이 보유한 현금과 현금성 자산을 뺀 수치로 플러스가 되면 차입금보다 현금이 적다는 의미다. 애경그룹은 이번 매각으로 자산을 정리해 약 8,000억원의 유동성을 확보하고 제주항공을 중심으로 사업을 재편한다는 계획이다.
'교환사채 발행 중단' 태광산업, 자금력 의문
현재 인수 후보 가운데 가장 유력하게 거론되는 곳은 태광산업이다. 태광산업은 자회사 티투PE, 유안타인베스트먼트와 컨소시엄을 꾸려 예비입찰에 참여했다. 태광산업은 전략적 투자자(SI)로 참여하고 티투PE가 전면에 나서는 방식이다. 태광그룹은 새 먹거리를 찾기 위해 애경산업 인수를 추진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본업인 석유·화학 부문 업황이 어두워서다. 태광산업은 PTA(고순도테레프텔산) 등 기초유분을 만들어 회사 매출의 75%, 그룹 전체 매출의 17%를 벌어들인다.
통상 PTA는 제품 간 차별점이 크지 않아 원유 가격과 공급 및 수요 변동에 크게 좌우된다. 이익은 원료인 파라자일렌(PX) 매입 가격과 제품인 PTA 판가 간 차이(스프레드)로 결정되는데, 최근 PTA 공급이 늘면서 판가가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 중국 기업들이 공장을 대규모로 증설한 탓이다. 게다가 PTA 수요도 좋지 않아 판가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PTA는 의류 등에 사용되는 만큼 판매량이 증가하려면 소비 전반이 늘어야 하지만, 지금은 고물가로 전 세계 경기 불황이 이어지고 있다. 이에 태광산업은 3년 연속 영업적자를 기록 중이다. 2022~2024년 연결기준 누적 매출은 6조9,940억원, 영업적자는 마이너스 2,311억원에 달한다.
빠른 시일 내 새로운 사업을 구상해야 하는 태광그룹 입장에서 애경산업은 매력적인 매물일 수 있다는 게 시장의 목소리다. 애경산업이 생활용품과 화장품 부문에서 탄탄한 밸류체인을 갖추고 있어서다. 태광그룹이 애경산업을 인수하면 곧바로 생활용품과 화장품 부문에서 연구개발(R&D)·기획·디자인은 물론 생산·마케팅·유통 등 전 과정을 스스로 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게 된다. 이 부문에 노하우가 없더라도 해당 사업을 안정적으로 이어갈 수 있는 셈이다.
관건은 가격이다. 애경그룹은 매각가로 약 6,000억원을 희망하고 있다. 현재 애경산업의 시가총액은 4,305억원으로, 여기에 매물로 나온 지분율(63%)을 대입하면 2,712억원이란 계산이 나온다. 애경산업의 제안을 따를 경우 2배가 넘는 프리미엄을 지급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에 태광산업은 자금 조달을 위해 지난 6월 말 교환사채(EB) 발행을 추진했다. 당시 태광산업 측은 “화장품, 에너지, 부동산개발 관련 기업의 인수와 설립을 위해 약 1조5,000억원을 투자할 계획”이라고 공시했다. 태광산업이 현재 집행할 수 있는 투자금은 1조원 미만으로, 공시에 밝힌 1조5,000억원 규모 투자를 위해서는 외부에서 자금을 조달해야 한다.
그러나 태광산업 2대 주주인 트러스톤자산운용이 교환사채 발행을 반대하며 가처분을 신청했다. 주주가치 훼손은 물론 소수주주권 보호에도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이유에서다. 금융당국도 태광산업의 교환사채 발행에 제동을 걸었다. 금융감독원은 태광산업 교환사채 발행과 관련해 신고서의 내용 중 발행 상대방 등에 대한 누락을 근거로 정정보고서를 요청했다. 논란이 불거지자 태광산업은 교환사채 발행 작업을 잠정 중단한 상태다. 이에 시장에서는 태광산업이 애경산업 인수를 포기할 것이란 예측이 나오기도 했으나, 태광산업 측은 1조원가량의 가용 현금이 있는 만큼 자금력에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앵커PE, 엑시트 빨간불 수두룩·핵심 인력도 이탈
또 다른 인수 후보인 앵커PE 역시 1조원 규모의 자금을 보유하고 있다. 앵커PE는 2021년 16억 달러(약 2조원) 규모로 조성한 4호 블라인드펀드의 투자 기간 종료에 맞춰 신규 인수에 속도를 내고 있는데, 현재 이 펀드에는 약 1조원의 드라이파우더(미소진 자금)이 남아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앵커PE는 애경산업을 인수해 볼트온(Bolt-on) 전략을 펼치면서 더마펌의 수출 경쟁력 강화나 브랜드 라인업 보완 가능성 등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앵커PE가 그간 멈췄던 국내 투자 시계를 다시 돌리는 데는 출자자(LP)들의 압박이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최근 '사모펀드계의 마이너스손'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상황에서 신규 투자처 확보는 사실상 생존과 직결된 과제가 됐다. 가장 최근의 투자 부진 사례로는 호텔신라·로레알과의 합작으로 출범했던 로시안이 꼽힌다. 앵커PE는 지난 1월 로시안 투자 지분에 대해 조기상환청구권(풋옵션)을 행사하고 로레알에 전량 매각했다. 당초 로레알은 지분 매각 규모와 기간을 두 차례로 나눠 설정했으나, 사업 철수 의사를 밝히면서 풋옵션 일정을 앞당겨 지분을 일괄 인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써 초기 투자금은 회수했지만, 기대했던 수익 실현에는 실패하면서 앵커PE의 포트폴리오 전략 전반에 대한 재평가가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실제 앵커PE는 투썸플레이스와 지오영 등 국내 다수 포트폴리오에서도 자금회수(엑시트)에 난항을 겪고 있다. 투자한 기업 대부분이 앵커PE 투자 이후 부진을 거듭하며 위기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앵커PE가 지난 2021년 경영권을 확보한 밀키트 기업 프레시지는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급성장하며 유니콘 후보로까지 거론됐지만, 엔데믹 전환 이후 시장 자체가 위축되며 유동성 위기에 봉착한 상태다.
카카오그룹과의 투자 협력 관계도 난항을 겪고 있다. 앵커PE가 투자한 카카오엔터테인먼트는 최근 불거진 사법 리스크의 여파로 당초 계획했던 엑시트 전략에 차질이 빚어졌다. 2015년 인수했던 이커머스 플랫폼 티몬은 실적 부진 속에 큐텐그룹에 매각됐으나, 큐텐마저 ‘티메프(티몬·위메프) 정산금 미지급 사태’로 경영난에 빠지면서 엑시트가 불투명해졌다. 또 다른 투자처인 마켓컬리 역시 기업가치 하락과 기업공개(IPO) 지연 등으로 인해 회수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에는 창립 멤버였던 위세욱 부대표와 핵심 실무진으로 꼽히는 이규현 전무가 퇴사를 결정하는 등 주요 인력들의 이탈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에도 상무·부장급 주요 실무진 약 5명이 회사를 떠난 것으로 전해진다. 이는 투자 성과 부진과 더불어 포트폴리오 관리 등 주요 업무의 강도, 수직적인 조직 문화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풀이된다. 이렇다 보니 시장에서는 앵커PE가 애경산업을 추가 포트폴리오로 확보하더라도 관리 역량이 뒷받침되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는 분위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