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명 안 하면 관세" vs "이익 안 된다" 평행선 달리는 韓·美, 조지아주 체포 사태가 전환점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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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상무부 장관, 韓에 관세 협정 서명 재촉 이재명 대통령 "합리성과 공정성 없는 협상 않는다" 현대차·LG엔솔 대규모 체포가 이견 좁힐 열쇠?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부 장관이 한국에 통상 압박을 가했다. 한미 무역 협정과 관련, 미국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으면 기존과 동일한 관세율을 부과하겠다며 엄포를 놓은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 정부 측은 이익이 되지 않는 협정에는 서명할 수 없다는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거세지는 美 관세 압박
11일(이하 현지시간) 러트닉 장관은 CNBC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은 이재명 대통령이 방미했을 때 서명하지 않았다"며 "일본은 이미 합의 계약에 서명했으니, 한국은 그 계약을 받아들이든가 아니면 관세를 내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한국이 협정에 최종 서명하지 않는다면 관세율을 당초 책정한 25%로 되돌리겠다는 의미의 발언으로 풀이된다.
앞서 한미 양국은 지난 7월 3,500억 달러(약 485조5,900억원) 규모의 대미 투자 펀드 조성을 조건으로 상호 관세·자동차 품목 관세를 15%로 하향 조정하는 데 합의했다. 하지만 펀드 조성을 둘러싼 양국 간 이견으로 인해 합의문에 서명이 이뤄지지 않고 있으며, 자동차 관세도 25% 선에서 유지 중이다.
러트닉 장관이 한국을 압박하며 일본의 사례를 언급한 것은 일본이 무역 합의를 성사시키기 위해 대규모 손해를 감수했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는 관세 인하의 조건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임기 내인 2029년 1월까지 5,500억 달러(약 760조원) 규모의 대미 투자를 집행하기로 하고, 운용과 수익 환수의 주도권도 미국에 넘겨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처럼 대미 투자가 관세율 조정 조건으로 내걸린 상황에 순순히 몸을 낮춘 셈이다.
이재명 정부 입장 강경해
다만 우리나라 정부는 이 같은 방식의 협정 체결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11일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한미 정상회담 후에도 관세 협상 내용 등에 대한 합의문이 나오지 않아 비판이 제기되는 데 대해 “우리는 얻으러 간 게 아니라 미국의 일방적 관세 증액을 방어하러 간 것”이라며 “좋으면 사인(서명)해야겠지만, 이익이 되지 않는 사인을 왜 하느냐”고 답했다.
이 대통령은 “외교 협상은 말할 수 없는 부분이 사실 많고, 완결되지 않은 과정에서 오가는 얘기를 공개하는 것도 부적절하다”며 “앞으로도 넘어야 할 고개가 퇴임하는 그 순간까지 수없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관세 협상 과정에서 맞닥뜨린 트럼프 미 행정부의 요구가 만만치 않다는 점을 은연중에 드러낸 것이다. 이어 이 대통령은 핵심 협상 요소로 △미군 문제 △핵연료 처리 문제 △전략적 유연성 문제 △대미 투자 펀드 조성과 관세 등을 지목했다.
한미 간의 현안들을 열거한 뒤 그는 “합리성과 공정성을 벗어난 어떤 협상도 하지 않는다”면서도 “(협상이 타결될 것을) 여전히 믿는다"고 발언했다. 이어 "협상 표면에 드러난 것은 거칠고 과격하고 과하고 불합리하고 비상식적이지만, 최종 결론은 합리적으로 귀결될 것”이라며 “그렇게 만들어야 되겠다”고 덧붙였다.

韓 인력 체포가 타협점 만들었다?
양국의 입장차가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 가운데, 일부 전문가들은 최근 벌어진 조지아주 현대자동차·LG에너지솔루션 공장 건설 현장 인부 체포 사태가 전환점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한 시장 전문가는 "이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에서 이익이 되지 않는 합의에 서명하지 않겠다고 단언한 이상, 미국이 한발 물러서야 할 필요가 있다"며 "이번 체포 사태가 양국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고 진단했다. 이어 "미국은 자국에 대규모 시설 투자를 단행한 국가의 인력들을 쫓아내 버렸다"며 "관세 협정에 한국이 자국 자금과 인력을 활용해 미국 현지에 생산 설비를 지을 수 있도록 허용하는 내용이 담긴다면 상황이 달라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최근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보인 유화적 태도는 이 같은 전망에 힘을 실어준다. 앞서 지난 10일 새벽 3시경 한국인 구금자와 그 가족들은 돌연 미국 측으로부터 석방이 연기됐다는 통보를 받았다. 이후 같은 날 오전 마코 루비오 미 국무부 장관은 조현 외교부 장관과의 면담 자리에서 갑작스러운 석방 지연에 대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구금자들이 모두 숙련된 인력이니 미국에 남아 공장 건설을 마치는 게 가능한지’ 확인하기를 원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트럼프 대통령은 해당 사안과 관련해 “한국 측이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도록 신속히 협의하고 조치할 것”을 지시했다고 전해진다. 미국 내에서 대규모 체포가 현지 투자를 약속한 동맹국에 적절한 처우가 아니었다는 여론이 확산하는 가운데, 공개적으로 태도를 누그러뜨리며 입장을 선회한 것이다. 외교부는 트럼프 대통령의 이 같은 지시에 따라 버스 운송, 수갑 착용 등 양국이 충돌하던 사안에서 한국 측 입장이 반영됐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