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조건부 상여금도 통상임금 인정, 기업 인건비 부담 늘어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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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통상임금에서 '고정성' 기준 폐기 월 15일 이상 근무 시 지급하는 상여금도 인정 실적평가급은 사실상 전년도 임금으로 제외돼

대법원이 월 15일 이상 근무 시 지급되는 상여금도 통상임금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지난해 말 통상임금에서 고정성 기준을 폐기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을 근거로 기말상여금을 통상임금으로 인정한 첫 사례다. 다만 실적평가급과 그 최소지급분은 사실상 전년도 임금에 해당해 통상임금에서 제외됐다. 지난해 말 대법원 판례 변경에 이어 이번 판결로 통상임금이 늘어나면서 기업의 인건비 부담이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 적십자사 임금 청구 소송 파기 환송
23일 대법원 3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대한적십자사 직원 A씨 등 35명이 제기한 임금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A씨 등은 월 15일 이상 근무한 직원에게 3개월마다 지급되는 기말상여금과 전년도 업무 실적을 기준으로 이듬해 지급하는 실적평가급, 교통보조비, 처우개선비 등이 통상임금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기말상여금에 대해 1·2심은 고정성이 없어 통상임금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실적평가급의 경우, 2심에서 최소지급분은 통상임금으로 인정될 수 있다고 봤다.
그러나 대법원은 "기말상여금은 3개월 동안 월 15일 이상 근무 시 지급되며, 이는 통상적인 소정 근로를 충족하는 근로자라면 누구나 받을 수 있는 정기적·일률적 대가로서 통상임금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반면, 실적평가급에 대해서는 "전년도 근무 실적에 따라 지급되는 만큼 사실상 전년도 임금"이라며 "통상임금 해당 여부는 지급 시점이 아니라 대상 기간을 기준으로 하므로 통상임금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최소지급분의 경우, 실적과 무관하게 정해져 있다고 보기 어려워 2심과 달리 통상임금으로 인정하기 어렵다고 결론 내렸다.
상여금 등 통상임금 범위 두고 노사 간 이견
이번 판결은 지난해 12월 대법원 전원합의체를 통해 통상임금의 판단 기준을 변경한 판례를 근거로 기말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해당한다고 처음으로 인정한 사례다. 통상임금은 연장·야간·휴일근로수당, 연차휴가수당, 해고예고수당 등 법정수당을 계산하는 도구로 사용되는 개념이다. 관련 법에 따르면 기본급·식대·교통비·상여금 등 여러 임금 항목 가운데 통상임금에 해당하는 항목을 합친 뒤, 이를 기준으로 각종 법정수당이 계산된다.
이 때문에 기업별로 상이하고 복잡한 임금 체계에서 어떤 항목이 통상임금에 해당하는지를 두고 늘 혼선이 빚어졌다. 기업 입장에서는 통상임금을 최대한 줄여야 초과근로수당 등을 줄일 수 있기 때문에 범위를 좁히려 하고, 노동자는 통상임금의 범위를 확대하려 한다. 노사 이견 없이 당연히 통상임금으로 이해되는 기본급을 제외하고, 특히 격월로 지급되는 정기상여금이나 복리후생적 성격이 있는 식대·교통비 등이 논란의 대상이 됐다.
이에 2013년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통상임금의 개념적 요건을 정기성·일률성·고정성으로 정리했다. 이중 문제가 된 것은 고정성이었다. 조건이 있는 상여금의 경우, 고정성이 부정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비슷한 일을 하는 현대차·기아차 노동자의 통상임금 소송에서 희비가 갈렸다. 부가 조건이 없었던 기아차 상여금은 통상임금으로 인정됐지만, 현대차 상여금은 ‘15일 이상 근무’해야 지급하는 조건이 있어 통상임금으로 인정되지 않았다.
그러자 같은 업종의 노동자 대부분이 받는 임금인데 단지 근무 일수 등 지급 조건이 있다는 이유로 통상임금에서 제외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결국 대법원 지난해 12월 19일 판결을 통해 통상임금의 판단 기준에서 고정성 요건을 폐기했다. 당시 대법원은 “노동자가 소정 근로를 온전하게 제공한 대가로서 정기적, 일률적으로 지급되는 임금은 부가된 조건의 존부나 성취가능성에 관계없이 통상임금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현대차 노사, 명절지원금 등 5개 항목 산입
일련의 대법원 판결은 곧장 현장에도 변화를 불러왔다. 지난해 현대차 노사는 판례 변경에 따라 올해부터 정기상여금 150%를 통상임금에 산입하기로 했다. 최근 타결한 임금 및 단체 협상에서는 통상임금 범위와 관련한 혼란을 해소하기 위해 휴가비, 명절지원금, 연구능률향상비, 연장근로상여금, 임금체계 개선 조정분 등 5개 항목을 통상임금에 포함하는데 합의했다.
이번 합의에 따라 현대차 직원 1인당 연평균 318만원이 추가 지급될 것으로 노조는 추산한다. 이를 노조원 4만2,479명에게 적용하면 현대차가 추가 지출하는 금액은 연간 1,351억원에 이른다. 여기에 정기상여금 150% 산입에 따른 금액을 추가하면 부담액은 2,300억원으로 불어난다. 노조원이 아닌 직원도 일정 부분 수당을 더 받는 만큼 사측의 부담은 더 커질 것이란 분석이다.
현대차의 통상임금 결정은 자동차 업계는 물론 산업계 전반에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기아 노조는 올해 2월 통상임금 소급분을 돌려달라는 소송을 제기했고, 올해 임금 및 단체협상에서도 관련 논의를 진행 중이다. 기아 노조는 “명절보조금, 휴가비 등 정기적으로 지급하는 수당을 통상임금에 넣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기에 더해 통상임금 특별위로금 2,000만원 지급도 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