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텔의 손 내밀기” 애플에 투자 제안, 절박한 회생 의지 드러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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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텔 자력 회생 한계→ 외부 자금 의존 확대
정부·엔비디아 지원에도 불투명한 미래
양사 ‘위기’ 공통분모, 시너지 효과는 불확실

57년 기업 역사상 최대 위기를 맞은 인텔이 애플에 투자 참여를 요청하며 회생을 위한 회심의 카드를 꺼내 들었다. 양사 협력 논의가 실제 계약으로 이어질지는 불투명하지만, 시장은 인텔의 주가를 끌어올리며 즉각 반응했다. 과거 긴밀한 협력과 결별을 반복했던 두 회사가 다시 손을 잡을 가능성이 열리면서 반도체업계의 시선 또한 한곳으로 쏠리는 모양새다. 다만 애플 역시 인공지능(AI) 경쟁 열세와 스마트폰 부진으로 흔들리고 있어 이번 논의가 상호 구원의 기회가 될지 동반 위기의 전주곡이 될지는 속단할 수 없는 상황이다.
‘애플과의 연대’ 상징적 의미도
24일(이하 현지시각)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인텔은 최근 애플과 초기 투자 및 협력 방안을 논의 중이다. 블룸버그는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양사는 보다 긴밀한 협력 방안 또한 함께 논의하고 있다”면서도 “다만 논의가 초기 단계인 만큼 성사 가능성은 불투명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 같은 소식이 전해진 직후, 뉴욕 증시에서 인텔 주가는 6.4% 급등해 31.22달러에 장을 마감했고, 애플 주가는 0.9% 하락한 252.31달러로 거래를 마쳤다. 인텔의 절박한 행보와 애플의 참여 여부에 시장이 즉각 반응한 모양새다.
이번 요청은 인텔이 한때 최대 고객이자, 이후 결별을 선언한 기업에 다시 손을 내민 사례라는 점에서 업계의 이목을 끈다. 인텔은 2000년대 중반 이후 애플 맥 컴퓨터에 칩을 공급하며 긴밀한 협력 관계를 맺어 왔으나, 2020년부터 애플이 자체 설계 칩으로 전환하면서 양사의 관계도 다소 소원해졌다. 애플은 2019년 인텔의 모뎀 칩 사업을 인수하며 일정 부분 연결고리를 유지하려 했지만, 관계 복원은 요원한 상황이었다. 인텔의 이번 투자 요청이 받아들여질 경우, 양사는 약 5년 만에 그 연결고리를 다시 강화하는 게 된다.
나아가 양사의 협력은 인텔의 회복 가능성에 힘을 실어주는 동시에 미국 반도체 산업 전반에도 파급력을 미칠 전망이다. 애플은 지난 8월 백악관 행사에서 향후 4년간 미국에 6,000억 달러(약 848조원)를 투자하겠다고 밝히며 자국 제조 생태계 강화에 앞장서겠다는 입장을 전한 바 있다. 이런 이유로 인텔과의 협력은 애플이 미국 내 생산 확대 압박에 대응하면서도 정책적으로 긍정적 효과를 얻을 수 있는 선택지로 해석된다. 업계에서는 애플이 인텔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를 활용해 일부 물량을 맡기는 방식이 거론된다. 애플이 인텔의 성숙 공정에서 스마트폰용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등을 생산할 것이란 관측이다.
그러나 이 같은 시나리오에는 일부 현실적 한계가 존재한다. 애플은 이미 아이폰과 맥북에 들어가는 고성능 칩을 대만 TSMC에 전적으로 맡기고 있어 인텔에 대규모 생산 물량을 재배치할 유인이 크지 않다. 또한 인텔의 기술력 격차와 파운드리 부실이 여전히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애플이 단독으로 인텔을 구원할 수 있을지 역시 불투명하다. 결국 이번 논의는 애플과 인텔 모두가 처한 전략적 계산 속에서 ‘상징적 제스처’ 이상의 의미를 가질 수 있을지가 관건으로 떠오르는 양상이다.
파운드리 부실 및 기술 격차 해소 요원
인텔은 올 하반기 들어 미국 정부와 주요 기업들로부터 대규모 투자를 끌어내며 회생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달 인텔 지분 9.9%를 인수하면서 90억 달러(약 12조7,000억원)를 투입했고, 이를 근거로 인텔이 ‘미국 정부 기업’으로 전환됐다고 선언했다. 인텔은 이로써 최대 주주가 기존 블랙록(8.92%)에서 미국 정부로 바뀌는 상황을 맞이했다. 하지만 현지 업계에선 이러한 투자가 인텔의 부활에 실질적 도움이 되기 어렵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이미 지급이 예정된 반도체법(CHIPS Act) 보조금을 지분 인수 형태로 바꿔놓은 수준에 불과하며, 기술 경쟁력 자체를 되살리기는 역부족이라는 이유에서다.
심지어 재계에선 ‘정실주의’ 논란이 확산하기도 했다. 립부 탄 인텔 최고경영자(CEO)가 트럼프 대통령과의 회동 이후 지분 일부를 넘긴 사실이 알려지며 정책 지원이 연고나 친분에 의해 좌우되는 ‘크로니 캐피털리즘(crony capitalism)’의 전형이라는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이를 두고 워싱턴포스트(WP)는 “미국이 중국식 모델을 답습하는 셈”이라고 지적하며 “특정 산업에 대한 과도한 편중이 결국 부실을 키울 수 있다”고 우려의 목소리를 내놨다.
이달 들어선 엔비디아가 50억 달러(약 7조원)를 투자해 인텔 지분 4%를 확보했다. 양사는 차세대 PC 칩에 엔비디아의 그래픽 기술을 적용하고, 데이터센터용 AI 가속기에는 인텔 CPU를 결합하는 공동개발 협력도 함께 발표했다. 해당 발표 직후 인텔 주가는 하루 만에 최대 28% 급등해 32달러 선에 육박했고, 엔비디아도 3% 이상 오름세를 보였다. 반면 경쟁사 AMD는 2.7% 하락하는 등 시장은 양사의 협력에 즉각 반응했다.
그러나 정작 업계의 이목이 집중됐던 파운드리 계약은 빠졌다는 점에서 “가장 취약한 고리를 해결하지 못했다”는 지적 또한 뒤따랐다. 인텔 파운드리 부문은 2023년 70억 달러(약 10조원) 적자에 이어 지난해 130억 달러(약 18조4,000억원) 손실을 기록하며 구조적 부실이 심화됐다. 이로 인해 인텔은 6분기 연속 적자를 이어갔고, 주가 역시 같은 기간 60%가량 폭락했다. 전문가들은 “수율 개선 없이는 신규 고객 확보가 불가능하고, 회생 가능성 자체가 제한적”이라고 입을 모았다. 엔비디아의 투자가 단기적 주가 반등 효과는 줬지만, 장기적으로는 파운드리 부실이라는 근본 문제를 해소하지 못했다는 의미다.

애플도 스마트폰 판매 부진·AI 대응 지연으로 고전
인텔의 새로운 구원투수로 거론되는 애플 역시 상황이 녹록지 않다. 한때 ‘혁신의 상징’으로 불리던 애플은 AI 경쟁에서 뒤처지며 존재감이 희미해진 데다, 핵심 인력까지 빠져나가는 이중고에 직면한 상태다. 지난해 공개했던 자체 AI ‘애플 인텔리전스’는 AI 비서 ‘시리’ 개편과 맞물려 있었으나, 잇따라 지연되며 ‘AI 지각생’이라는 오명을 얻었다. 결국 아이폰에는 챗GPT를, 시리에는 구글의 제미나이 적용을 검토하는 등 외부 기술 의존도가 높아지고 있다. 여기에 최소 12명의 AI 전문 인력이 회사를 떠나면서 기술력 공백 또한 심화하는 국명이다.
주력 사업인 스마트폰도 위기다. 시장조사업체 카날리스 집계에서 올해 2분기 미국 내 아이폰 출하량은 1,330만 대로 전년 대비 11% 줄었고, 점유율도 56%에서 49%로 하락했다. 같은 기간 삼성전자는 출하량을 38% 늘리며 점유율을 31%까지 끌어올렸다. 중국 시장 역시 비슷하다. 애플의 2022년 1분기 매출 가운데 20.8%를 차지했던 중국 시장의 비중은 올해 2분기 16.8%까지 쪼그라들었다. 중국 현지 브랜드 비보, 오포 등이 애국소비 바람을 타고 성장한 반면, 애플은 설 자리를 잃은 데 따른 결과다.
애플을 둘러싼 규제와 소송 리스크도 겹쳤다. 먼저 미국 법무부와 16개 주 정부는 애플이 자사 생태계를 구축하며 외부 앱과 결제를 제한했다고 보고 반독점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또 유럽연합(EU)은 애플이 디지털시장법(DMA)을 위반했다고 판단해 5억 유로(약 8,100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했고, 시장 매출의 최대 10%까지 과징금을 물릴 가능성까지 시사했다. 여기에 최근에는 일론 머스크 xAI CEO까지 “애플이 오픈AI와 손잡고 AI 시장 경쟁을 방해했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잇따른 법정 공세는 애플의 브랜드 신뢰성을 흔드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가장 큰 난제는 미·중 갈등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Made in USA’ 아이폰을 요구하며 중국 생산 축소를 압박하자, 애플은 생산기지 이전과 관세 부담 사이에서 진퇴양난에 빠졌다. 중국 생산을 줄이면 판매가 감소하고, 미국 내 제조를 선택하면 가격 급등으로 수요가 줄어들 공산이 크다. 이러한 일련의 악재들이 맞물리며 애플의 주가는 연초 대비 20%가량 하락하는 등 알파벳, 아마존, 메타 등 경쟁사들 대비 크게 뒤처졌다. 애플과 인텔의 협력이 양사의 새로운 돌파구가 될지, 위기를 더 크게 증폭시키는 전환점이 될지 속단할 수 없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