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B 로봇 품은 소프트뱅크, AI의 무게중심 ‘행동하는 로봇’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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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반도체·로봇 통합 생태계 구축
AI 시장, 생성형에서 행동형으로 중심 이동
테슬라 ‘AI+휴머노이드’로 산업 표준 선점

소프트뱅크가 산업용 로봇 사업을 인수하며 본격적인 피지컬 인공지능(AI) 전략을 가동했다. 이번 인수로 손정의 소프트뱅트 회장은 AI의 ‘행동화’ 단계로 발을 옮겼다. 테슬라, 엔비디아, 메타 등 글로벌 빅테크가 휴머노이드 시장에서 각축을 벌이는 가운데, 미국과 중국은 성능 중심과 양산 중심의 양대 축으로 갈라졌다. 산업 자동화와 자율제어 기술이 결합된 피지컬 AI는 이제 단순한 기술이 아닌 산업 패러다임의 변화를 예고하는 모습이다.
산업 자동화 등 다양한 영역으로 사업 확장 예고
12일(현지시간) 블룸버그 등 외신에 따르면 소프트뱅크는 스위스 대기업 아세아브라운보베리(Asea Brown Boveri·ABB)의 산업용 로봇 부문을 53억7,500만 달러(약 7조7,000억원)에 인수하기로 했다. 직원 수만 7,000명 이상에 달하는 ABB 산업용 로봇 사업부는 전 세계 53개국에 생산 거점을 보유한 글로벌 핵심 자산으로, BMW를 비롯한 유럽 주요 완성차 기업과 제조업체들에 정밀 로봇팔과 자동화 설비를 공급하고 있다. 글로벌 산업 자동화 시장이 연 8%대 성장세를 보이는 가운데, 소프트뱅크는 이번 인수를 통해 750억 달러(약 107조원) 규모의 시장으로 직접 진입하게 됐다.
이처럼 ABB 로봇 부문 인수는 소프트뱅크에 단순한 제조 자산 확보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손 회장은 “우리는AI 기술의 상업화와 물리적 구현을 핵심 축으로 삼고 있으며, 이번 인수는 피지컬 AI 시대를 여는 시작점”이라고 자평했다. 이는 오픈AI·오라클과 함께 진행 중인 ‘스타게이트 프로젝트’의 연장선으로, AI가 설계한 생산 시스템을 실제 로봇이 구현하는 통합형 산업 생태계를 구축하겠다는 구상이다. 소프트뱅크는 이미 로봇 관련 자산을 통합한 지주사 ‘로보HD(Robo HD)’를 설립해 스킬드AI, 버크셔그레이, 애자일 로봇츠 등 10여 개의 로봇 기업을 포트폴리오에 편입시킨 상태다.
거래가 완료되면 소프트뱅크는 AI와 반도체, 로봇 등 3대 핵심 기술 분야를 연결하는 플랫폼을 완성하게 된다. 현재 소프트뱅크는 칩 설계 기업 ARM을 자회사로 두고 있으며, 챗GPT 개발사 오픈AI의 지분도 보유 중이다. 여기에 ABB 로봇 사업이 결합되면 AI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모두 아우르는 통합 생태계가 구축된다. 시장에서는 이번 인수를 두고 “손 회장이 10년 전 ‘페퍼’ 이후 멈췄던 로봇 비전을 재가동하는 모습”이란 평가를 내놨다.

산업용 로봇, 물류·제조·헬스케어 등 실물 분야로 확장
소프트뱅크의 움직임에서 확인할 수 있듯 글로벌 AI 시장의 중심축은 소프트웨어에서 피지컬 AI로 빠르게 이동하는 형국이다. 피지컬 AI는 산업 현장에서 발생하는 복잡한 비정형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인식하고, 로봇과 센서를 통해 스스로 판단해 행동하는 AI 형태를 의미한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올해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25’에 참석해 “AI는 이제 세상을 움직일 단계에 도달했다”고 강조해 이 같은 흐름을 가속화했다.
피지컬 AI 기술은 기존의 생성형 AI가 텍스트·이미지·언어 처리 등 가상 공간에 머물렀던 한계를 넘어 실제 산업 환경의 물리적 변수까지 통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산업용 로봇이 단순 반복 작업을 넘어 불량 감지, 생산 최적화, 안전 제어까지 수행하며 ‘스스로 사고하는 기계’로 진화한 것이다. 이는 곧 산업 구조 전반의 패러다임 전환으로 이어진다. 제조, 물류, 건설, 헬스케어 등 다양한 산업군에서 피지컬 AI 도입이 본격화하면서 자동화 수준 또한 정교해지고, 에너지 효율과 자원 활용성도 동반 향상되는 식이다. 과거 단순한 기계 제어에 불과했던 자동화 시스템은 AI의 판단과 실행 기능을 더하면서 실시간 최적화가 가능한 지능형 산업 구조로 변모했다.
이 같은 변화의 핵심은 ‘학습’보다 ‘행동’이다. 엔비디아가 개발 중인 산업용 로봇 플랫폼은 카메라와 음향, 위치정보를 기반으로 인간의 움직임을 모방하고, 자율주행차는 복합 데이터를 학습해 도로 환경을 예측하며 스스로 주행 경로를 결정한다. 이러한 기술은 제조업은 물론 의료·농업·물류 등 전방 산업으로 확산되며 산업 전반에서 효율성·안전성·생산성을 모두 개선할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주목받고 있다. 피지컬 AI의 확산이 단순한 기술 진화를 넘어 AI가 현실 세계에 물리적으로 개입하는, ‘또 하나의 산업혁명’으로 평가되는 이유다.
차세대 전략 무대로 부상한 피지컬 AI
AI ‘물리적 구현’ 단계가 성큼 다가오며 휴머노이드 로봇을 중심으로 한 미국과 중국의 기술 패권 경쟁도 날로 격화하는 모습이다. 먼저 미국에서는 테슬라가 휴머노이드 로봇 ‘옵티머스’의 단계적 대량 양산 계획을 발표하며 시장 선도 의지를 분명히 했다. 2023년 공개한 프로토타입 모델 옵티머스 2세대(Optimus Gen 2) 출시를 2026년으로 확정하고, 오는 2027년에는 연간 50만 대 생산량을 달성한다는 계획이다. 현재 테슬라 공장에서 시범 운영 중인 옵티머스는 2026년부터 외부 기업용으로 판매될 예정이다.
메타와 애플도 휴머노이드 시장 진출을 선언하며 각 사의 특징을 살린 개발 계획을 발표했다. 메타는 지난 2월 자사 AI 모델 라마(Llama) 플랫폼 기능을 극대화하는 소비자용 휴머노이드 로봇 연구 부서를 신설했고, 애플 역시 자사의 하드웨어와 AI 소프트웨어를 통합한 휴머노이드 개발에 한창이다. 이들 기업 외에도 앱트로닉 등 다수의 스타트업이 미국 항공우주국(NASA), 구글 산하 AI 연구소 딥마인드 등과 협력해 로봇 구동 AI 기술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중국에선 애지봇이 비야디(BYD), 홍산캐피털 등 자국 대기업의 투자를 받아 지난해 12월 휴머노이드 로봇 양산에 성공했고, 유니트리가 1만5,000달러(약 2,100만원)대 실용형 휴머노이드 ‘G1’을 출시하며 대중화 전략을 추진 중이다. 주목할 만한 점은 관련 기업 대부분이 AI 학습 데이터를 오픈소스로 공개하며 휴머노이드 개발 생태계 조성에 힘쓰고 있다는 사실이다. 중국은 이 같은 생태계를 바탕으로 정밀 제어와 환경 인식 기술을 접목해 산업 및 서비스 분야에 적용을 확대한다는 구상이다.
전문가들은 피지컬 AI 경쟁의 승부처가 ‘생태계 흡인력’에 있다는 진단을 내놨다. 테슬라의 대규모 생산 계획과 중국 업체들의 오픈 전략이 병행되는 현재 구도에서 산업용 휴머노이드의 보급 속도는 규제 정합성, 비용 곡선, 서비스형 유지보수 모델 확립에 따라 크게 달라질 것이란 관측이다. 결과적으로 누가 더 많은 현장 레퍼런스를 확보하고, 소프트웨어 업데이트와 원격 관제를 결합한 운영비 절감 효과를 입증하느냐가 경쟁력의 척도가 되고, 이 과정에서 대규모 실증 프로젝트와 장기 유지보수 계약을 선점한 기업이 시장의 주도권을 거머쥘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