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수정
금리 인상에 따른 주택가격 하락이 급속하게 이뤄지는 가운데, 역전세난이 심화되고 심지어는 깡통전세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현재 입주자의 전세금이 매도 가격보다 더 높은 상태인 이른바 깡통전세가 나타난데다, 금리 인상에 대한 부담과 전세가격 추가 인하에 대한 기대감으로 입주를 미루면서 역전세난마저 나타나고 있다. 집주인들은 현 임차인의 전세계약이 끝날 경우 상당액의 대출을 통해 전세금을 돌려줘야하나, 금리 인상으로 대출이 부담스러운데다, 신규 세입자를 구할 수 없어 애를 먹고 있다고 알려졌다.
거꾸로 집 주인이 세입자에게 월세주는 시대
반포동의 유명 브랜드 A아파트 단지에 23억원 전세로 거주 중인 김 모씨는 올 초 이사 계획을 포기했다. 지난 2021년 3월에 당시 거주 중이던 반포주공1단지 재건축으로 급하게 이사나오던 시절만해도 23억원 전세가 부담스럽기는 했지만, 일대에 전세 및 월세 물량이 완전 소진되었던 탓에 어쩔 수 없이 23억원에 계약을 맺었다. 그러나 2년 만기가 다가온 요즘, 현재 반포동 일대의 동일 면적 아파트 단지의 전세 시세는 13억원에 불과하다.
13억원으로 재계약을 맺을까, 주변 다른 아파트로 이사를 할까 고민하던 중, 집주인에게서 10억원에 대한 이자를 지불할테니 계약을 계속 연장해줬으면 좋겠다는 제안을 받았다. 재건축 결정 직후 받은 이주대출 10억원에 대한 이자보다 약 150만원 정도 더 많은 금액을 받게되는만큼, 고민 끝에 23억원 전세계약을 연장하기로 결정했다.
실제로는 13억원 계약 후 10억원 대출에 대한 이자금을 받고 있는 것과 같은 상황이나, 명목상으로는 23억원 전세계약이 그대로 유지되는 것이다.
반포동 일대에서 20년 경력이라는 한 부동산 업자는 지난 2007년 세계적인 금융위기 당시에도 일부 집주인들이 집 값 하락으로 전세금을 돌려줄 수 없자 비슷한 계약을 맺었다고 밝혔다. 역전세난과 깡통전세가 결합되어 '우리 집에 살아주면 월세를 얹어 준다'는 희귀한 계약이 나타난 것이다.
'전세 연장하면 이자 대납해 줄께요' 신풍속 전세
인근 동작구 사당2동 일대의 분위기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한 방배그랑자이 재건축 소유주 A씨에 따르면, 지난 2020년 5월, 84㎡에 5억원에 전세집을 구했다가 2022년 3월에 계약 연장을 고민할 때만해도 집주인이 전세금이 7억원으로 올랐다며 당당하게 나왔으나, 재건축 완료된 집을 월세로 돌리고 당시 전세계약을 6억원에 연장했다가 이제 거꾸로 집주인에게 4억원으로 낮춰달라는 요청을 보냈다고 한다.
인근 동일면적 아파트들이 전세금 4억5천만원에 세입자를 구할 수 없는 처지라 실거래는 4억2천만원에 이뤄지고 있고, 2월까지 취학 및 전학 시즌이 끝날 경우 4억원 이하로 떨어질 것이라는 예상도 나오는 상황이다. 집주인은 2억원에 대한 이자를 대납해줄테니 6억 전세계약을 유지해달라는 요청을 보냈고, 금리인상 추이를 보고 최종 결정하겠다는 통보를 지난해 말에 보낸 상태라고 한다.
계약갱신권 무의미한 시대, 5% 이상 인상이 독소조항으로 돌아와
부동산 관계자들은 A씨의 사정을 '계약갱신권'이 문제가 된 사항으로 해석했다. 지난 문재인 정부 중에 통과된 임대차법 개정안 제6조 2항에 따르면, 계약갱신권을 사용한 임차인은 계약기간이 남았어도 언제든 이사를 갈 수 있다. 묵시적 갱신의 경우 임차인은 언제든지 임대인에게 계약 해지를 할 수 있고, 계약갱신청구권을 청구한 경우에도 이 조항을 준용한다.
때문에 5%인상 후 계약갱신한 임대인들은 갑자기 임차인들이 퇴거 통보를 하면서 전세금을 구하지 못해 유동성 문제에 빠지는 경우가 크게 늘었다. 부동산R114에 따르면, 2020년과 2022년 터울을 두고 1건이라도 전세 거래가 있었던 서울 아파트 9,606개 주택형의 전세 가격을 분석(최고가 비교)한 결과, 2022년 계약금액이 2020년 계약금액보다 낮은 경우는 1,774개로 전체의 18%에 달했다. 18%가 역전세 위험에 노출돼있다는 뜻이다.
신규 임대차법 도입시 세입자를 보호하려다 되려 시장 안정성을 망친다고 지적했었다는 인근 부동산 관계자는 "2년전에는 임대차법 도입되면서 전셋값 폭등하더니 그난리를 쳐서 도입한 임대차법을 이제는 임대인이나 세입자 모두 필요없다고 한다”면서 “시장 안정화를 위해 도입됐다는 법이 시장 불안만 더 키우고 있다”고 정책 실패를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