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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 참패 가능성에 시장 불안↑
중앙은행 추가 긴축에도 제약
엔캐리 자금 복귀 가능성 ‘솔솔’

일본 참의원 선거가 나흘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정치적 불확실성과 재정 건전성 논란이 겹치면서 일본 국채 수익률이 급등하는 모습이다. 집권 여당의 참패 가능성과 그에 따른 소비세 인하 불발, 물가 상승 등 복합 악재가 겹치면서 시장은 이를 선제적으로 반영했고, 그 결과 10년물 국채 수익률은 17년 만에 최고 수준까지 치솟았다. 이처럼 시장이 먼저 금리를 끌어올리는 현상이 중앙은행의 통제력 약화로 해석되면서 금융 시스템 전반의 불안 심리로 확산될 조짐마저 포착된다.
소비세 인하 불발 및 물가 상승 등 정치적 악재
16일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에 따르면 전날 오전 일본의 10년물 국채 금리는 장중 한때 전날보다 0.02%p 오른 1.595%를 기록하며 2008년 10월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나타냈다. 오는 20일로 예정된 참의원(상원) 선거를 앞두고 집권 자민당과 연립 공명당이 과반 의석 확보에 실패할 수 있다는 전망이 주를 이루면서 정치적 불확실성을 이유로 채권시장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모습이다.
이번 선거를 둘러싼 일본 내부의 핵심 쟁점은 판매세(소비세) 인하 여부다. 최근 아사히 신문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유권자의 68%는 소비세 인하가 생활비 상승으로 인한 타격을 완화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답했다. 그러나 집권 여당은 소비세 인하 가능성을 일축한 채 일회성 현금 지급안을 제시했고, 여기에 쌀값 등 생필품 가격 급등, 미국발 자동차 관세 리스크 등이 겹치면서 민심은 점점 야당 쪽으로 기우는 양상이다. 통상 정치적 리스크는 정부의 재정 건전성에 대한 신뢰를 떨어트려 국채 수급 불균형 우려를 키우고, 이는 결국 금리를 높이는 효과로 이어진다.
이와 관련해 후지와라 타카시 리소나자산운용 수석 펀드매니저는 “야당 지지율이 상승하면서 소비세 인하 가능성이 현실성을 얻고 있다”고 진단하며 “완전고용 상태에서 재정 지출이 확대되면 기대 인플레이션이 오르고, 초장기물을 중심으로 금리 상승 압력 또한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여당이 참의원 선거에서 패하면, 이시바 시게루 총리의 지도력이 약화돼 자민당 총재 선거가 조기 실시될 가능성이 있다”며 “정치 체제의 불확실성이 장기화하면 금리 역시 쉽게 낮아지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통화정책 여지도 제한
문제는 시장 금리가 선제적으로 급등하면서 일본은행(BOJ)의 통화정책 선택의 폭도 크게 줄어들었다는 점이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중앙은행이 섣불리 금리 인상을 시도하면 국채 가격이 추가로 급락해 금융시장 전반에 충격을 줄 수 있고, 반대로 금리를 동결하면 물가 대응에 미온적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된다. 일본은행이 지난해부터 점진적인 긴축 전환을 모색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번 선거와 금리 급등 상황은 이 같은 전환 전략에 심각한 제약이 될 수 있다.
일각에서는 연립여당이 이번 선거에서 과반 의석을 유지하더라도 이시바 총리가 미국의 관세 위협과 생활비 상승으로 인한 경제적 타격을 완화하기 위해 매파적인 재정 기조를 버리고 지출을 늘려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로이터통신은 일본은행 이사 출신의 한 이코노미스트를 인용해 “일본은행이 적어도 내년 3월까지는 금리 인상을 주저할 것”이라며 “참의원 선거를 기점으로 저금리를 더 오래 유지해야 한다는 정치적 압력에 직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보도했다.

글로벌 유동성 급감, 글로벌 금융시장 충격 우려
일본 국채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면서 글로벌 금융시장의 불안감 또한 커지고 있다. 지금까지 일본의 장기 국채는 대표적인 안전자산으로 분류돼 왔지만, 최근의 흐름은 재정건전성 악화와 금융기관들의 채권 투자 손실 가능성을 시사하면서 상황이 달라진 것이다. 심지어 일각에선 글로벌 채권시장의 연계성을 감안할 때 ‘엔캐리 트레이드 청산’ 재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엔캐리 트레이드는 일본의 낮은 금리를 이용해 엔화로 자금을 빌려 금리가 높은 다른 국가 자산에 투자해 수익을 얻는 전략으로, 일본의 금리가 높아지면 해외로 투자한 엔화 자금이 일시에 회수돼 금융시장 전반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게 된다. 가장 최근에는 지난해 7월 일본은행이 17년 만에 금리 인상을 결정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주식시장 폭락과 국채 금리 폭등이 발생한 바 있다.
일본은 그간 글로벌 자산시장에 막대한 유동성을 공급하는 역할을 해왔는데, 이 유동성이 회수되면 신흥국 시장을 중심으로 자금 이탈이 가속할 수 있다. 특히 엔캐리 자금은 주식과 채권, 부동산, 파생상품 등 자산 구분 없이 유입되어 있었기 때문에 특정 섹터가 아닌 전반적인 매도 압력으로 현실화할 공산이 크다. 정치적 불확실성에서 비롯된 일본 내부의 금융시장 변동성이 글로벌 자산시장에서도 자금 이탈에 대한 우려를 키우는 요인으로 작용하는 배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