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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도 결함 '구멍'에 새나가는 세금, '중구난방' R&D 자금의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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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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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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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근거리를 비추는 등불은 앞을 향할 때 비로소 제빛을 발하는 법입니다. 과거로 말미암아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비출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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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6월 28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2023 국가재정전략회의’를 주재하고 있다/사진=대통령실

여당이 R&D 카르텔의 원인을 찾아 해결하겠다고 밝혔다. 지난달 윤석열 대통령이 관련 계획을 내놓은 데 따른 것이다. 국내 R&D 예산은 꾸준히 늘어나고 있으나 투입만큼의 성과는 제대로 나지 않는 형국이다. 국내 기업의 R&D 역량 부족도 문제지만, 일각에선 제도 자체의 치명적 결함이 R&D 자금의 방만한 운영을 사실상 '유도'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與 과학기술특위 "R&D 비효율 타파할 것"

7일 국민의힘 과학기술특별위원회는 첫 회의를 열고 과학 R&D 비효율의 원인을 파악해 효율적인 투자가 이뤄질 수 있게 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특위 위원장을 맡은 정우성 포스텍 산업경영공학과 교수는 “방만한 R&D 연구비 집행이 카르텔의 배만 불리고 있다”며 “과학기술은 정치권의 힘겨루기 대상이 아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과학기술만 생각하며 미래를 만들어갈 제대로 된 시스템을 마련하겠다”고 힘줘 말했다.

특위는 비효율적 연구비 집행의 핵심을 '부처별 칸막이'로 봤다. 부처마다 연구관리 전문기관이 난립해 있어 개별 프로젝트에 대한 합당한 평가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단 것이다. 이와 관련해 정 위원장은 "R&D 투자가 많았음에도 효율적인 투자가 이뤄지지 못해 충분한 성과가 나오지 않았다는 비판이 많다"며 "시스템 전반의 문제를 살펴보겠다"고 전했다.

앞서 정부는 올해부터 5년간 과학기술 R&D에 170조원 이상을 투자해 R&D 예산을 정부 총지출 대비 5% 수준으로 유지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특위의 이번 행보는 윤석열 정부의 이 같은 방침에 보조를 맞춘 것으로 해석된다. 향후 회의에서 특위는 윤 정부가 지정한 ‘12대 국가전략기술’ 육성을 지원하기 위한 구체적인 정책을 검토하고 R&D 투자 효율화를 위한 대책 마련에 나설 방침이다.

'R&D 지원금=기업 안정자금'?, 韓 R&D의 현주소는

최근 중소기업계에선 R&D 지원금을 '기업 안정자금'이라 부른다. 사업 자금으로 R&D 지원금을 전용하는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R&D 예산이 '눈먼 돈'으로 불리는 이유다. 실제 중소기업 부설 연구소 수는 2015년을 기점으로 대기업 수를 앞질렀지만, 제대로 된 곳은 실상 드문 형편이다. 2018년 말 기준 3만8,644개 중소기업 연구소의 95.9%는 연구원이 열 명이 채 되지 않았다. 심지어 2017년 말 기준 중소기업 연구원의 76.8%가 학사 이하 학력자인 것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지원 서류를 잘 꾸며주는 'R&D 브로커'도 성행하고 있다. 이들은 지원금의 5~10%를 성공 보수로 받는 대신 기업이 R&D 지원을 보다 수월하게 받을 수 있도록 돕는다. 지난 2018년 드러난 R&D 컨설팅업체만 해도 44곳에 달했다. 사실상 R&D 자금을 받을 만한 기술력을 갖추지 못한 중소기업마저 '세금 먹는 하마'가 되고 있다. 우리나라 중소기업 R&D의 현주소다.

중소기업 R&D 자금의 비효율성은 R&D 과제 성공률에서 잘 드러난다. 2017년 기준 중소벤처기업부 R&D 최종평가 과제 4,651건 중 성공 판정을 받은 건수는 4,317건이다. 성공률이 92.8%에 달하는 셈인데, 중소기업 연구소가 상당히 부실함을 생각하면 비정상적인 수치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중소기업 연구소들이 이미 보편화된 기술을 개발했다 보고한 뒤 정부 지원금을 타가는 탓"이라고 설명했다. 2018년 중소기업중앙회 기술통계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중소기업이 세계 최초 신기술 개발에 뛰어든 사례는 2.4%에 불과했다. 반면 국내와 신흥공업국에서 보편화된 기술을 다시 연구한 비중은 76.5%에 이르렀다. 결국 R&D 자금의 실질적 목표인 '새로운 도전' 없이 '될 만한 것'만 했다는 의미다.

사진=pexels

제도 결함 치명적, R&D 자금 방만한 운영에 영향

R&D 자금의 방만한 운영은 국내 기업의 R&D 역량 부족 및 제도 자체의 결함에서 비롯된다. 실제 중소기업이 R&D 자금을 받는다 하더라도 기업이 새로운 도전에 실패하면 지원금을 그대로 다시 토해내야 한다. 향후 3년간 정부 R&D에 참여할 수 없다는 제한 조건까지 붙는다. 실패에 대한 리스크가 상당히 큰 셈이다. 사실상 '당장 성과를 내놓으라'는 격인데, R&D 특성상 단기간에 새로운 도전에 대한 성과를 내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이와 관련해 한 전문가는 "경제부처는 500억원 이상 사업의 예비타당성을 통해 5년 뒤 영구 성과를 보장하라고 하는데, R&D는 예측 불가한 특유의 성격상 성과를 정확히 예상할 수 없다"며 "과학은 사업의 논리가 아니다. '몇 년 후 성과를 내라'는 식의 땜질 논리는 R&D에 해로울 뿐"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예산을 집행하는 공무원들이 연구와는 거리가 먼 인물들이라는 점도 문제로 꼽았다. R&D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한 채 눈앞의 성과에만 집중하며 예산 집행을 이어가니 '어차피 안 되는 사업'이라는 인식만 중소기업 사이에 팽배해졌단 것이다.

국가 R&D 예산은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우리나라 정부의 R&D 투자 규모는 세계에서 꽤 높은 선두 그룹에 위치하고 있으며 서울시의 R&D 투자 규모도 글로벌 도시 중 2~4위에 오를 만큼 높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R&D 사업은 투입한 만큼의 산출이 제대로 나오지 않고 있다. 성과지표 설계에 있어 논문이나 특허 실적만을 중점적으로 바라본 탓이다. 앞으로는 기술 이전이나 사업화 성과에 비중을 두면서 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의 R&D 투자가 이뤄질 필요가 있다. 정부의 과도한 개입도 지양해야 한다. 현재 정부는 중소기업 R&D에 대해 감시에 가까운 규제를 하고 있는데, 이로 인해 빠르게 변화하는 산업 트렌드에 중소기업이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고 있단 비판이 쏟아진다. R&D 사업 정상화를 위한 정부의 노력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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