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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드뱅크 도입' 여야 찬반 엇갈려 민생 구제와 모럴 해저드의 딜레마 코로나19 팬데믹 충격 '뒷수습' 시급해

여야가 '장기 연체 채권 소각 프로그램(이하 배드뱅크)' 시행 여부를 두고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이재명 대통령의 대선 공약에 발맞춰 민생 경제 부양을 위한 배드뱅크 도입을 추진하는 가운데, 국민의힘이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 등을 우려하며 강력한 반대 의사를 표명하고 나선 것이다.
여야, '배드뱅크' 도입 두고 충돌
1일 정계 등에 따르면 여야는 지난 30일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 회의에서 30조5,000억원 규모 추가경정예산안 심의를 진행, 치열한 공방전을 벌였다. 논의의 핵심 쟁점은 배드뱅크였다. 배드뱅크는 이재명 대통령의 대선 공약 중 하나로, 7년 이상 연체된 5,000만원 이하 개인 채권을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가 출자한 기구에서 일괄 매입한 뒤 소각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6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새 정부는 빚을 갚을 여력이 없는 취약 차주 113만 명의 장기 연체 채권을 소각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더불어민주당 등 범여권은 코로나19 팬데믹, 12·3 비상계엄 등을 거치며 민생 경제가 심각한 위기에 놓인 점을 고려, 프로그램 도입이 시급하다는 주장을 펼쳤다.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국가의 기능이라는 점에 천착해 보면 (배드뱅크 도입은) 어려운 사람들에게 새출발을 할 수 있도록 경제적인 편익을 제공하는 것, 채무 탕감을 통해 새출발할 수 있게 하는 대단히 의미가 있는 일이고 그것이 곧 국가의 기능"라고 발언했다. 조국혁신당 신장식 의원도 "채권 소각액은 약 16조4,000억원이지만, 정부 예산은 4,000억원 정도"라며 "한계 소비 계층이 다시 소비할 수 있도록 여력을 만들어 주면 내수 경제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평가했다.
반면 국민의힘은 프로그램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실제 배드뱅크가 도입될 시 채무 조정 없이 성실하게 채무를 상환한 국민과의 형평성이 훼손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야당 간사인 강민국 국민의힘 의원은 “(배드뱅크 채무 소각 대상과 동일한 조건에서) 실제로 상환한 사람이 361만2,119명이고, 상환 금액만 해도 1조581억8,000만원에 달한다”며 “이렇게 되면 금융 모럴 해저드가 굉장히 심각하게 들어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추경호 국민의힘 의원도 "국민 10명 중에 6명은 지금 이재명 정부에 관해 긍정적 평가가 많지만, 이 프로그램에 관해서는 60%가량이 반대한다"며 "형평성과 지속 가능성, 재정 건정성 모두 흔들릴 수 있는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배드뱅크 도입 전례
이처럼 여·야가 치열하게 대립하고 있는 것은 배드뱅크 도입의 장단점이 이미 전례를 통해 뚜렷하게 드러난 상태이기 때문이다. 일례로 지난 2003년 카드 대란 당시 설립된 ‘한마음금융’은 카드사 부실 채권 2조 원을 인수, 연체 이자 감면과 10년 분할 상환을 유도하며 약 18만 명을 지원했다. 박근혜 정부의 ‘국민행복기금’은 1억 원 이하 신용대출 연체자의 채무를 최대 70%까지 감면해 약 33만 명에게 새출발 기회를 제공했다.
하지만 한마음금융은 원금 감면이 없어 실질 부담 해소에 한계가 있었고, 국민행복기금은 신용대출에만 적용돼 가계부채 구조 개선에는 한계가 있었다. 단기 부실 정리에는 효과적이었지만, 성실 상환자와의 형평성 논란, ‘빚을 갚지 않아도 된다’는 잘못된 신호에 대한 도덕적 해이 우려도 반복됐다. 여야 양측의 주장 모두 충분한 근거가 있는 셈이다.
다만 시장에서는 코로나19 팬데믹 등으로 인해 가계 부실 위험이 커진 만큼, 배드뱅크를 앞세워 민생을 구제하겠다는 여당의 접근이 잘못된 것은 아니라는 평이 나온다. 실제 한국은행 ‘금융안정 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자영업자 연체율은 2021년 4분기 0.52%에서 2024년 4분기 1.67%로 상승했다. 3년 사이 세 배 이상으로 불어난 셈이다.

코로나 대출 '시한폭탄' 온다
자영업자·소상공인 대상 '코로나 대출'의 만기가 오는 9월 돌아온다는 점도 문제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피해를 본 자영업자·소상공인 등을 위한 금융권 대출은 2020년 4월 시작됐다. 당시 문재인 정부는 은행 등을 통해 6개월 한시로 50조원 규모 소상공인 긴급 대출을 실시했다. 이후 팬데믹 상황이 장기화하며 정부는 수차례 만기를 연장하거나 상환을 유예했고, 대출 취급 규모도 확대했다.
2022년 5월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뒤에도 만기 연장은 이어졌다. 그 결과 같은 해 6월 코로나 피해로 대출을 받은 자영업자 등은 57만 명, 대출액은 141조원으로 불어났다. 결국 그해 9월 정부는 “코로나 피해는 점차 개선되고 있지만, 고금리·고물가·고환율 등으로 인해 온전한 회복까지 다소간 시간이 더 소요될 것으로 예상한다”며 대출 만기를 최대 3년까지 연장했다. 올해 9월이 코로나 대출의 실질적 만기인 이유다. 그사이 대출 규모는 약 50조원으로 줄었다.
문제는 남은 코로나 대출금이 더는 회수가 어려운 ‘악성 부채’일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해 한 은행 관계자는 “아무리 만기 연장을 해줘도 갚지 못하고 있는데, 만기를 더 연장해도 갚을 이자만 불어날 뿐”이라며 “(금융권 등에서는) 사실상 갚을 수 없다고 보고 있다”고 짚었다. 향후 배드뱅크가 설립될 경우 배드뱅크는 은행권이 보유한 코로나 대출을 인수한 뒤 처분하고, 이에 따른 손실을 정부 재정 등으로 보전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는 재정뿐만 아니라 민간 은행 등이 출자하는 자금도 투입될 가능성이 크다.